뮤지컬 < 보디가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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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소니뮤직과 2004년 합쳐졌다가 얼마 안 있어 그나마 이름이 사라진 직배음반사 BMG를 기억할 것이다. 한때 위용을 자랑했던 이 직배사는 1991년 한국에 들어올 무렵, 이미 터를 닦은 EMI, 폴리그램, CBS소니 등에 비해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 모든 흐름이 단 하나의 곡과 앨범으로 급변했다. 1992년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 보디가드 >의 사운드트랙 앨범, 구체적으로는 하나의 곡 'I will always love you'가 몰고 온 파장 때문이었다.
영화의 감동, 특히 마지막 대목을 장식한 이 노래의 감동에 젖은 사람들은 극장을 나오자마자 길거리의 리어카에서 너도나도 이 곡의 불법 테이프를 구매했다. 그 무렵 한 판매상은 “내가 이 정도 팔았으면 서울에서만 100만개는 능히 나갔을 것”이라고 했다. 판매 광풍에 놀란 한국 BMG는 서둘러 정품 LP와 CD를 내놓았다. 놀라운 사실은 불법으로 100만 이상이 나갔음에도 정식으로 발매된 음반 역시 1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사실. 전무후무한 '불법 밀리언셀러, 정품 밀리언셀러!'의 드라마가 실현되었다.
당시 우리 음반 팬들이 얼마나 < 보디가드 >의 영화음악에 몰입했는가를 말해주는 단적인 증거일 것이다. 1993년 1월, 유독 눈이 많이 내렸던 그 겨울에 모든 사람들이 휘트니 휴스턴 얘기를 했다. 입을 다물게 하는 그의 매직 보컬, 천상의 목소리에 대해.. < 보디가드 > 음반에 실린 휘트니 휴스턴의 6곡, 'I will always love you', 'I have nothing', 'I'm every woman', 'Run to you', 'Queen of the night', 'Jesus loves me'는 그렇게 대중의 설왕설래와 라디오 전파를 독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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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휘트니 휴스턴의 보컬은 1985년 혜성처럼 등장한 이래 시장과 인기차트를 장악하면서 캐리어 축적의 역량이 만개하고 있었다. 자신의 가수인생의 정점 보컬이자 어쩌면 파퓰러 뮤직의 여성 보컬의 방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순간이었다. 'I will always love you' 단 하나로 충분하다. 원래 백인 돌리 파튼(Dolly Parton)의 컨트리 넘버를, 당대의 트렌드라고 할 잿빛이 감도는 알앤비(R&B)로 '둔갑'시킨 것부터 놀랍지만 곡의 시작부터 청각을 완전히 잡아끄는 장악력은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언젠가 “내가 노래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것은 거의 말하는 것과 유사했다”고 휘트니 휴스턴 스스로 말한 것처럼 이 곡의 도입 45초간, 낭송과 노래의 중간이라고 할 그 부분에서 팬들은 소름 돋는 긴장과 감동을 경험한다. 여기서 이미 승부가 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살기, 신의 한수는 후반부 클라이맥스의 '앤 다이아 아이∼윌 (And I will...)' 대목, 모두가 코믹하게 '다이아(먼드) 송'이라고 표현했던 바로 그 대목이다. 어떤 가수도 모방하기 어려운 휘트니만의 보컬 컬러와 효과가 천연히 빛을 발한다.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은 이를 '거대하고도 번뜩이는 광휘의 절규(coruscating cry)'라고 묘사했다. 얼핏 듣기에 소프라노 같지만 메조소프라노 영역인 휘트니 휴스턴의 각별함은 하이로 치솟으면서 누구도 갖지 못하는 청아하고 막힐 것을 뚫어주는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을 준다는데 있다. 재미있게 정의하자면 '사이다 보컬'에 다름 아니다. 이런 매혹은 또 다른 곡 'I have nothing'의 러닝 타임 1분 20초 대목('Well, don't make me close one more door')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괜히 절창, 명창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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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은 전성기라고 할 이 시점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동했다. 팝 팬들은 1985년 봄, 빌보드 순위가 상승하고 있던 한 신인 여가수의 노래 'You give good love'에 주목했다. 오늘날 휘트니 휴스턴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 이 노래의 보컬은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성질의 것이었다. 신인치고는 너무도 진행이 능란했고 절제된 호흡에 목소리는 굽이쳤으며, 무엇보다 따스함이 저류하는 보컬이었다. 이번 뮤지컬에 휘트니 휴스턴 역(레이첼 마론)에 캐스팅된 양파는 그 따스함을 '온기가 흐르는 보컬, 엄마 같은 보컬'로 비유한 바 있다.
데뷔 앨범의 첫 히트싱글인 이 곡이 강렬한 인상을 전달하면서 이후 내놓은 곡 'Saving all my love for you', 'How will I know', 'Greatest love of all'은 모조리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노래들은 '테네시 월츠' 패티 페이지(Patti Page)의 기품, '재즈 보컬의 퍼스트레이디'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의 무결점과 모처럼 재회하는 환희 그 자체였고 사촌언니인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의 여유를 넘어서는 듯한 경이를 제공했다. 그를 발탁한 레코드업계의 거물(당시 아리스타 레코드사 사장)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1983년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했다.
타이밍도 중요했다. 그가 등장하던 1985년 즈음에 세계 팝음악의 대세는 마이클 잭슨의 팝 댄스, 데프 레퍼드와 밴 헤일런의 메탈이 장악하던 시절이었고 유럽에선 유투(U2)가 글로벌 시장정복의 채비를 마친 때였다. 20대 중심의 젊은 음악이 판을 치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성인취향의 음악 이른바 스탠더드 팝은 위축을 면치 못했다. 클라이브 데이비스 사장의 기획은 바로 부재한 이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었고 그의 프레임과 이상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휘트니 휴스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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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하는 위치의 레코드사들이 이후 '제2의 휘트니 휴스턴'을 찾기에 혈안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면서 1990년대를 장식하는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 토니 블랙스턴, 앨리샤 키스 등의 디바(diva)가 줄을 잇게 된다. 슈퍼스타 휘트니 휴스턴은 그 시대에 그런지 록, 갱스터 랩, 일렉트로니카 인베이전의 파고 속에서도 강한 시장 파괴력을 과시한 디바 리스트의 꼭짓점에 위치했다. 이후 모든 디바들이 휘트니 휴스턴에게 빚진 '보컬 채무자'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2012년 휘트니 휴스턴이 48살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사인이 약물중독이든, 신경안정제를 술과 함께 복용해서였든, 심장마비나 색전증이든 우리는 분명 매직 보컬, 세기의 가창, 사상 최고의 보이스를 잃었다. '한국 스탠더드 팝의 전설' 패티김은 그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하루 종일 펑펑 울었다고 한다. 패티김은 1938년생으로 1963년생인 휘트니 휴스턴보다 스물다섯 살 위다. “나보다 아무리 나이 어리다 해도 엄청난 가수였음은 분명하다. 이런 가수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 보디가드 > 뮤지컬이 기획될 당시에도 그랬고, 아시아 최초의 한국 초연의 관심사도 '과연 누가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부를 것인가'였다. 온기와 인간미가 더해진 '보컬의 예술성'으로 심지어 거리가 먼 록 음악 진영의 호평도 가져온 그 '역사의 보컬'을 누가 맡을 것인가. (역사상 위대한 가수 설문에서 < 롤링스톤 >은 휘트니 휴스턴을 34위, < 큐(Q) >지는 98위로 올려놓았다)
뮤지컬의 최고 디바로 꼽히는 정선아, 휘트니 휴스턴의 광팬이자 뮤지컬 첫 도전인 양파 그리고 '너무 노래를 잘하는 게 흠'이라는 평의 보컬 머신 손승연이 낙점의 영광을 안았다. 휘트니의 파워 하우스 보컬에 각자의 개성을 입힐 것으로 기대되지만 그에 앞서 먼저 관객들은 무대에서 휘트니의 노래를 다시 접하는 설렘과 기쁨을 맞을 것이다. 그 흥분은 아바의 <맘마미아>와 퀸의 <위 윌 락 유>에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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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 보다가드 >에 나오는 휘트니 노래는 상기한 것처럼 6곡에 불과하다.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그의 다른 대표곡을 포함해 15곡이 소개된다. 그러니까 행여 'Greatest love of all'을 못 들을까봐 노심초사할 필요는 없다. 이 곡은 극중 레이첼이 저택에서 피아노에 앉아서 노래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큰 저택 내 리허설 룸에서 레이첼이 연습하며 부르는 'How will I know', 오스카 시상식장의 노래 'One moment in time'(1988 서울올림픽 찬가), 커튼 콜 장면에서 관객들과 함께 하는 곡 'I wanna dance with somebody(who loves me)' 등 휘트니 휴스턴의 골든 레퍼토리를 망라한다.
솔직히 고인이 된 그의 노래를 음반이나 영화를 통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뮤지컬로 만난다는 것만으로 기대된다. 파워풀한 가창의 우리 디바들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으로, 휘트니 휴스턴 노래의 영원성을 널리 알려줄 것으로 확신한다. 휘트니 휴스턴이 있어서 1980년대와 1990년대는 행복했다. 그가 남긴 'I will always love you', 'I have nothing', 'Greatest love of all'은 죽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생물처럼 꿈틀댈 것이다. 뮤지컬 < 보디가드 >가 그것을 웅변하는 역사의 기록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팬들의 기억과 역사의 기록이 있어 음악은 음악가의 짧은 생을 넘어 불사, 불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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