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펜던스 데이 > 시리즈나 < 2012 > 등의 롤랜드 에미리히가 만든 다른 영화들 또한 곧 일어날 재앙을 다룬다. 해를 가리는 외계 비행 물체가 지구의 낮을 빼앗아간다거나, 화산 폭발이나 거대한 해일로 인해 사람들은 살 곳을 잃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워낙 연출력이 떨어지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있는 탓에 (실제로도 그렇다) 우리는 그가 그려낸 파괴된 지구의 모습을 싱거운 농담처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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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 주변엔 허구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와 달리 실제 상황을 카메라에 담아낸 다큐멘터리도 있었다.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MBC 다큐멘터리 < 북극의 눈물 >과 < 남극의 눈물 >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녹고 있는 극지방의 빙하와 살 곳을 잃은 동물들의 모습을 비추어 시청자를 감동시켰다.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 무한도전 >마저 2주간에 걸쳐 북극곰의 암울한 현실을 (웃음기를 쫙 뺀 채) 보여주었다.
사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보고서도 두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건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닌, 영화 속의 등장인물이거나 펭귄이나 북극곰 따위일 뿐. 당장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은 뽀송뽀송하고, 우리 주변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둔감하고 무지한 우리는 뉴스나 신문에서 그토록 경고하고 있는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과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그려내는 디스토피아를 아무 상관없는 일인 것 마냥 간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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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HNI – 4 Degrees
< HOPELESSNESS >
(2016)
< HOPELESSNESS >
(2016)
It's only 4 degrees
단지 4도만 올랐을 뿐인데
I want to see this world
I want to see it boil
It's only 4 degrees
조금씩 끓어오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직접 봐야만 해요
단지 4도만 올랐을 뿐인데
I want to hear the dogs crying for water
I want to see the fish go belly-up in the sea
And all those lemurs and all those tiny creatures
I want to see them burn
It's only 4 degrees!
갈증으로 물을 찾는 개들의 울부짖음
바다 위로 뒤집힌 채 떠오르는 물고기를 지켜봐야 해요
모든 원숭이들과 그보다 더 작은 생명체들이 불타서 고통 받는 것을
직접 봐야만 해요
단지 4도만 올랐을 뿐인데!
And all those rhinos and and all those big mammals
I want to see them lying, crying in the fields
I want to see them burn
It's only 4 degrees
그리고 들판에 쓰러져서 울부짖는 모든 코뿔소들과 덩치 큰 포유류들을 지켜봐야 해요
그들이 불타서 고통 받는 것을 느껴야 해요
단지 4도만 올랐을 뿐인데
단지 4도만 올랐을 뿐인데
I want to see this world
I want to see it boil
It's only 4 degrees
조금씩 끓어오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직접 봐야만 해요
단지 4도만 올랐을 뿐인데
I want to hear the dogs crying for water
I want to see the fish go belly-up in the sea
And all those lemurs and all those tiny creatures
I want to see them burn
It's only 4 degrees!
갈증으로 물을 찾는 개들의 울부짖음
바다 위로 뒤집힌 채 떠오르는 물고기를 지켜봐야 해요
모든 원숭이들과 그보다 더 작은 생명체들이 불타서 고통 받는 것을
직접 봐야만 해요
단지 4도만 올랐을 뿐인데!
And all those rhinos and and all those big mammals
I want to see them lying, crying in the fields
I want to see them burn
It's only 4 degrees
그리고 들판에 쓰러져서 울부짖는 모든 코뿔소들과 덩치 큰 포유류들을 지켜봐야 해요
그들이 불타서 고통 받는 것을 느껴야 해요
단지 4도만 올랐을 뿐인데
현재 아노니(ANOHNI)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토니 해거티(Antony Hegarty)는 안토니 앤 더 존슨스(Antony and the Johnsons)라는 밴드의 보컬로 더욱 친숙한 가수이다. 고혹적이고 중성적인 음색이 특징인 안토니 해거티는 밴드와 함께 감미로운 오케스트레이션이 더해진 잔잔한 챔버팝 음반을 여럿 발표, 특히 두 번째 음반 < I Am A Bird Now >의 호평으로 급부상했다. 컬처 클럽의 보이 조지나 소프트 셀과 같은 중성적인 이미지의 뮤지션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녀는 성 정체성으로 이야기하는 뮤지션으로도 유명, 실제로 그녀는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노니란 이름으로 나온 첫 음반 < Hopelessness >는 안토니 해거티의 음반들과는 상당 부분 결이 다르다. 'Hopelessness'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절망과 환멸이 허드슨 모호크(Hudson Mohawke)와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가 재단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나타난다. 격렬하고 날카로운 전자음 사이에서 아노니는 사람들을 폭격하는 무자비한 드론 공격기와 잔인한 고문이 행해지고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 등,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처절한 목소리로 꼬집어낸다.
< Hopelessness >의 두 번째 트랙 '4 Degrees'는 온난화로 인해 멸망해버린 지구의 모습을 묘사한다. 아노니는 지구의 온도가 4도만 오르면 세상이 끓어오르고,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며, 모든 원숭이들(인간)이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곡을 휘어잡는 둔탁한 드럼 사운드는 미래에 일어날 비참한 일들에 대한 경종처럼 작용하고, 시종일관 귀를 찌르는 여러 전자음들은 화자의 비장미와 인상적인 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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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니가 주장하는 '4도의 법칙'은 실제 연구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의 한 환경단체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은 '지구의 평균기온이 4도 상승하면 6억 인구가 사는 지역이 물에 잠기게 된다.'는 연구결과와 함께 물에 잠겨있는 대도시들의 시뮬레이션 사진을 공개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와 인도의 뭄바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리우 등 지구 곳곳의 명소들이 물에 잠겨있는 모습을 담은 이 사진들은 온난화가 낳을 지구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한다. '4 Degrees'는 물이 아닌 불의 파괴적인 이미지를 차용하였을 뿐,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
우리는 한 편의 블록버스터가, TV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들이, 환경단체의 연구결과가 보여주는, 한 뮤지션이 울부짖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방관하고 있다. 역치가 오를 대로 오른 우리는 자식세대가 살아갈 터전이니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이유 하나만으로 생활 속의 불편을 감수하지 못한다. 알다시피 우리는 석탄과 석유, 가스 등의 화석연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숲을 걷어내야 우리의 살 곳이 마련되고, 에어컨 없는 우리의 여름은 너무나도 덥다. 그렇다면, 비극적인 결말 앞에 서있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