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일까. 유난히 스톤스의 색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밴드가 만들어 온 고유의 까칠한 로큰롤 사운드가 분명 전반에 자리하지만, 그 컬러가 결코 곡들을 우악스럽게 잡아먹지 않는다. 믹 재거의 능청스럽고 섹시한 보컬도 꽤나 절제돼있는 데다 그마저도 하모니카와 영역을 나누고 있고, 키스 리처드의 빈틈 많으면서도 직선적인 기타 릭들도 좀처럼 쉽게 등장하지 않는다. 밴드가 한 발 물러서면서 생긴 빈 공간은 개개의 블루스 곡들이 채운다. 이 앨범에서 원곡들이 가진 무게감은 상당하다. 스톤스의 사운드와 블루스 넘버들이 앨범에서 각자의 비중을 고르게 가져가고 있다. 연주자의 재해석이라는 블루스의 또 다른 창작 방식에 충실한 멤버들은 블루스의 고전 트랙들에 작품의 너른 영역을 허락한다. 그래서 < Blue & Lonesome >에는 묘한 균형감이 존재한다. '스톤스'의 블루스와 스톤스의 '블루스'가 공존하며 기존과는 다소 색이 다른 새 앨범의 컬러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 컬러가 상당히 멋지다.
'Just your fool'의 하모니카 연주와 여덟 마디 블루스 형식, 'Blue and lonesome'의 시작을 알리는 블루지한 기타와 굴곡 가득한 보컬 퍼포먼스, 'I gotta go'의 리드미컬한 구성, 'Little rain'의 느릿하고 끈적한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살아있는 각 블루스 넘버들의 주요 특징들에서 알 수 있듯 스톤스는 원곡의, 혹은 대표 버전의 모양새를 크게 어그러뜨리지 않는다. 'Blue and lonesome', 'Just your fool', 'I gotta go' 등 리틀 월터가 남긴 바 있던 고전들의 커버 버전은 원형과 거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I can quit you baby', 'Commit a crime'과 같은 명 블루스 넘버의 재해석도 낯설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됐다. 스톤스의 스타일은 곡의 형태를 얇게 감싼다. 까끌한 톤을 입은 두 대의 기타와 오랫동안 믹 재거가 록 역사에 새겨놓은 상징적인 보컬, 미니멀하고 정직하게 그루브를 뽑아내는 찰리 와츠의 드러밍이 제한된 음반 내의 영역에서 밴드 특유의 색을 자아낸다. 이러한 구성 방식에서 비로소 블루스 넘버가 오랫동안 품은 매력과 스톤스가 가진 매력 모두가 살아난다. 그리고 이 둘의 혼합이 < Blue & Lonesome >이라는 근사한 결과물로 연결된다.
< Blue & Lonesome >은 무엇 하나 빼놓을 게, 아쉬울 게 없는 작품이다. 존재감이 세진 않지만 분명하게 드러나는 스톤스의 스타일, 블루스 넘버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멋, 이들이 함께 이끌어내는 고전적인 감각, 그 틈새에서 스며나 오는 연륜이 뒤섞여 음반의 가치를 한껏 드높인다. 반세기 전으로 되돌아가보자. 스톤스는 자신들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블루스를 커버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긴 세월이 지난 오늘, 그동안 쌓고 구축해 온 자신들의 사운드로 새 블루스 커버 음반을 만들었다. 위대한 거장의 위대한 역사가 만든 수작이다.
-수록곡-
1. Just your fool

2. Commit a crime

3. Blue and lonesome

4. All of your love
5. I gotta go

6. Everybody knows about my good thing
7. Ride 'em on down
8. Hate to see you go
9. Hoo doo blues
10. Little rain
11. Just like I treat you
12. I can't quit you bab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