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 < Blackstar >
반세기에 가까운 음악 여정 내내 그는 낡지 않았다. 잠시 휴식을 취할지언정, 진부한 모습으로 대중을 만난 적은 없다. 통산 스물다섯 번째였던 < Blackstar > 역시 그랬다. 록의 골격에 일렉트로니카와 재즈의 색채를 입혀 전위적 소리 탑을 쌓은 동시에, 수려한 멜로디 전개로 대중과의 접점을 이뤘다. 음반은 아방가르드 재즈와 아트 록의 매력적 공존이었고, '전설' 데이비드 보위는 명백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여기 위를 올려다봐요. 나는 천국에 있어요.” - 'Lazarus'
삶의 끝으로 향하는 터널 안에서도 거장의 창작력은 밝게 빛났다. 앨범은 오랜 세월이 빚어낸 관록의 산물이면서, 하나의 숭엄한 작별 인사였다. 끊임없이 가면을 바꿔가며 다양한 목소리를 구사했던 아티스트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음악을 통해 징명한 울림을 선사했다. 지극히 그 다운 피날레였기에 '블랙스타'의 폭발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1969년 톰 소령('Space oddity')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2016년 나사로('Lazarus')가 되어 끝났다. (정민재)
찬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 - < Coloring Book >
멀티태스킹의 장기가 빛난다. 찬스 더 래퍼는 전에 해 왔던 대로 여기에서도 랩을 하듯 싱잉을 선보이며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랩을 한다. 능숙하게, 한편으로는 능청스럽게 두 스타일을 소화하는 퍼포먼스는 노래들에 굴곡을 만든다. 둥그스름함과 뾰족함이 적당한 위치에 나타나는 잘빠진 모양새가 감상 저항을 줄인다.
여러 형식을 아우른 구성도 재미를 더해 준다. 힙합은 기본에 R&B, 가스펠, 재즈, 일렉트로니카, 아카펠라 등 많은 장르가 각각 따로 출현하거나 연합해 호화로움을 완성한다. 다양한 스타일을 떠안고 있음에도 어수선하지는 않다. 힙합과 가스펠을 큰 줄기로 삼은 기획에 의해 번잡함은 자동으로 정리된다.
가스펠을 들려주지만 고리타분하지 않다. 메시지가 포교보다는 자신의 소극적인 신앙 고백에 머물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느 래퍼와 다름없이 욕과 거친 표현을 간간이 씀으로써 힙합 키드들이 무의식적으로 환호하는 '거리의 멋'도 빼먹지 않는다. 영악한 반승반속(半僧半俗) 앨범이다. (한동윤)
메탈리카(Metallica) - < Hardwired... To Self-Destruct >
쉴 틈 없이 질주하는 광폭함과 패기는 조금도 녹슬지 않았는데, 여기에 33년차 메탈 거목(巨木)의 묵직한 노련미까지 더해지다니. 이 정도면 건재함을 증명하는 차원을 넘어 가히 '새로운 탄생'이다. 1983년 데뷔앨범 < Kill Em' All >부터 달려온 메탈 기관차가 다시 한 번 내뿜는 거대한 굉음! 연료가 바닥날 걱정은 당분간 집어치워도 되겠다.
밴드가 지나온 여정이 앨범 구석구석에 녹아 있다. 'Hardwired'와 'Spit out the bone'의 비타협적 폭주 일변도, 'Atlas, rise!'와 'Moth into flame'의 '스래쉬 심포니'는 전 세계가 열광했던 그들 전성기의 사운드를 빼닮았다. 'Now that we're dead'의 절묘한 완급조절과 묵직함 속에 멜로디를 강조한 'Dream no more', 메탈리카식 발라드의 계보를 잇는 'Halo on fire'는 대중성을 가미했던 1991년 < Metallica >의 대성공 이후 오랜 방황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은 소중한 노하우다. 이 초거대 프로젝트의 일등공신은 드러머 라스 울리히(Lars Ulrich)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밴드의 합(合). 묵직한 배킹 위에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의 중후한 보컬이 사자의 포효로 거듭난 순간, 메탈 음악의 쇠락에 상심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단비가 내렸으리라. (조해람)
본 이베어(Bon Iver) - < 22, A Million >
한 마디로 '패턴 디자이너'의 자세였다. 가까이는 2010년, 가장 멀리는 1950년대에까지 이르는 지나간 음악의 샘플링 파편을 가져와 정교하게 이어 붙였다. 조직적이고 정돈된 방식의 소리 콜라주, 그리고 모자이크. 덕분에, 변화무쌍한 음색이 줄곧 나열되더라도 귀가 어지럽지 않다. 오토튠과 보코더, 글리치 어법으로 자행된 온갖 왜곡 속에서 엄숙한 질서와 조형미를 쟁취하는 것이 바로 저스틴 버논, 이 '21세기 소년'의 당찬 매력이다. 소포모어 이상으로 아티스트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세 번째 순간, 밴드는 과거를 동원해 오히려 동시대 서정성을 대변했다. 미래의 어떤 날보다도, 지금 들어야 한다. (홍은솔)
The 1975 - < I Like It When You Sleep, For You Are So Beautiful Yet So Unaware Of It >
EDM에 권좌를 넘겨주고는 눈에 띄는 성과 없이 지지부진했던 록 신이었기에 1975의 등장이 더욱 반갑다. 올 상반기를 책임졌던 밴드의 소포모어는 전작의 감성은 유지한 채 좀 더 섬세한 사운드로 채워졌고, 트랙 사이에 존재하는 앰비언트 곡들은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부피의 음반에 유기성을 부여한다. 따듯한 멜로디와 조금은 기괴한 연출은 낯설고도 익숙하다. 마치 뚜렷한 기승전결 없이 그저 인물의 흔적을 롱 테이크로 담아내는 일본 영화처럼. 그렇게 잔잔하게 흘러 들어온다. (정연경)
비욘세(Beyonce) – < Lemonade >
샘 쿡이 '언젠가는 변화가 올 것'이라고 노래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 흑인 사회의 변화에 대한 물음에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의 죽음이 답했다. 유독 검은색만 보면 흥분하는 일부 경관들의 무자비한 총성은 자유와 평등을 내세운 거대한 국가의 참담한 실상을 낱낱이 까발렸고, 피부색 가릴 것 없이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Black lives matter'를 외쳤다. 이 외침에 문화계가 반응했다. 영화계는 '경찰 x까라'던 N.W.A를 부활시켰고, 흑인 노예를 끄집어냈으며, 마틴 루터 킹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뿐일까, 켄드릭 라마와 커먼, 존 레전드, 프린스 등의 뮤지션들이 그들만의 인권 운동을 펼쳤다.
< Lemonade >는 그중 당연, 가장 거대했던 외침이었다. 비욘세는 수많은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잭슨 파이브 코를 닮은 흑인 코가 마음에 든다.'며 당당히 흑인으로 태어난 자부심을 드러냈고, 직설적으로 '우릴 쏘지 말라'며 공권력에 으름장을 놓았다.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비추는 노래들은 소외된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물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량과 음악적 완성도가 담보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잘 만든 팝 음반의 수준을 넘어, 역사가 기록할 파급력을 지닌 명반이다. (이택용)
라디오헤드 (Radiohead) – < A Moon Shaped Pool >
새로울 것은 없다. 톰 요크의 일렉트로니카와 조니 그린우드의 오케스트레이션, 파편화된 채로 횡행하는 노트, 앰비언트 식으로 공간과 공중을 집어삼키는 사운드 뭉치, 이들의 혼합으로 이뤄진 아트 록이 또 다시 앨범을 구성하니까. 그렇다. < A Moon Shaped Pool >은 평범하다. 그러나 이 평가는 어디까지나 이들의 과거가 기준이 됐을 때에만 유효하다. 판단의 시각을 라디오헤드의 그간 행보로부터 현재의 록 신으로 전환해보자. 사이키델리아와 펑크, 뉴웨이브, 디스코, 신스팝의 재가공물이 유행하고 포스트 록의 잔향이 미약하게 남아있는 요즘의 메이저 록 영역에서 이만큼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앨범이 과연 있었던가. 그리고 이만큼 군더더기 없이 사운드 디자이닝이 잘 이뤄진 앨범이 있었던가.
결국 라디오헤드를 평범하게 만든 것은 그 자신이다. 라디오헤드의 사운드를 더 이상 신비롭지 않게 들리게 만든 것은 그 자신의 과거고, 라디오헤드의 앨범을 재차 논해야하는 일을 무의미하게 보이게 만든 것은 그 자신의 대단한 창작력이다. 그렇기에 이 놀라운 밴드에 익숙해지다 못 해 그 세계관에 오랫동안 빠져 살았던 우리는 진정한 '타자'로서 이 수작을 더 주의 깊게 들여다 봐야한다. (이수호)
솔란지(Solange) – < A Seat At The Table >
21곡이 넘는 앨범이지만 한가지 톤 - 네오 소울과 일렉트로닉 사운드 – 에서 다채로운 색조들이 우아하게 펼쳐진다. 피비알앤비와 펑크(Funk) 등 다양한 장르를 뒤섞어 몽환적이며, 여음을 강조한 창의적인 소리가 탄생했다. 노래의 메시지도 깊다. 중독이나 흑인으로서 나아가야할 방향,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소울의 장인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이 프로듀서를 맡아 실험적이지만 명상음악처럼 편안하고, 유연하고 부드럽지만 결코 가볍게 들뜨지 않는 독특한 감촉을 제시한다.
올해는 노울스 (Knowles) 자매에게 특별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같은 해에 앨범을 내고, 차트 정상을 차지했으며 여러 매체의 평가에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패션 스타일만큼 둘의 음악은 완전히 다르다. 비욘세가 파워풀하고 팝적인 지향이라면 솔란지는 감각적인 힙스터다. 3집을 통해 그녀는 '비욘세의 동생'이 아닌 아티스트로 자신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반야)
스터길 심슨(Sturgill Simpson) – < A Sailor's Guide To Earth >
노곤하고 '아재'스러운 컨트리 음악을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두 장의 인디 음반을 거쳐 메이저 신으로 본격 데뷔한 스터길 심슨(Sturgill Simpson)은 경이로운 구성의 콘셉트 앨범을 통해 그의 가치관을 고한다. < A Sailor's Guide To Earth >의 서사 자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전기(傳記) 형태의 잔소리(?)이지만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 애정 가득한 삶의 격언과 더불어 시대를 꿰뚫는 올곧은 정신은 대중의 가치체계 안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스트링, 신시사이저, 브라스 등의 혼합은 컨트리를 넘어서 소울, 펑크(Funk)의 영역까지 도달하며 입체적인 사운드의 향연을 이룬다. 미국 해군 근무 경험을 토대로 한 그의 '지구 상 지침'은 풍성한 음향을 통해 공감각적 역동성을 얻었다. 러닝타임 내내 폭풍우치는 바다 한가운데 갑판에서 노래하는 듯한 통쾌함을 선사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군을 겨냥한 반전(反戰) 메시지. 굵직한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무게감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현민형)
트로이 시반 (Troye Sivan) - < Blue Neighbourhood >
팝계의 변방 호주 출신인 20대 초반의 꽃미남 가수가 반반한 외모로 소녀 팬들의 지갑을 노린 음반으로 예상했다. 초상화로 꾸려진 초라한 앨범 재킷 역시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 Blue Neighbourhood >의 첫인상은 호감이 아니었다.
건방진 예측은 틀렸다. 전자 음원을 저류에 배치한 수록 곡들의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단점은 세련된 편곡과 과욕을 부리지 않은 트로이 시반의 보컬, 정제되고 신비로운 사운드 조율을 거쳐 앨범의 통일성으로 승화되었고 단순하게 보였던 음반 표지는 멋진 음악을 말없이 드러내는 훌륭한 조연으로서의 제 역할을 한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해질 수 있는지를 증명한 2016년의 팝 앨범. (소승근)
▶ 2016 올해의 팝 싱글
▶ 2016 올해의 가요 앨범
▶ 2016 올해의 가요 싱글
▶ Splash of the year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