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 - < I Am A Dreamer >
인고를 겪은 뮤지션은 훈장처럼 빛나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시련과 풍파는 혹독했지만 그의 정체성과 보이스는 한결 날렵해졌다. 가장 큰 변화는 깨끗하고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보컬이다. '소몰이'의 풀체스트 기법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면서도 그를 가두는 울타리였다. '눈의 꽃'부터 시작된 창법의 진화는 불안해 보이던 5, 6집을 지나 완전히 정착했다. 두텁고 허스키한 톤을 분쇄하자 다채롭고 고운 입자가 그 자리에 남았다. 뮤지컬을 하면서 정확한 발음과 발성을 익혀 목소리는 더욱 세밀하고 정교하게 손질되기도 했다.
박효신은 데뷔 18년 만에서야 자신의 꿈과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가사에 담긴 의미와 음악의 방향 모두 높게 비상한다. 직접 프로듀싱, 작사, 작곡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자유롭게 활강한다. 도전과 자신을 넘어서는 노력은 더 넓은 활로를 개척한다. (김반야)
장기하와 얼굴들 - <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
가장 멋진 장얼의 로큰롤은 바로 이 음반에서 탄생한다. 유머러스한 가사와 캐치한 멜로디, 재미있는 보컬 코러스, 다채로운 트랙 구성과 같은 기존의 강점에 미니멀한 사운드 디자인과 더욱 펑키해진 리듬 등의 특색을 더해 정말로 근사한 앨범을 만들어냈다. 레게 풍 리듬과 장난스런 텍스트를 조합해 큰 소구를 발휘한 'ㅋ'에서부터, 장얼 식 서정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괜찮아요'와 '가장 아름다운 노래', 고전적인 보컬 코러스를 배치해낸 '가나다', 토킹 헤즈 풍의 펑키한 뉴웨이브를 적절히 변용한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빠지기는 빠지더라'에 이르기까지, 앨범에는 좀처럼 빠지는 노래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피식하는 웃음과 울림 큰 감탄이 공존하는 작품. 올해 한국 록 신에서 등장한 가장 매력적인 음반이다. (이수호)
방백 - < 너의 손 >
방준석, 백현진, 두 이름을 두고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결이 달랐다. '그 유명한'이라는 수식이 주는 족쇄를 부서트린 건 강력한 자의식도, 고집도 아닌,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었다. 음반은 서영도, 신석철, 윤석철 등 그 분야에서는 이미 한 세계를 구축한 연주자들과의 멋진 단합이 몇 년에 걸쳐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다. 실로 따스한 '인디'의 자세다.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악에 인간애를 담뿍 녹여낸 이야기를 담았다. 무엇보다 고마운 건 그 위로의 방식이 자기계발서처럼 오만하지 않다는 데 있다. 어덜트 컨템포러리로 분류된다지만, 특정한 세대 타깃도 없었다. 직관은 종종 '만들어진 성(城)'의 틈을 파고든다. 거기에는 공식이 없어, 무방비 상태의 마음은 빛나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감동 당하기 마련이다. 김광석의 음악이 그랬듯, 여기 살아가는 누구든지 삶의 어느 순간에 방백의 < 너의 손 >이 필요하게 될 테다. '쓸모 있는' 작품이다. (홍은솔)
빈지노 - < 12 >
음반이 발매되었을 때의 미적지근했던 차트의 반응을 기억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 24 : 26 >의 수록곡들, 'Nike shoes'를 비롯하여 'Boogie on & on', 'Aqua man'이 아직까지도 유흥가의 곳곳에서 들려오는 반면, 'Time travel'이나 '토요일의 끝에서'를 재생하는 곳은 드물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빈지노는 전작의 곡들이 벌써부터 질려버린 듯하다.
< 12 >는 '나', 혹은 '창작자', 곧 '빈지노'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는 지점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와 어울리지 않는다. 과감한 자기복제와 반복을 통해 그저 '훅쟁이'로만 남을 수 있었던 그가, 늘 새로움을 도색하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이상적인 래퍼임을 'I don't mind', 'Break', 'We are going to' 등의 돌발적인 트랙들이 강력히 피력한다. 물론 전작에서의 남다른 훅메이킹의 감각 또한 여전히 살아있다. 신선함에 대한 광적인 집착, '외모'와 '서울대' 앞에 달릴 빈지노의 새로운 해시태그! (이택용)
화지 - < ZISSOU >
허세, 무기력, 성공욕(慾), 집착, 무질서 그리고 과(過)개인주의 등 이 시대를 사는 네트, 밀레니얼 세대를 향한 화지 그만의 엄하고 날선 그러나 지혜롭고 여유로운 랩 장편서사. 죄 꼬이고 잘 못되어 있는 판에 모처럼의 경각과 수긍을 부른다. 우리는 솔직히 그 말마따나 '죽음보다 낙오를 두려워하며' '다들 센 거 찾느라 여기저기 북새통이며' '아직 죽지 않은 죽은 사람' 아닌가. 냉소 무질서 무정부 같지만 반사회 반문화 반과학 비트닉은 아닌, '21세기의 히피'의 호소와 주문이다.
무개념으로 찌든 지금은 '들어 세울 상아탑이 필요한 세상'이란 비아냥이 절대 건성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어짐이 빼어나고 강과 약, 살기(殺氣)와 온기가 동시에 배인 그의 랩 플로우를 빛나게 하는 건 테크닉 아닌 그러한 통쾌한 언어들이다. 2014년의 < EAT >를 잇는 연발(連發)강공이며 인상적 소포모어, 2016년 힙합 수작으로 손색이 없다. 수록곡 '꺼져'의 '그니까 나는 안 들려 니 불평 혹은 불만/ 넌 필요 없고 빌려줘 니 불만..' 대목의 가사는 지금도 귓전을 때린다. 성공지수와 눈치에 눈먼 상업적 힙합 시류에 대한 이만치 신랄한 한방은 없다. 랩은 이래야 한다!! (임진모)
태민 - < Press It >
보다 높은 완성도를 목표로 한 SM과 그 힘을 흡수한 소년이 "아이돌의 완성형"을 향해 달려 나간다. 마주한 결과는 빈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정제된 사운드와 댄스, 초국적인 K팝의 현재다. 촘촘한 구성에 압도된 마음을 다독여주는 태민의 여린 보컬도 훌륭하다.
많은 이들이 솔로 활동을 위해 남자다운 성장에 초점을 두었다면, 그는 가장 찬란할 '지금의 순간'을 발현한다. 솟구치는 리듬감은 가느다란 가창과 팔다리를 통해 더욱 심미적이고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곡의 속도감부터 퍼포먼스까지 태민이기에 더 어울렸고, 그 아름다움은 때때로 날카롭고 단단하게 파고들어 꼭 태민이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낸다. (정유나)
조동진 - < 나무가 되어 >
20년 만이다.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거목이 다시 잎을 틔우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다. 마음속 심연을 비추는 특유의 낮은 음색, 삶을 다각도로 성찰케 하는 노랫말, 나지막이 스며드는 선율. 지나간 나날이 무색할 만큼 그는 변함이 없다. 마치 언제 그렇게 시간이 갔냐는 듯, 익숙한 그 자리에서 시간과 추억, '우리'와 '그대'를 노래한다.
음반의 지위를 높이는 것은 고유의 무게감뿐만이 아니다. 오랜 파트너 조동익이 수놓은 풍부한 엠비언스는 이전의 앨범과 < 나무가 되어 >를 구분 짓는 중요한 질료다. 포크 사운드와 엠비언스, 신시사이저와 스트링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울려 거장의 음악적 전진을 도왔다. 섬세한 시적 언어와 소리 풍경, 무심히 깔리는 목소리가 얼었던 마음을 무너트렸다. 어쩌면 우린 지난 세월 동안 이런 위로가 절실했는지도. (정민재)
정새난슬 - < 다 큰 여자 >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정새난슬은 어머니, 아니 여성으로서 한바탕 풍파를 겪은 이후 그에 대한 소회를 음악으로 풀어냈다. 한 인격이 마주한 산후우울증, 자살기도, 이혼 등의 고초는 노래의 원료가 되어 < 다 큰 여자 >의 페미니즘적 메시지로 승화하였다. 어긋난 사회통념과 투쟁한다는 점에서 그와 일맥상통하는 포크투사 정태춘의 편곡 기여는 사운드의 저항성을 강화한다.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듯한 표현방식은 동양풍 색채를 머금은 보컬과 만나 지긋한 현실감을 뿜어낸다. 특유의 한(恨)의 정서를 가감 없이 드러낸 정새난슬의 서사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서 '여성'의 심정을 대표하기에 이른다. (현민형)
잔나비 - < Monkey Hotel >
20대 중반만이 만들 수 있는 앨범. 힘든 세상의 구심력마저 초월해내는 패기와 열정, 그 안에 담겨있는 비탄과 짠 내 나는 설움들이 곳곳에 묻어 있다. 추구하고픈 이미지, 전달하려는 메시지, 표현해내는 작법들은 조심스레 한 데 엮여 < Monkey Hotel >이라는 일종의 콘셉트 앨범으로 승화되었다. 이 호텔, 분명 럭셔리, 부티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나 관광객들에게 꼭 추천해주고픈 '한국 맞춤형'에 가까워 보인다.
어지러운 작금의 세태, 혼란스러운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북쪽 극지(極地) 원숭이들' 같은 힙한 그룹보다 위안을 주는 건 그 이름마저도 평범한 '잔나비'였다. 어찌 보면 들쭉날쭉해 보이는 여러 장르들도 '잘 들리는 멜로디'라는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헷갈리지 않는다. '이지 리스닝'은 쉽게 쓰인 것이 아니라 화려하고 장렬한 고민 끝에 만들어진 숭고한 결과물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어렵게 쌓아 올린 밴드의 정체성, 그 특별한 모노리스를 잃지 않았으면. (이기찬)
전범선과 양반들 - < 혁명가 >
담배 대신 곰방대를 물고 아쟁 대신 기타를 든 이 청년들에게 어찌 매료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조선'과 '록'. 좀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서로 경합하고 화합하며 생생하게 재연된다. 묵직한 하드록의 주형 속에 퓨전과 아이디어가 뜨겁게 녹아 흐른다. 그것도 본질적인 미학 - 해학과 풍자까지 고스란히 품은 채 말이다. 그야말로 재미도 감동도 있는 판타지한 앨범이다.
어째서 몇 백 년 전의 조선시대와 지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이 변하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걸까. 더욱이 혁명가는 올해 반드시 필요한 노래가 아닌가. 시국마저 이들의 노래에 힘을 보탠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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