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45년 2월 6일, 자메이카의 작은 도시 세인트 앤에서 태어났습니다. 밥 말리의 아버지는 당시 영국 해군 장교인 중년의 백인이었고, 어머니는 10대의 자메이카 여성이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 불우했고,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그는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적개심과 반항 가운데 뒷골목을 전전하는 어두운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음악에 눈을 뜬 밥 말리는 1963년 The Wailers(울부짖는 사람들)란 이름의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며 자국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고, 점차 민족주의 혁명가적 뮤지션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후에 발표한 두 앨범, < Soul Shakedown > (1969)과 < Catch a Fire > (1973)를 기점으로 밥 말리는 전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얻게 됩니다. 특히 그의 독특한 레게리듬 노래들은 새로운 음악 실험을 원했던 영미 팝 음악인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면서 자주 리메이크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밥 말리 역시 주류 팝 음악 시장에 자연스럽게 소개되었고, 자메이카의 민속 리듬인 레게는 세계적 열풍을 일으킵니다.
음악적인 영향을 넘어 밥 말리는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반 제국주의적 가치 속에 흑인들의 자긍심과 해방을 노래했을 뿐 아니라, 평화와 사랑, 평등과 희망의 인류 보편적 인권 정신을 자신의 노래들에 담으며 전 세계 억압당한 모든 민중들의 가슴을 울리는 힘을 담아냈습니다. 그는 'Redemption song'에서 흑인 민권 운동의 가치는 억압하는 권력자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정신적 노예근성'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데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너 자신을 정신적 노예근성에서 해방시켜라. 오직 우리 자신만이 우리 정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Emancipate yourselves from mental slavery; None but ourselves can free our minds.)
밥 말리의 가장 유명한 대표곡은 'No Woman, No Cry'입니다. '안 돼요,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라고 번역될 수 있는 제목에서 여인은 바로 밥 말리의 조국 자메이카를 의미합니다. 지금 처한 최악의 상황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도, 눈물 거두고 희망을 가지라는 진심어린 위로를 담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본래 1974년에 발표한 < Natty Dread > 앨범에 실려 있지만, 이후 소울의 느낌을 잘 살린 라이브 버전이 보다 더 유명합니다. 그의 사후에 발표된 베스트 앨범 < Legend >에도 라이브 버전이 실려 있습니다. 이 노래는 밥 말리가 성장기를 보낸 자메이카의 수도 트렌치타운(Trench town)에 사는 빈민들의 삶과 정치적 '위선자'들에 대한 투쟁을 감동적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는 트렌치타운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있던 때를 기억해요.
그때 수많은 좋은 사람들과 위선자들을 지켜보고 있었죠.
이 과정 속에 우리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또 그들을 잃기도 했어요.
밝은 미래에도 당신은 이러한 과거를 잊어서는 안돼요.
그러니 눈물을 그쳐요.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
1절을 보면 밥 말리와 그의 가난한 동료들이 시청 앞 광장에서 '위선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자메이카 국민들의 피폐한 삶을 망각한 채 그들을 압제했던 외국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들의 이권만을 챙기는 당시 기득권자들을 의미합니다. 밥 말리와 그의 친구들은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으며 이 위선자들에 대항해 싸웁니다. 그 과정에 그는 같은 뜻과 비전을 나누는 진실한 친구들을 만나, 투쟁의 어려운 과정에서도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좋았던 친구들이 압제 속에 희생되며 죽어가는 동료를 바라보는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밥 말리는 “우리의 밝은 미래에도 이런 과거를 결코 잊어선 안돼요.”라고 부르짖습니다. 이러한 역사의식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간직해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입니다.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것처럼 “역사를 망각한 사람들은 역사의 실수를 반복하는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인권이라는 이름의 자유는 저절로 주어진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 권리를 위해 지난 날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투쟁하고 희생된 아픔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우리는 또 다른 권리와 정의를 위해 계속 싸워가야만 우리의 미래에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조지는 불을 붙였고, 통나무는 밤새 타올랐어요.
우리는 옥수수죽을 만들었어요. 나와 당신이 함께 나눌 양식이죠.
가진 것은 오직 두 발 뿐이지만, 이 두 발로 계속 전진할거예요.
모든 것은 다 잘 될 거예요!'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2절에서는 가난한 빈민들의 소박한 삶과 희망을 노래합니다. 조지라는 친구는 밤새 불을 지폈고 그들은 옥수수 죽을 함께 만들어 나눕니다. 결코 화려한 만찬이 아니라 그저 끼니를 때우기 위한 소박한 음식이지만 그들은 욕심 없이 함께 나눕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곤 그저 몸뚱이뿐이지만, 그 두 발로 내일을 향해 계속 전진해 갈 것을 다짐합니다. 밥 말리는 우리가 물질적 풍요 가운데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삶의 방식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밥 말리의 노래는 결코 비판과 분노로 끝나지 않습니다. 흥겨운 레게리듬과 함께 밥 말리의 노래들은 늘 희망을 선언합니다. 그래서 본 노래 뿐 아니라 밥 말리의 노래 속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모든 것은 다 잘 될거야(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입니다. 라이브 버전에서 청중들과 함께 계속 반복하는 이 구절을 듣다 보면, 위대한 희망의 동력과 기쁨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저 막연한 개인주의적 자기최면이 아닙니다. 이 희망의 구호는 현실적 실천과 싸움으로 이어졌고, 개인의 욕구 성취와 성공이 아닌 공동체적 공존과 희망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현 시국을 맞아 유명 가수들이 대거 참여한 '길 가에 버려지다'라는 노래가 무료로 공개되었습니다. 이 노래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기득권을 위해 버려진 평범한 사람들의 답답함과 분노를 느낍니다. 아울러 현 시국이 장기화되며 생기는 국정의 공백과 혼돈을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이번 기회는 그 어떤 정부와 시민단체들도 이루지 못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비리와 문제점들을 들어내 청산할 수 있는 기회인지 모릅니다. 인도의 작가, 디팩 초프라(Deepak Chpra)가 말한 것처럼, “모든 위대한 변화는 혼돈을 통해 이루어집니다.(All great Changes are preceded by chaos.)”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에서 촛불을 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위선자들'을 향해 저항하고 있습니다. 평화적이며 질서 있는 촛불 시위의 멋과 시민의식에 외신들도 감탄해 마지않습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재치 있는 행위들을 통해 마치 밥 말리 노래 속 아름다운 축제를 연상시킵니다. 이 시위가 단지 정치적 위선자들에 대한 저항을 넘어 우리 안에 만연했던 개인주의적 이기심에 대한 반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우리는 길 가에 버려진 듯한 힘없는 사람들이지만 함께 이 길 가에서 다시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길 기대합니다.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윤영훈 (빅퍼즐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