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가 데뷔하기 훨씬 이전, 이미 자신을 'Nasty Gal'이라고 선포한 아티스트가 있다. 1960년대 말 자신의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것을 거침없이 발산했던 뮤지션. 마일즈 데이비스의 아내이면서 지미 핸드릭스와 염문을 뿌렸던 그녀. 시대의 속도를 너무 빨리 추월하는 바람에 자신의 음악이 화형에 처해져 버렸던 베티 데이비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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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ty Gal
어딘가 낯익은 이름이다. 킴 칸스(Kim Carnes)가 '아름다운 눈동자'라며 노래까지 불렀던 푸른 눈동자의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가 떠오른다. 하지만 철자가 한 글자 다른 뮤지션 베티 데이비스(Betty Davis)는 호탕한 웃음과 건강미가 돋보이는 흑인 가수다. 원래 이름은 베티 마브리(Betty Mabry)로 그녀의 성은 재즈의 황제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와 결혼한 후에 바뀌었다. 짧은 결혼 생활이었지만 그의 전 남편이었던 마일즈는 자서전(1989)에서 그녀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베티는 오늘날의 마돈나처럼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여자로서는 유일하게 프린스처럼 노래를 했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 베티 데이비스로 노래를 했다. 그녀가 모든 것의 시초였다. 그녀는 시대를 앞선 여자이다.”
베티 데이비스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공업도시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제철소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처음 음악을 접한 것은 할머니의 농장이었는데, 비비킹(B.B. King), 지미 리드(Jimmy Reed),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 같은 블루스 뮤지션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특별한 교육 없이 듣는 것만으로 음악을 습득한 그녀는 12세에 자신의 첫 자작곡 '나는 사랑의 케이크를 구울 거야 (I'm going to bake that cake of love)'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16세가 되었을 때 고모가 있는 뉴욕으로 떠나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뉴욕도 음악, 문학, 영화 등 다양한 취향과 문화가 꽃피는 도시였다. 그녀는 출중한 외모 덕분에 모델 활동도 했는데, 두뇌를 필요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일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음악에 눈을 돌린다. 음악을 하면서 여러 뮤지션과 교류하게 되었고, 운명의 남자. 마일즈 데이비스를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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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 Love Song
마일즈에게 그녀의 영향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패션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죽 바지를 입고, 화려하고 독특한 스카프 장식을 둘렀다. 그의 음악 키워드 중 하나인 '퓨전'에도 그녀의 손길이 미쳤다. 베티는 자신과 친분이 있던 펑크, 소울 뮤지션을 연결시켜주기 시작했다. 특히 지미 핸드릭스와의 만남은 마일즈에게 큰 충격이 되었다. 동시대 다른 장르 뮤지션과의 교류는 마일즈의 명반 < Bitches Brew >에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원래 앨범의 제목은 'Witches'였는데 베티의 조언으로 'Bitches'로 바꿀만큼 그녀의 입김은 강했고, < Filles de Kilimanjaro >앨범에는 아예 그녀의 사진이 들어있을 정도로 둘의 사랑은 뜨거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지미 핸드릭스'가 문제가 되어 결별을 맞게 된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계속해서 둘의 관계를 의심했고, 결국 1969년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이혼 후 베티 데이비스는 'Anti love song'을 발표한다. 대놓고 사랑을 저주하는 제목, 그리고 가사가 상당히 노골적이다. 이 노래뿐만 아니라, 그녀의 앨범은 대부분 터프하고 공격적이다. 곡명에'F.U.N.K.', 'Funk funk y'all funk'를 쓸만큼 펑크를 주축으로 하는데,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Sly & The Family Stone)의 래리 그레이엄(Larry Graham), 산타나(Santana)와 저니(Journey)의 기타리스트 닐 숀(Neal Schon)이 그의 음악 동료기도 하다. 그녀의 앨범은 총 4장이 발매되었는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 Is It Love or Desire? >은 허비 행콕(Herbie Hancock, 척 레이니(Chuck Rainey)같은 최고의 뮤지션과 함께 작업 한다. 하지만 이 앨범은 레코딩 후, 33년 뒤에 출시가 되는 사연 많은 음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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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Say I'm Different
노래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다 못해 걸걸하다. 으르릉 거리며 포효하고, 관능적인 교성을 마구 흘린다. 게다가 사이키델릭한 기타와 쇳소리 가득한 사운드까지 결합하면서 그야말로 야생과 본능의 에너지들이 쏟아진다. 도발은 공연에서도 계속 되었다. 아슬아슬한 복장에 허공에 발차기를 하거나 무대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충격으로 느껴질 만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들이었다.
불행하게도 1960년대 말의 미국은 이런 자유분방한 흑인 여자를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남성 관객들은 그녀에게 심한 거부감과 부담을 느꼈다. 당연한 수순처럼 종교단체와 음악단체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고, 공연은 취소되었으며 노래는 라디오 전파를 탈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그녀는 변변한 히트곡이 하나 없다. 빌보드 R&B 차트 66위에 오른 'If I'm in luck I might get picked up'(1973)과 97위에 랭킹된 'Shut off the lights'(1975)가 공식적인 기록일뿐이다. 결국 베티 데이비스는 1979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음악을 그만두었고, 이후 대중의 시선에서도 사라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움이 그녀의 음악을 삼켜버린 것이다.
마녀 아티스트는 도덕성에 문제가 있거나 누군가를 홀리게 하는 마력으로 탄생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욕 먹을 각오와 용기를 가지는 것. 그것이 바로 마녀 아티스트의 첫 번째 조건이다. 몹시도 모가 나있던 그녀가 있었기에 프린스(Prince)와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독창적인 개성이 경배 받는 날이 온 것일지도 모른다. 한계를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당연한 듯 정해져 있는 규칙들을 두드려야만 갇힌 울타리가 조금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Yes, I`m A Witch]는 '오노 요코'의 노래 제목입니다. 오노 요코는 비틀즈를 해체시키고 줄리안(주드)에게 아버지를 빼앗은 대표적인 음악계의 '마녀'지요. 그녀를 처음 접했을 때는 저도 '음악계 3대 마녀'쯤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알수록 사악한 여자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과 일에 솔직한 아티스트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코너에선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을 지키기 위한 여성 아티스트들의 투쟁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마녀'라고 부르기가 가혹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그녀들. 하지만 이땅에서 여전히 우리의 싸움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