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버트 존슨이 인생의 '교차로'(Crossroad)에서 음악적 재능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대중음악의 신화처럼, 밥 딜런은 어느날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영혼을 내려놓았다. 1979년말 밥 딜런은 갑작스레 '거듭난 그리스도인'(born-again Christian)이 되었다고 선언하며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더 나아가 이 때 발표한 세 장의 앨범 < Slow Train Coming >(1979), < Saved >(1980), < Shot of Love >(1981)에는 자신의 회심을 고백하고 신을 찬미하는 노래들로 채웠다. 이후 몇 년간 그는 전도자로 활동한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검은 새가 지저귄다. 태초의 첫 번째 새처럼.
노래할 수 있음을, 이 아침을, 그리고 그 창조물들을 찬양하라....
이 햇빛은 나의 것, 이 아침은 나의 것, 에덴의 즐거움이여
그 장엄함을 찬양하라. 이 아침을 찬양하라.
하느님이 다시 창조하신 이 새로운 날을
- 캣 스티븐스(Cat Stevens), 'Morning has broken'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캣 스티븐스의 대표곡 'Morning has Broken'의 가사다. 이런 노래를 불렀던 그가 1977년 갑자기 이슬람으로 개종해 이름까지 유스프 이슬람(Yusuf Islam)으로 개명했을 때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슷한 시기 유대인이었던 밥 딜런이 기독교에 귀의한 것은 당시 대중들에게 이런 충격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밥 딜런의 전기 작가인 로버트 쉘턴(Robert Shelton)에 의하면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고, 어릴 때 다른 유대인들처럼 유대교 예식 참여는 물론 히브리어도 상당 수준으로 학습했다. 일부 언론과 평단은 늘 베일에 쌓여있던 그의 신비주의 전력을 근거로 그의 회심을 의심했다.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벌인 일종의 쇼라는 것이다. 더욱이 몇 년간의 뜨거운 전도활동 후 그는 자신의 신앙적 입장에 대해 철저히 침묵했으니 이런 의심이 생길만도 하다.
2016년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자 각 언론들은 저마다 딜런에 대한 다양한 특집 기사들을 서둘러 보도했다. 그런 가운데 기독교 일간지 <국민일보>의 종교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등장했다.
"그의 대표곡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Knockin' On Heaven's Door)'는 신앙의 언어가 세상을 향해 무엇을 말하는지 잘 말해준다. 딜런의 노래는 하나님을 위한 찬양이다. 그의 시는 예수의 언어다. 1960년대 인권·평화운동의 상징인 그의 성서적 메시지의 노랫말과 시어는 크리스천 아티스트를 포함한 크리스천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열린 세계를 향한 메시지'나 다름없다."
- “길고 좁은 길이다”… 삶에 지친 이들을 향한 위로, < 국민일보 > (2016년 10월 14일자 기사)
이번엔 아예 밥 딜런의 신앙의 궤적을 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를 크리스천 음악의 대부로 만들어버린다. 60년대 밥 딜런은 마틴루터킹의 인권 운동에도 참여하였고, 당대의 포크 뮤지션들이 종교적 노래를 부르는 사례가 많아 가스펠송 녹음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문 뮤지션으로서 그의 첫 번째 녹음은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발매한 캐롤린 헤스터(Carolyn Hester)란 가수의 데뷔앨범에 수록된 가스펠 송 'I'll Fly Away'에 하모니카 세션으로 참여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그가 기독교 신앙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 아니다.
또한 'Knockin' on heaven's door'는 그 제목과 가스펠적 분위기 때문에 종교적 노래로 오인한 것 같다. 이 노래는 한 보안관(1절) 또는 병사(2절)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두운 먹구름에 절망하며 죽어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반전 노래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품격은 좀 떨어지지만, 우리말로 번역하면 “저승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쯤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죽음을 앞둔 한 영혼의 진솔한 고백과 경건한 음악적 분위기에서 종교적 감흥까지 이끌어내는 명곡임에 틀림없다.
1970년 전후, 미국 음악계의 대전환이 이루어진다. 왜곡된 히피 정신을 가졌던 찰스 맨슨과 그의 추종자들은 여배우 샤론 테이트(로만 폴란스키 감독 부인)를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또한 롤링스톤즈의 알타몬드 공연에서는 죄 없는 흑인 청년이 오토바이족 헬스 엔젤스의 칼에 맞아 죽었다. 패션이 된 약물은 수많은 청춘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소위 '27클럽'의 '위대한 3J'(지미 핸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가 약물중독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사건은 음악계에 흐르던 저항문화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대신 카펜터스, 캐롤 킹, 짐 크로취 같은 싱어송라이터들의 서정적이고 따뜻한 노래가 사랑 받게 된다.
밥 딜런 역시 이 시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행복했던 결혼도 권태기에 빠졌다. 결국 밥 딜런의 외도로 아내 사라와 이혼했고 다섯 자녀의 양육권 역시 긴 소송 끝에 잃어버렸다. 또한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 Renaldo and Clara > 역시 평단의 지독한 혹평 가운데 실패했다. 무엇보다 그의 내면에 지독한 허무감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1970년대 밥 딜런은 시적 은유가 가득한 노랫말의 확장과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계속했다. 당시 그의 노랫말을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 자신의 의미가 무언지를 되묻는 사상적 고뇌가 두드러진다.
당시 밥 딜런은 '흑인 문화'에 심취해 있었다. 흑인 음악, 흑인 음식, 흑인 스타일에 흑인 애인까지. 부인과 이혼 후 그가 사귀었던 여성들은 모두 남부 출신 흑인들이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코러스 싱어 케롤린 데니스(Carolyn Dennis)와 결혼해 여섯째 아이를 낳았다. 그녀 역시 흑인이었다. 한대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당시 밥 딜런은 흑인들의 가스펠에 매료되었고, 그 안에 담긴 그들의 신앙에도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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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1978년 밥 딜런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빈야드 펠로우쉽 처치'의 성경공부에 참여하게 된다. 이 교회가 속한 '빈야드 크리스천 펠로우쉽'은 은사주의적 성격이 강해 기독교에서 이단 시비까지 일으킨 바 있는 초교파 교회이고, 이적과 체험을 강조한다. 이 교회는 1990년대에는 '모던워쉽'을 주도하며 기독교 음악계에 큰 획을 그었다. 지금도 미국 뿐 아니라 국내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 빈야드가 발표한 노래들을 예배 때 부르고 있다.
이런 '복음주의' 기독교는 보수적 교리와 사회관, 그리고 종말론적 가르침을 강조한다. 밥 딜런이 회심한 빈야드 교회 역시 그 특성상 이런 '복음주의' 그룹에 속한다. 이 교회에서 그는 존 듀이어 목사의 영향을 받으며 결정적으로 회심하고 세례를 받는다. 신약성서를 깊게 읽으며 자신의 공허한 일상을 위로하는 예수의 메시지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1979년 발표한 < Slow Train Coming >은 제리 웩슬러(Jerry Wexler)가 프로듀싱하고 다이어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가 기타로 참여하며 평단으로부터도 큰 찬사를 받았다. 제리 웩슬러는 빌보드지 기자 시절 처음으로 '리듬앤블루스'(R&B)란 용어를 사용했고, 1950-1960년대 레이 찰스와 아레사 프랭클린 등의 음반을 프로듀싱하며 흑인 음악 활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때까지 그의 수많은 히트곡들을 외면해 왔던 '보수적인' 그래미는 놀랍게도 이 앨범의 타이클곡, 'Gotta serve somebody'에게 그의 첫 번째 그래미상(최우수 록보컬 남자 부문)을 안겨주었다.
밥 딜런의 크리스천 삼부작 앨범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종교적 회심의 진정성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딜런은 특히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말씀들을 자신의 노래들에 인용했다. 아울러 그 내용은 종말론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 < Slow Train Coming >에 수록된 노래 중 마지막 트랙, 'When He returns'의 한 구절을 소개해 본다.
얼마나 오래 이 광야의 두려움에 빠져 있어야 하나요?
그분이 다시 오시기까지 이 땅에 진정한 평화는 없는 건가요?
이 피 흘린 땅 위에 너의 왕관을 내려놓아라.
가면을 벗어라. 그분은 너의 행실을 알고 있다.
그분은 다시 오실 때, 자신의 나라를 이루실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이 곡 뿐 아니라 다른 곡에서도 그는 선명하게 신앙을 고백하며 종말론적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얼마나 오래? - 이 광야에서 – 진정한 평화”를 갈구해야 하나? 결국 그의 해답은 세상에 대한 절망 속에서 다시 오실 예수가 완성할 종말을 꿈꾸는 것으로 드러난다. 다른 찬송 가사들이 주로 질문보다는 해답과 신에 대한 수직적 찬송에 대한 내용인 반면 밥 딜런은 그 가운데 현실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표한다는 면에서 기독교 음악으로서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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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발매 이후 딜런은 1979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투어를 진행했다. 총 79회의 공연에서 그는 오직 새롭게 만든 종교적 노래만으로 세트리스트를 채웠고, 공연 중 신앙고백과 전도 메시지를 전했다. 1980년 5월 투어를 마치며 그는 저널리스트 카렌 휴스(Karen Hughes)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그분이 언제나 나를 부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부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적절한 때와 뜻을 이루십니다. 나는 바로 그분의 때에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1980년 11월부터 1년간 지속된 다음 투어에서는 공연 중 종교적 노래와 자신의 히트곡을 함께 불렀고, 공연 전 대기실에서 세션들과 함께 '주기도문'을 함께 낭송하며 공연을 시작했다.
< 밥 딜런 평전 >(실천문학사, 2008)을 보면 당시 그의 회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가 후대에 기독교에 심취하게된 이유는 미국의 혼란스런 사회상에서 이데올로기도, 아니면 그에 반하는 이데올로기도, 전쟁을 찬성하는 국가지배층도, 반대로 반전을 주장하는 이도, 그들의 행동 양식은 결국은 성경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그의 노래는 정확한 해독이 어려울 만큼 의미가 다중적이고, 복잡하다. 또한 철저하게 가려진 그의 사생활과 모호한 인터뷰로 인해 그 의미를 풀기에는 많은 의문을 만들어 냈다. 그의 난해한 삶의 종적은 한 사람의 삶이라곤 믿기지 않는 다양한 면을 보여 왔다(숨겨 왔다).
영화 <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 >는 그의 삶과 음악, 그리고 사상의 다양한 배경과 단면을 일곱 명의 인물과 에피소드를 통해 풀어낸 아주 독특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도 딜런의 종교적 단면은 크리스천 베일이 분한 '존 목사'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크리스천 베일은 이 영화에서 저항가수 '잭 콜린스' 역할도 맡아 밥 딜런의 두 모습을 대변한다.
이후 밥 딜런은 빈야드 교회와 결별하며 자신의 회심에 대한 지속적인 고백이나 전도 활동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는다. 1982년 이후 그는 기독교 신앙을 중단하고 다시 유대교로 복귀했다는 소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아울러 그의 종교적 입장과 변화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신앙적 외도(?)는 이대로 끝나버린 것일까?
밥 딜런은 그 이후에도 공연에서 기독교 삼부작의 노래들을 꾸준히 불렀다. 그 중 'Gotta serve Somebody'와 < Saved > 앨범에 수록된 'In the Garden'이 가장 많이 연주되었다. 특히 1999년경 그는 공연에서 더 자주 종교적 노래들을 불렀고, 자신의 노래 뿐 아니라 'Rock of Ages', 'Hallelujah I'm ready to go', 'Somebody touched me' 같은 옛 찬송들도 공연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2009년 밥 딜런은 크리스마스 앨범, < Christmas In The Heart >을 발매한다. 종교적 다원사회가 된 미국에서 "Merry Christmas"라는 인사는 공식적으로 “Happy Holiday”라고 표현한다. 2000년대 발매한 대부분의 캐롤 앨범도 “홀리데이” 뮤직으로 명명하지만 밥 딜런은 앨범에 “크리스마스”란 단어를 표기하고, 선곡도 예수에 대한 찬미의 노래들로 채웠다.
그의 새로운 신앙의 노래는 의외로 2012년 발표한 앨범 < Tempest >에서 나타난다. 이 앨범에 수록된 'On Narrow Way'의 가사를 보자. 그의 영혼의 여정은 더 성숙한 모습으로 계속되고 있다.
나는 내가 뒤에 남겨지리라(left behind)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날이 저물어가던 때에 한 음성을 들었어요.
“평안하라 형제여, 평안히 기도하라”
그것은 먼 길이죠. 아주 멀고 좁은 길이예요.
만약 내가 당신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언젠가 나를 끌어내리겠죠.
밥 딜런의 노랫말의 유산은 그 언어의 미학적 가치, 사회적 저항정신, 철학적 사유의 깊이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 큰 감동과 의미를 전해준다. 밥 딜런의 음악세계는 그가 지나온 시대의 정서와 상황 속에 너무나 다양한 이미지를 보인다. 격동의 시대를 부대낀 60년대 '밥 딜런'은 그 시대의 저항성을 대표한다. 70년대를 지나며 밥 딜런은 개인적 불행과 사회적 변화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내면의 질문에 응답해 왔다. 그의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런 여정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80년대 이후 밥 딜런은 지금까지 대중적 인기와 상관없이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찾는 여정 속에 계속 새로운 실험을 지속한다. 그것은 그의 노랫말처럼 “멀고 좁은 길”이었으리라.
윤영훈 (빅퍼즐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