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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9일에 있었던 고별 콘서트 < Wild Life >의 말미, 무대 중앙에 마이크를 내려놓은 뒤 손을 흔들고는 자취를 감췄다. 대중은 우려했다. 그 모습이 흡사 같은 행동으로 영영 대중의 곁을 떠나버린 야마구치 모모에(山口 百恵)와 닮아있던 탓이었는지도. 그렇게 하염없는 기다림은 영원을 기약했고 일각에서는 컴백은 없다라 단정 짓기도 했다.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면서도, 한 가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유명인으로서의 우타다 히카루'를 지탱할 힘이 그 순간을 끝으로 모두 소진되어 버렸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확실히 지쳐있었다.
당시 일본에서 다소 생소했던 블랙뮤직으로 최다 판매량 앨범이라는 기록을 써내려갔던 그 때, 그녀는 열다섯 살에 불과했다. 나이도 나이였지만, 불세출의 엔카가수인 후지 케이코(藤 圭子)의 딸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각종 매체와 대중들의 관심이 눈덩이 불듯 불어갔다. 일본이 낳은 알앤비 신성, 천재 싱어송라이터에 이어 열도를 대표하는 여가수까지. 불과 반년 사이에 자신이 짊어지기 힘든 짐들이 순식간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벗어 던질 권리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부턴 오로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레이스에 임해야 했을 뿐. 그 많은 것이 얽혀있던 세계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우타다 히카루 자신 뿐이었다. “50세 정도가 되었을 때 매니저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아줌마가 되고 싶진 않았다.”라는 그녀의 말은, 마치 최근 방영된 어느 드라마 속 웹툰 캐릭터들이 사라지듯, 인생에 대한 맥락이 없어짐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 또한 희미해지고 있음을 자각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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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내려놓고 휴식에 들어간 지 근 5년, 갑작스럽게도 컴백 기사를 접했다. 물론 그간 완전히 은둔해 있던 것은 아니었다. < 에반게리온 : Q >의 주제곡 '桜流し(벚꽃 흘려보내기)'(2012)를 발표했고 라디오 DJ를 하며 음악을 소개하기도 했다. 다만 전과 달리 이것을 주업으로 삼지는 않았다. 여행을 다니는 것이, 글을 끼적이는 것이,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그녀의 삶에 있어 훨씬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음악을 배제한 삶의 경험,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복구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확연했다.
물론 원치 않은 주목을 받았던 사건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어머니 후지 케이코의 자살. 그 망연자실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미행까지 감행했던 언론의 플래시 세례와 검증절차도 밟지 않은 수많은 오보들. 슬퍼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작금의 상황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하는 유명인으로서의 운명은 다시금 연예활동 재개에 대한 의지를 시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혼과 출산을 거쳐 마음을 다잡은 우타다 히카루의 모습엔, 5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얻은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기반으로 일에서의 행복 또한 쟁취하겠다는 열의가 살며시 비쳐보이기도 한다.
►최근 방영한 < Songs >에서의 라이브. 그녀의 생각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고 싶다면 필견.
일본 대중음악사를 훑어보면, 여성 솔로 아티스트에게 있어 인간으로서의 행복과 연예인으로서의 행복은 좀처럼 일치되지 못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앞서 언급했던 야마구치 모모에는 모든 영욕과 부를 내려놓은채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을 택했고, 마츠다 세이코(松田 聖子)는 무엇도 신경쓰지 않는 자기주도적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했으나 대신 희대의 악녀라는 닉네임을 얻게 되었다. 아무로 나미에(安室 奈美恵)는 갑작스러운 발표를 통해 결혼을 감행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안타깝게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하마사키 아유미(浜崎 あゆみ)는 여러 번의 이혼을 거치며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 하락을 감수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시도 사례에 우타다 히카루가 곧 추가될 예정에 있다. 예전과 달리 양자택일이 아닌 둘 간의 일치에 대한 욕구가 아티스트들 사이에 더욱 깊숙이 퍼져나가는 상황이기에, 그의 컴백 후 활동은 단순한 음악활동을 넘어 '아티스트가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또 하나의 대답이 될 것이다.
9월 28일 발매를 앞두고 있는 8집 < Fantome >(2016) 수록곡 중 지금까지 공개된 곡들은, 편안한 팝 사운드를 추구했던 < Heart Station >(2008) 보다도 더 일본 대중의 정서에 맞닿아 있다. 그것은 이제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수식어를 벗고, 노래에 담긴 진심만으로 대중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고 싶은 희망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다시금 시작되는 중견가수의 음악여정. 앞으로의 활동을 통해 그러한 희망이 실현될지, 그리고 이 험난한 연예계 속 또 다른 행복의 발견이 가능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앞으로 울려 퍼질 그의 새로운 노래들로 인해, 누군가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물론 나 또한 그럴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