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청명한 공기와 맑고 푸른 하늘 아래 특별한 가을날의 추억'을 만들기엔 초가을 아니 늦여름의 태양은 너무도 뜨거웠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산을 펼쳐 따가운 햇빛을 가리며 공연 관람할 준비를 마칠 때 즈음 < 슈퍼스타K5 > 출신 가수 박시환의 편안한 미성이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단 한사람', '가슴아 뛰어' 등을 열창한 그는 무대 밑으로 내려와 관객들과 소통하는 활기찬 무대매너를 보여주며 분위기를 돋우었다. 여느 페스티벌보다 비교적 우월한 음향장비는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저음부 음색이 매력적인 박재정과 함께 '그땐 그랬지'를 듀엣으로 선보이며 박시환은 퇴장했고 박재정, 조형우, 장재인으로 대표되는 어쿠스틱한 감성의 '미스틱 라인'이 뒤를 이었다. 이들과 더불어 악동뮤지션, 에디킴, 백아연 등 라인업의 상당수가 TV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임을 상기함에, 한때 가요계를 휩쓸었던 오디션 열풍이 남긴 영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단언컨대 < 2016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 >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무대를 선보인 것은 몽골에서 온 두 남매, 악동뮤지션이었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로 시작하여 '200%', '외국인의 고백', 'Give Love'에 이어 마지막 곡 '인공잔디'까지 이어진 재기발랄한 라이브 연사(聯射)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만족스런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특히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쾌한 무대멘트와 둘 만의 화학작용이 만들어내는 쇼맨십은 자라섬에 긍정에너지를 한껏 불어넣었다.
해질 무렵, 대한민국 가요계의 산증인 심수봉이 무대에 올랐다. 새하얀 백의를 차려입은 채, 나긋한 톤으로 노래를 시작한 그의 목소리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청초한 음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역사의 흔적이 담긴 '그때 그 사람', '무궁화'부터 절절한 사랑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사랑밖엔 난 몰라', '백만송이 장미' 등 곡들은 시원한 밤공기와 함께 애달픈 감성을 선사했다. 연인 관객에게 서로에 대해 미리 내려놓으라며 농을 던지는 그는 얼마 전 배우기 시작했다는 춤을 신곡과 함께 선보이며 아직 현역임을 증명했다.
헤드라이너 이승환의 차례가 다가오자 돗자리 혹은 텐트에 누워 여유롭게 음악을 즐기던 관객들이 스탠딩존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첫 곡 '좋은 날'로 스타트를 끊은 이승환은 오늘 공연이 자신의 개런티를 무대에 모두 재투자한, '돈지랄' 콘셉트의 라이브임을 자처하며 관객들의 기대를 끌어올렸고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내 맘이 안 그래'의 황제의자, '덩크 슛'의 거대 풍선공, '제리제리고고'의 연기를 뿜어내는 총, '슈퍼 히어로'의 공기인형, '천일동안'에서의 레이저쇼, 무대를 마무리한 화려한 폭죽까지, 매 곡 마다 화려한 소품을 준비하여 '공연의 신' 다운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백드롭의 역동적인 모션그래픽 영상을 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마지막을 장식한 곡은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였다. 이승환의 완벽한 가창에 더해진 진심어린 노랫말은 < 2016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 > 첫 날의 감동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2일차]
에디킴의 달달한 감성으로 포문을 연 둘째 날. 백예린, 백아연, 지소울(G.Soul)로 이어지는 'JYP 사단'의 무대가 시작됐다. 간드러지는 음색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백예린의 능숙한 라이브는 관객들을 만족시켰고, '이럴거면 그러지말지', '쏘쏘' 등의 히트곡을 보유한 백아연은 십센치(10cm)의 '스토커'를 커버하며 찌질한 감성의 사랑노래를 적절히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JYP의 마지막 주자는 의외로 낮은 인지도의 지소울(G.Soul)이었다. 대중들에게 익숙지 않은 스타일 덕에 마치 해외 알앤비 가수가 내한 공연 온 듯한 광경을 자아냈지만 단단한 가창력과 유려한 보컬스킬은 곧 관객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자라섬과 어울리는 부드러운 감성의 에코브릿지(Eco Bridge), 제아의 무대가 지나가고,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어반자카파(Urban Zakapa)의 무대가 펼쳐졌다. 밝고 흥겨운 'Beautiful Day', '목요일 밤', 'Get'과 애절한 감성의 '봄을 그리다', '똑같은 사랑 똑같은 이별' 등 다채로운 분위기의 곡들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듣는 즐거움과 라이브의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며 그림같은 노을 풍경을 만들어낼 즈음, 하림의 고즈넉한 목소리가 울려펴졌다. 시작을 연 '여기보다 어딘가에'의 아일랜드 피리소리는 자라섬의 정취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이어진 신치림(윤종신, 조정치, 하림)의 '출국', '1월에서 6월까지',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오래전 그날' 등 가을냄새 가득한 곡들로 < 2016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 >의 밤은 점점 무르익었다.
신치림 무대가 끝나고 곧바로, 스페셜 게스트(Special Guest) 가인이 무대에 나섰다. '돌이킬 수 없는', 'Apple' 등 확고한 섹시 콘셉트로 여성 솔로 활동을 보여주었던 그는 이틀 전 발매된 신곡 'Carnival' 라이브를 선보였다. 오케스트라와 우산 소품을 동원한 구성은 꽤나 화려했고 이어진 'Paradise Lost'와 '피어나'를 통해 그의 매력을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페스티벌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긴 여정 끝에, 드디어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할 '대중가수' 김건모의 차례가 시작되었다. 꽃무늬 자켓을 걸치고 선글라스를 쓴 채 무대에 등장한 그는 '핑계'로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첫 인상', '사랑이 떠나가네' 등 연이은 히트곡들은 세대를 아우르는 '떼창'을 이루어내었고, 피아노 반주와 함께한 '미안해요', '서울의 달'은 가려운 감성을 긁어주었다. 노래뿐만 아니라 무대 위 멘트, 동작 하나 하나를 관객의 즐거움에 쏟는 그는, 가수를 넘어선 '희극인' 그 자체였다.
한국에 페스티벌 문화가 발생한지도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대중가요를 대표하는 음악축제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록, 재즈, EDM 등 해외 아티스트가 주요 지분을 차지하는 페스티벌의 홍수 속에서 온전히 대중가요만을 즐길 수 있는 <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 >의 특수성은 갈채받아 마땅하다. 이른바 '이지 리스닝' 곡들로 채운 단 하나의 무대에서 세 살배기부터 지천명에 이른 이까지 둘러앉아 즐길 수 있기에, 진정 대중을 위한 음악축제임이 느껴졌다.
사진 : 미스틱엔터테인먼트, 현민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