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여가수들 중에서 우리가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은 나미와 김완선, 강수지 정도일 것이다. 이들을 제외한 다른 여가수들의 수명은 그다지 길지 못했다. 1991년에 발표한 데뷔곡 '눈감아 봐도'로 이듬해에 높은 인기를 누렸던 박준희 역시 후자 군에 포함되는 아이돌 여가수였다.
18살에 데뷔한 박준희는 주요 멜로디 부분에선 가성으로 처리한 고음으로 자신의 가창력이 만만치 않음을 과시했다. 확실히 가녀린 이미지의 강수지나 하수빈, 이지연, 안혜지와는 달랐다. 오히려 '미니데이트'를 부른 윤영아와 공통분모가 많았다.
노래도 남달랐다. 곡의 전체적인 공기는 세련되고 매끈하다. 드럼과 베이스, 리듬 기타의 볼륨을 높여 리듬감을 풍부하게 가져갔으며 세공된 기타 솔로 연주도 기존 가요와는 거리를 두었다.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뉴잭스윙의 분위기를 한껏 흡수한 것. 특히 드럼의 하이해트 소리를 정확하게 잡아낸 사운드는 당시 가요에선 자주 들을 수 없는 획기적인 시도였지만 '눈감아 봐도'의 패착은 가요계의 고질병이었던 허락받지 않은 모방이었다. 1989년, 퀸시 존스가 레이 찰스, 샤카칸과 함께 브라더스 존슨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I'll be good to you'의 도입부 드럼 연주는 '눈감아 봐도'에 그대로 재생됐으며 곡 전체의 온도는 바비 브라운이 1988년에 발표한 'Every little step'이나 'Don't be cruel'과 유사하다. '눈감아 봐도'가 먹혀들 수 있었던 건 두 노래가 우리나라에서 자주 방송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박준희는 이 노래의 리믹스 버전인 '눈감아 봐도 2'로 자신의 히트곡을 우려먹었고 후속곡 'Oh boy'로 그 인기를 잠시 연명하고는 우리 시야에서 곧 사라졌다. 그리고 '눈감아 봐도'를 작곡한 유정연은 이후에 핑클의 '영원', 백지영의 'Sad salsa', 이승철의 '발레리나 걸', 신승훈의 '가을빛 추억' 등도 만들며 인기 작곡가의 대열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