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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구 영화계는 부지런히 1980년대를 되새김질한다. < 베스트 키드 >, < 자유의 댄스 >, < 고스트버스터즈 >, < 블루 썬더 >, < 폴리스 아카데미 > 등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들의 리메이크가 이 움직임을 방증한다. 그런가 하면 < 락 오브 에이지 >, < 픽셀 >, < 데싸우 댄서스 >, < 쿵 퓨리 >, < 터보 키드 >처럼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그 시절 문화와 물건을 제재로 적극 활용한 작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반추하는 시대는 다르나 서양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과거를 흠모하는 데 열을 올린다. 존 카니 감독의 신작 < 싱 스트리트 >도 1985년에 시간을 맞춰 흐름에 합류한다. 유행을 고려한 설정으로 느껴진다.
영화의 주성분인 음악도 트렌드를 좇는다. 80년대에 융성했던 신스팝은 2008년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Just dance'가 히트한 이후 아울 시티(Owl City), 라 루(La Roux), 처치스(CHVRCHES), 리틀 부츠(Little Boots), 이어스 앤드 이어스(Years & Years) 등에 의해 부흥을 맞이하고 있다. 제목으로 사용된 영화 속 가상 밴드 싱 스트리트(Sing Street) 역시 그때의 시류를 따라 신스팝, 뉴웨이브를 주메뉴로 선보인다. 이는 시대상의 전달인 동시에 현대 동향의 포착이기도 하다.
영화는 교훈 면으로도 요즘 영화, 특히 할리우드의 분위기를 따른다. 주인공 코너(페리다 월시-필로 분)의 부모님은 매일 부부싸움을 하기 바쁘다. 게다가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학비를 줄여야 한다며 아무런 상의 없이 코너를 공립학교로 전학 보낸다. 이런 상황에서 코너는 부모님 다음으로 집안에서 나이가 많은 형 브렌던(잭 레이너 분)을 의지한다. 나이 차만 줄었을 뿐 < 다이 하드 4.0 >, < 배틀쉽 >, < 피치 퍼펙트: 언프리티 걸즈 > 같은 영화가 내포한 '윗사람은 충분히 훌륭하며 은혜롭다'는 메시지를 < 싱 스트리트 >도 동일하게 내보낸다.
첫눈에 반한 라피나(루시 보인턴 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밴드를 만들기로 결심한 코너는 음악 마니아인 형에게 계속해서 조언을 구한다. 형은 코너에게 매번 현명하고 신실한 스승이 돼 준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브렌던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분개하기도 하는데 이때 그는 자기가 집안에서 이뤄 놓은 것들 덕분에 동생들이 그만큼 누리고 살 수 있었다며 본인을 치켜세운다. 집에만 처박혀 대마초나 피우고 허구한 날 음악만 듣는 백수지만 나름대로 업적이 있는 사람임을 주장한다. 하찮아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유의미한 존재임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귀한 인생 선배가 되는 형과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까닭에 밴드와 이들의 활동에 대한 서술은 빈약하다. 각 악기가 호흡을 이루는 과정이 쉽지 않으며 구성원 저마다 지향과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기에 현실에서 밴드 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싱 스트리트에게서는 갈등이나 분쟁을 찾아볼 수 없다. 멤버들은 모두 미래파라는 포괄적인 기치에 순종한다. 강당에서 공연하는 장면 중 분위기를 고조할 시점에 코너가 자기감정에 꽂혀 발라드 'To find you'를 부르겠다고 할 때에도 멤버들은 군말 없이 그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이들 사이에 물리적 싸움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밴드의 실상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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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멤버 중 기타리스트 에이먼(마크 매케나 분)이 작곡과 편곡에 큰 역할을 담당해 출연 빈도가 높지만 그 또한 코너와 결코 마찰을 빚지 않는다. 영화 속 그의 재능은 언제 어디서든 써먹을 수 있는 만능쿠폰으로 소모된다. 코너는 라피나에게 영감을 얻고 형 브렌던을 통해 해답을 찾는다. 때문에 코너의 성장은 있으나 밴드와 멤버들의 성장은 부재하다. 분명 밴드가 주인공인데 밴드 영화는 아니다.
시류를 타는 영악한 설계와 인자들, 편향적인 전개에서 기인한 허술함을 음악이 커버한다. 밴드의 음악 방향에 길잡이가 된 듀란 듀란(Duran Duran)의 'Rio'를 비롯해 코너가 라피나에게 환심을 얻으려고 불러야 했던 아하(A-ha)의 'Take on me', 에이먼이 짤막하게 연주하는 해럴드 폴터마이어(Harold Faltermeyer)의 'Axel F', 말다툼하는 부모님을 피해 코너와 남매들이 방에서 듣는 홀 앤드 오츠(Hall & Oates)의 'Maneater' 등 옛 히트곡들이 스토리와 연계하며 틈을 메운다. 이 노래들을 아는 이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아직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흥을 일으킬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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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영국 팝 그룹 대니 윌슨(Danny Wilson)의 프론트맨으로 활동했던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게리 클라크(Gary Clark)가 만든 오리지널들도 만족스럽다. 밴드의 첫 창작곡으로 쓰인 'The riddle of the model', 신시사이저, 일렉트릭 기타, 선명한 후렴 등 각 구성 요소가 잘 화합된 'Drive it like you stole it'은 준수함으로 영화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뉴웨이브와 팝 록을 버무려 경쾌함을 자아내는 'Up'과 'A beautiful sea', 현악기 반주로 서정미를 발산하는 팝 발라드 'To find you'도 등장인물의 심리와 특정 시퀀스를 부연하며 흥미로움을 더한다.
쥐어짜낸 충언도 음악과 함께 영화에 감흥을 보탠다. 코너가 밴드를 만들고 나서 듀란 듀란의 'Rio'를 커버하자 형이 한 말이 압축된 주제다. "로큰롤은 위험이 따라. 조롱당할 수 있는 위험!" 두려워하지 말고 소신대로 자기만의 것을 하라는 의미다. "중요한 건 네 상상력이야. 꿈을 크게 가져!"라는 형의 또 다른 대사는 영화에 담은 사상의 노골적인 전달이다. 이와 더불어 라피나와의 관계 진전을 위해 밴드를 결성하고 음악을 만들면서 당당하게 변한 코너의 모습도 메시지에 해당한다. 현실이 버거워서 돌파구를 필요로 하는 청춘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가 음악으로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