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alls And Bridges >라 명명한 앨범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소통 및 사랑을 가로막는 장벽(베를린 장벽도 남아있던 시절)과 이를 허물어 내기위한 가교 건립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래서인지 함께한 밴드의 이름도 창조적 파괴의 측면에서 플라스틱 오노 '뉴클리어' 밴드(Plastic Ono Nuclear Band)인지 모른다. 리버풀 미술대학 출신인 그의 어린 시절 습작으로 이루어진 앨범 커버도 살펴보면 3가지 비일관적 주제의 그림들을 종이접기처럼 앞뒤로 옮길 수 있는 종래 없던 혁신적 방식을 택했다. 구매자에게 커버 내용 선택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참여를 촉구하는 그만의 방식일 수 있겠다.
외로움과 혼란에 기반을 두고 제작되었지만 결과물은 의외로 정돈해있다. 앨범 전반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는 반-거세되었으며 음악적으로는 비틀스 멤버들의 영향에 더해 전성기를 구가하던 해리 닐슨(레논, 매카트니가 뽑은 가장 좋아하는 미국 뮤지션)의 록적 터치가 서려있다. 새로운 연인 메이 팡(May Pang)에 대한 애정을 담은 첫 곡 'Going down on love'를 지나 시작되는 'Whatever gets you thru the night'이 대표적이다. 닐슨의 대표곡 'Jump into the fire'의 그 가속도 위에서 색소폰, 키보드 솔로(엘튼 존 초청)가 함께 춤추며 유토피아적 쾌락주의를 향한 송가가 완성되었다.
'요코'로 대표되는 모성애에 대한 채워질 수 없는 갈망은 먼지 자욱이 내려앉은 'Old dirt road'에서 사색에 빠져 사랑을 갈구하는 'What you got', 이어 축복 가득한 인생을 바라는 'Bless you'로 확인할 수 있다. 이어 거짓말처럼 빌보드 9위까지 오른 '#9 Dream'에서는 백일몽에 빠져 페달기타 연주가 주조하는 나른함과 희망감을 만끽할 수 있으며 비틀스 'Drive my car'의 리프를 삽입한 'Surprise, surprise', 폴 매카트니 'Let me roll it'의 오마주인 펑키(Funky)한 디스코 리듬의 곡 'Beef jerky'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앨범 후반부 뮤직 비즈니스의 고저를 모조리 경험해본 고참이 내놓은 로큰롤 'Nobody loves you (When you're down and out)'은 비틀스 시절 물질적 재화를 바라보는 양가적 시선('Money'와 'Can't buy me love'의 차이점)을 떠오르게 하는 고차원적 메시지를 던진다. R&B 뮤지션 리 도르시(Lee Dorsey)의 곡을 커버했으며 어린 아들 줄리안에게 드럼을 맡겨 행복한 부자관계에 희미한 빛줄기를 비치며 문을 닫는 'Ya ya'까지 앨범에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처지는 곡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힘든 시기에 제작되었지만 역설적으로 레논 솔로 디스코그라피 중 가장 밝은 앨범. 천상 슈퍼스타 기질을 타고난 레논에게 점점 옅어지는 대중의 관심은 곧 죽음을 의미했을 것이다. 다행히 운신의 폭을 넓히며 진한 물감으로 덧칠된 이 앨범을 통해 세계와 레논의 간극은 좁혀질 수 있었다.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 술과 약물로 자아를 점철시킨 방식이 잘못되었을 수 있을지라도, 그 사회적 교류를 통해 생성된 활기찬 음악은 아직 전 세계에 남아있다.
-수록곡-
1. Going down on love
2. Whatever gets you thru the night

3. Old dirt road
4. What you got
5. Bless you
6. Scared
7. #9 Dream

8. Surprise, surprise
9. Steel and glass
10. Beef jerky
11. Nobody love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12. Ya 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