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다이내믹하고 흥겨운 밴드'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를 창립했으며 싱어 역할뿐 아니라 송라이팅, 프로듀싱까지 도맡던 밴드의 심장 모리스 화이트(Maurice White)가 지난 2016년 2월 4일 방년 75세의 나이(1941-2016)로 세상을 떠났다. 음악인들에게는 벌써 재앙의 해와 다름없는 2016년 먼저 길을 떠난 많은 아티스트들의 소식처럼, 그의 죽음도 밴드 SNS 페이지에 글이 올라옴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밴드 베이시스트이자 모리스의 동생 버딘 화이트(Verdine White)는 '형이 오늘 아침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신과 나에 따스한 빛을 비춰주고 있을겁니다.'라며 담담하게 부고를 전해주었다. 동시에 그는 각지에서 쏟아지는 애도는 정말 감사하고 전설을 잃은 세계의 비통함은 인지하지만 인생의 다른 국면에 접어들 가족과 밴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혀 팬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모리스 화이트는 1992년 신경퇴행성 질환 파킨슨병 선고를 받고 이후 1995년 투어 등 밴드 활동을 중단했으나 앨범 컨셉이나 일정 관리 등 중추적 일은 끝까지 그의 몫이었다. 2000년 밴드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 솔로로는 2010년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그는 장르를 아우르는 여러 뮤지션들의 가까운 멘토이자 음악적 스승 역할을 담당했다. 리듬 앤 블루스, 소울, 펑크(Funk), 재즈, 디스코, 팝, 심지어는 힙합까지. 가까운 시대에 유행한 장르 중 그의 긍정적 에너지 넘실대는 발걸음이 닿지 않은 구역은 아마 없을 테다. 세대를 초월해 지구인들을 흔들고 춤추게 만든 업적을 기리며 마지막 가는 길 그가 지구에 남긴 족적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모리스 화이트는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다. 재즈 거장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는 생전 가장 좋아하는 밴드를 묻는 질문에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를 선택하며 '모든 것을 담은 밴드'라 격찬했다. 퀸시 존스(Quincy Jones)나 디온 워윅(Dionne Warwick) 역시 자신을 '지구 상 가장 열광적인 팬'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 아티스트들도 예외는 아니다. 음악웹진 이즘(IZM)이 2005년 진행한 특집 '이 시대 뮤지션 33인이 뽑은 나의명곡 15선'에서 YB출신 기타리스트 유병열과 트럼페터 이용, 조관우 등이 'September', 'In the stone', 'Boogie wonderland', 'Fantasy', 'Let's groove' 같은 명곡을 열거하며 거장에 대한 예우를 표한 바 있다.
디안젤로(D'Angelo), 샤카 칸(Chaka Khan), 뮤지크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 등이 모리스 화이트의 음악을 커버했고 샘플링으로 활용한 아티스트만 열거해도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 스눕 독(Snoop Dogg), 나스(Nas), 제이 지(Jay-Z), 엘엘 쿨 제이(LL Cool J) 같은 힙합 분야 거장이 즐비하다. 열렬한 추종자를 자처하는 프린스(Prince), 필 콜린스(Phil Collins), 베이비페이스(Babyface), 어셔(Usher), 패럴 윌리암스(Pharrell Willams)말고도 자미로콰이(Jamiroquai), 린킨 파크(Linkin Park), 폴 아웃 보이(Fall Out Boy) 같은 각 분야의 밴드, 비교적 최근에는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나 2016년 그래미 신인상 수상자 메간 트레이너(Meghan Trainor) 같은 신예까지 그의 음악적 후예들만 줄을 세운다 하더라도 아마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그에게 지난 2월 16일에 개최된 음악계 거대 행사 58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거장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와 최근 급부상하는 아카펠라 그룹 펜타토닉스(Pentatonix)는 평생 음악을 통해 치유를 주었던 그를 기리기 위해 'That's the way of the world'를 헌정했다. 어쩌면 인생의 일부이자 그마저도 또 하나의 길일 수도 있는 죽음이기에 참 어울리는 곡이었다. 역시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킨 스티비 원더도 고인의 마지막을 추도하듯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는 퍼포먼스로 기립박수를 자아냈다. 모든 인종과 세대를 아우르고자한 정신을 보여주기에 딱 알맞은, 빵빵 터지진 않아도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참 고마운 무대였다.
그의 죽음은 음악계뿐 아니라 유수 분야 여러 인사들에게도 충격의 대상이었다. 평생 그의 천재성에 경의를 표하던 시크(Chic)의 나일 로저스(Nile Rodgers)나 퀸시 존스(Quincy Jones)는 음악적 동료와 영감을 주고받던 지난날을 잊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이에 더해 마크 론슨(Mark Ronson), 퀸 라티파(Queen Latifah), 씨 로 그린(Cee Lo Green), 셰어(Cher) 등이 조의를 표했다. 특히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는 킹, 지니어스, 리더, 티처 등 모리스 화이트에 봉헌하는 수식어로 가득한 트윗을 남겨 애틋함을 더해주었다. 2009년 2월 22일 EWF를 백악관에 초청해 본인 행정부 공식행사의 음악가로서 첫 포문을 열게 해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역시 '오늘밤 그는 천국에서 반짝이는 별이 되었을 것이다.'라며 진심담긴 장문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모리스 화이트는 멤버들의 사진이 나온 모든 앨범 재킷의 중심에 그가 있듯 밴드 심장이었다. 왼쪽에서 2번째 1975년 작 < That's The Way Of The World >가 예외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역시 게이트폴드(Gatefold) 재킷으로 제작되었기에 펼쳐보았을 때는 마찬가지다. 그는 시카고에서 램지 루이스 트리오(Ramsey Lewis Trio), 솔티 페퍼스(Salty Peppers) 등으로 밴드 활등을 하다 로스앤젤레스로 건너와 궁수자리 기간에 태어난 자신의 점성술 기호 불, 땅, 공기를 따서 밴드 이름을 지었다. 밴드 리드 싱어로 독보적 팔세토 창법을 자랑하는 필립 베일리(Phillip Bailey)를 두긴 했지만 안정적인 저음을 통해 기둥 역할을 담당했으며, 드럼을 연주했고 칼림바(Kalimba : 엄지손가락을 튕겨 연주하는 오르간과 비슷한 아프리카 전통악기)를 사운드 전면에 앞세워 서구에 소개했다. 이후 그는 악기에 이름을 딴 레이블을 설립해 여성 솔로 가수 데니스 윌리암스(Deniece Williams)등을 발굴해 히트시키기도 한다.
그의 곡들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여러 미디어에 삽입되어 분위기를 돋웠다.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폰, 자동차 광고 등 자주 흘러나와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는 몰라도 'September' 곡 하나만 아는 사람도 많을 정도다. 밴드의 음악은 여러 영화 가운데 < 무모한 도전(The Ringer) : 2005 >, < 박물관이 살아있다(Night At The Museum) : 2006 >, < 라스트 베이거스(Last Vegas) : 2013 > 등에서 특유의 활력 있는 분위기를 주조하는데 일조했다. 계층을 넘은 진정한 우정을 담은 영화 < 언터처블 1%의 우정(Untouchable) : 2011 >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간병인 역을 맡은 흑인 주인공이 자신을 고용한 전신불구 백인 남성에게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며 들려주는 'Boogie Wonderland'는 이후 자연스레 이어지는 화합의 시발점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분위기메이커 역할보다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한 영화를 찾으면 먼저 멜빈 반 피블즈(Melvin Van Peebles) 감독의 1971년 흑인선정영화 대표작 < 귀여운 스윗백의 난폭한 노래(Sweet Sweetback's Baadasssss Song) >가 있다. '난폭한 검둥이는 백인에 대한 빚을 청산하기 위해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는 전언으로 백인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 영화는 독립역화 역사 상 가장 큰 수익을 올린 작품이 되었다. 이 영화 사운드 트랙을 당시 신인 급이던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가 전담하게 되어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후 멜빈 반 피블즈 감독의 아들 마리오 반 피블즈(Mario Van Peebles)가 아버지께 경의를 담아 < 귀여운 스윗백... > 제작과정을 그린 영화 < 배드애스!(Baadasssss!) : 2003 >에서는 배우 카릴 케인(Khalil Kain)이 1970년대 젊은 시절 고군분투하는 모리스 화이트(Maurice White) 역을 맡아 찬란했던 그 시절을 그려낸다.
1975년 발매되어 밴드에 첫 빌보드 앨범차트, 싱글차트 1위를 선사한 돌파구 같은 앨범인 6집 < That's The Way Of The World > 역시 본래 동명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제작되었다. 영화는 배우 하비 케이틀(Harvey Keitel)이 주연 음반 제작자 역을 맡아 카펜터스(Carpenters)로 대표되는 백인 중심 음악 산업에서 소외당하는 흑인 그룹들의 모습(카메오로 직접 등장하는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 멤버들을 주목해보아야 한다.)과 이를 타파하려는 시도를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앨범 수록곡 'Shining star', 'That's the way of the world', 'Africano' 등이 스크린에서 적시에 흘러나와 당대 음악 비즈니스 중심에 있는 듯 현장감을 더했다.
모리스 화이트는 전 세계에 긍정적 기운을 가진 메시지를 설파하기 위해 평생을 공들였다. 펑크(Funk)를 기저에 두고 재즈, 소울, 가스펠, 팝, 로큰롤, 사이키델리아, 블루스, 포크, 레게, 디스코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비빔밥 같던 밴드를 만들어낸 그이기에, 때로는 영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음악을 통하여 전 우주를 하나 되게 만들려는 그의 다짐은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현재 널리 쓰이는 의미와는 조금 다른 '세계화(Globalization)'을 꿈꿨다. 존 레논이 'Imagine'을 통해 그렸던 이상사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가 사상을 녹여낸 앨범의 커버들, 왼쪽에서부터 < Spirit >(1974), < All N' All >(1977), < I Am >(1979), < Powerlight >(1983)까지 살펴보자. 모리스 화이트가 온전한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1970-80년대 '우주 시대'를 맞아 공상 과학적 앨범커버를 만들어 내기로 유명했던 일러스트레이터 슈세이 나가오카(Shusei Nagaoka)가 이를 풀어낸 작품들이다.
먼저 < Spirit >은 고대 이집트로 대표되는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피라미드를 중심 이미지로 채택한 밴드를 그린다. 이 이미지는 적잖게 변용되어 무슬림의 알라(Allah)에서 파생된 단어를 앨범명으로 삼은 < All N' All >과 구약 성서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약속한 'I am that I am'이라는 기독교적 어구를 본떠 만든 < I Am >으로 나아간다. 이어지는 6개의 차크라를 그려낸 앨범커버로 동양적 색채까지 다소간 포함하는 모습만 보아도 종교와 인종을 뛰어넘고자 하는 그의 평생에 걸친 숙원사업은 파악되는 것이다.
모리스 화이트의 음악에 찬사만 쏟아졌던 것은 아니다. 팔라이멘트(Parliament)와 펑카델릭(Funkadelic)의 수장이던 피-펑크(P-Funk) 창시자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은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를 두고 '땅에 바람은 솔솔 불고 있으나 불이 점화되진 않는다.'며 비교적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나 연주보다는 멜로디에 지향점을 두었다며 비난했다. 또한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기술해 시대정신을 개혁해보고자 노력하던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의 < Superfly >, 마빈 게이(Marvin Gaye)의 < What's Going On >같은 명반들과 지위를 나란히 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잠시 여러 의견을 접어두고 1980년 작 < Faces >의 타이틀곡 'Let me talk'를 살펴볼까. 햇볕만큼 따사로운 가락을 뚫고 전달해내는 메시지를 자세히 들어보면 그 생각도 달라지리니. '나는 굳건히 서있으니, 내게 말할 기회를 달라.'던 그는 가장 점화되기 힘들다는 내면의 불꽃을 피어내기 위해 평생 나름의 사회적 운동을 지속한 것이다. 가장 최근 2013년에 발표한 정규 20집 < Now, Then & Forever >의 의미가 생각나는 시점이다. 모리스 화이트는 갔어도 그가 남긴 음악은 현재와 나중이라는 시간의 강을 넘어 영겁의 세월 존재하리라. 마지막으로 이제 잠시 슬픔일랑 접어두고 그가 남겨두고 떠난 노래들, 빵빵하게 터지는 브라스에 맞춰 춤춰보는 것이 어떨까. 걱정 붙들어 매고 마치 죽음이라는 개념마저도 쉽사리 잊힐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