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음악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여겨지는 미국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 제58회 그래미 어워즈가 2016년 2월 15일 LA에서 개최된다. 이미 아델과 켄드릭 라마, 위켄드와 저스틴 비버 등 2015년을 빛낸 가수들이 축하 무대를 확정 지었고, 레이디 가가는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보위의 추모 무대를 꾸민다. 이 날 최대 관심사는 무려 11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켄드릭 라마의 수상 여부. 평소 힙합 앨범에 무심했던 이들이, 지난해 많은 평단이 주저 없이 '올해의 앨범'으로 꼽았던 < To Pimp A Butterfly >에 응답할 것인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위 장르와 영상물에 대한 시상을 포함하면 80개가 넘는 부문 중, 하이라이트인 본상(General)은 4개로 압축된다. 가수와 작가는 물론 엔지니어 등 곡을 만드는데 기여한 모든 이의 공을 치하하는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와 노래를 만든 작곡, 작사가에게 트로피를 수여하는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한 해를 빛낸 최고의 앨범을 뽑는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과 인생에 한 번 뿐인 영예의 '최고의 신인(Best New Artist)'이 가장 무게감 있는 상으로 분류된다. 후보에만 들어도 평생의 이력이 된다는 그래미 본상. 올해 그 트로피의 주인공이 될 자격을 갖춘 이들을 이즘에서 소개한다.
Record of the Year
가늠하기 어렵다. 마크 론슨(과 브루노 마스), 테일러 스위프트, 더 위켄드, 에드 시런과 같은 트렌드를 이끄는 팝스타들과 간만에 명작을 갖고 나온 디 안젤로라는 고참 아티스트가 무대에 오른다.
프린스의 'D.M.S.R'을 매만진 듯한 미네아폴리아 사운드, 레트로 펑크 스타일의 'Uptown funk'를 내놓은 마크 론슨은 지난해 상반기에 큰 인기를 끌었고, 피비알앤비의 몽환적인 안개를 걷어낸 자리에 팝 멜로디, 디스코 리듬을 선명하게 새긴 'Can't feel my face'는 하반기에 돌풍을 일으켰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에드 시런은 또 어떠한가. '빌보드의 남자' 맥스 마틴과 손잡은 팝 요정은 하이엔드 팝 넘버 'Blank space'로 뜨거운 인기를 이어간 데다, 스타급으로 성장해가는 영국의 젊은 싱어송라이터는 푸근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흡입력 있는 알앤비 선율을 섞어낸 'Thinking out loud'로 세계를 강타했다.
약 13년 만에 새 음반을 내놓은 디 안젤로는 이 난전을 더욱 예상할 수 없게 헤집는다. 플라멩코 풍 기타 리프와 스트링 사운드, 팔세토 보컬, 소울 멜로디를 멋지게 혼합, 배치해 만든 'Really love'로 아티스트는 네오 소울의 매력과 블랙 뮤직 강자의 귀환을 동시에 알렸다.
예측불허. 준수한 곡들끼리의 싸움이다. 유행의 흐름을 주요 기준으로 잡자니 긴 숨을 몰아쉬고 나온 거물의 작품이 아쉽고, 작품성에 초점을 깊이 두자니 나머지 곡들도 결코 빠지지 않는다. 트로피의 향방에 관계없이 이해와 불만이 적잖이 공존할 형세의 경쟁이다. (이수호)
Song of the Year
앞서 만난 뮤지션들이 '올해의 노래 부문'에서도 이름을 보인다. 모두 굵직하고 쟁쟁한 후보들. 앨범으로 극찬 받았던 켄드릭 라마지만, 프로듀서 퍼렐 윌리엄스의 경쾌함이 돋보인 'Alright' 한 곡도 만만치 않았다. 'Thinking out loud'로 영국을 넘어 미국까지 매료한 에드 시런, 작년 샘 스미스에게 상을 양보해야했던 테일러 스위프트는 좀 더 높아진 위치에서 'Blank space'로 수상을 노린다.
위즈 칼리파의 대 히트작 'See you again'이 눈에 띈다. 영화 < 분노의 질주 > 배우 폴 워커를 추모하는 곡으로 슬픔을 물들이며 사랑받았다. 사운드 트랙이 빌보드 1위를 하고, 그래미 '올해의 노래' 트로피 기회를 얻은 것은 2004년 에미넴의 'Lose yourself' 이후 상당히 오랜만이다.
팝 가수들의 경쟁 사이에서 컨트리 밴드 리틀 빅 타운도 자리한다. 2007년 그래미부터 장르 내에서 호응을 받아왔지만, 주요 상 후보로 오른 것은 처음이다. 'Girl crush'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여성 간의 사랑을 다룬 노래다. 'Same love'와 'Take me to church' 등 동성애를 다룬 곡들이 계속 노미네이트 되어왔음을 고려하면, 다소 보수적이었던 그래미 심사위원진의 변화가 흥미롭다. (정유나)
Album of the Year
여느 해보다 장르적으로 균형 잡힌 후보 목록이다. 힙합과 록, 컨트리와 팝, 알앤비에 걸친 다섯 장의 앨범이 트로피를 노린다. 각기 다른 지점에서 막상막하의 활약을 보여준 만큼, 수상 결과를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컨트리의 총아에서 트렌디한 팝스타로 완벽하게 노선 전환에 성공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 1989 >는 전작 < Red >에 이어 또 한번 후보에 올랐고, < Fearless > 이후 6년 만의 수상을 꿈꾼다. 'Earned it'에서 'The hills'까지 작년 한 해 싱글 차트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린 위켄드는 < Beauty Behind the Madness >로 심사위원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블루스를 기반으로 소울과 사이키델릭 등을 조화시키며 훌륭한 재해석을 선보였던 앨라배마 셰익스의 < Sound & Color > 역시 유력한 수상 후보에서 배제할 수 없다.
전통적인 그래미의 강자, 컨트리도 후보에서 빠질 수 없다. 크리스 스태플턴의 데뷔 앨범 < Traveller >는 서던 록을 가미한 정통 컨트리 사운드를 구현, 평단의 찬사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견인하며 높은 완성도를 인정받은 다크호스. 이번 그래미에서 11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과시한 켄드릭 라마는 당연히(!) '올해의 앨범상' 부문에도 후보로 등장했다. 펑크(funk), 재즈 등을 활용한 짜임새 있는 음악, 분명한 주제의식과 철학, 문학적 가치를 겸비한 가사가 압권이었던 < To Pimp a Butterfly >는 이 날 시상식의 주인공이 될 공산이 크다. (정민재)
Best New Artist
연초부터 대단한 신인으로 거론되었던 메간 트레이너. 1993년생의 이 어린 가수는 복고적인 어법과 신세대의 태도를 동시에 취하며 기록적인 유튜브 조회수를 창출해냈다. 그와 함께 금발의 보컬리스트 토리 켈리의 이름 또한 노미네이트되었다. 켈리 클락슨이 공연장에서 토리의 노래 'Nobody love'를 직접 커버했을 정도로, 그는 팝 디바의 계보를 이을 차기 주자에 적합한 인물이다.
샘 스미스에 이어 또 한 명의 영국 남성 솔로 아티스트가 후보에 올랐다. 기타를 위주로 부드러운 포크부터 진한 록까지 아우르는 뮤지션, 제임스 베이. 대중과 평단이 동시에 응답했던 화제성을 생각한다면 그 역시 수상이 유력하다. 그래미의 컨트리 사랑도 여전하다. 싱어송라이터 샘 헌트는 자신의 음악을 굳이 특정 장르로 규정짓지는 않지만, 그의 창작의 뿌리가 미국이라는 걸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카테고리를 조금 달리해보자.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커트니 바넷이 보인다. 그는 패티 스미스의 초창기 창법을 닮은 보컬을 구사하며, 가공되지 않은 질감의 얼터너티브 록으로 잔잔한 호응을 끌어냈다. (홍은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