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 가야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해'
초등학교의 바른생활이나 건전가요에서 접할 것 같은 이 가사는 신군부가 정권을 쥔 1985년엔 먹혀들었다. 작사가 김지평이 쓴 희망적이고 착한 가사지만 우리에게 이 암울한 시대에도 1970년대의 유신시대처럼 참고 버틸 것을 종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960년 군산에서 태어난 이진관은 1980년에 < 젊음의 가요제 >로 가요계에 입문했지만 실질적인 데뷔는 1983년에 발표한 '풍선'이다. 그러다가 1984년에 어렵사리 녹음한 '인생은 미완성'을 공개했으나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히트곡의 지위를 얻은 대기만성 형 노래다.
“앨범을 들고 이곳저곳 찾아다녔는데 곡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분이 없었어요. 당시에는 '노래책 기자'라는 직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이 자신이 매니지먼트를 하겠다고 하셔서 빛을 보게 됐죠.”
이진관이 직접 작곡한 '인생은 미완성'은 1985년에 < 가요톱텐 >에서 3주 동안 1위를 차지했지만 곧바로 등장한 또 다른 신인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에 밀려났고 이후 그렇다할 히트곡을 양산하지 못한 채 잊혀졌다가 2000년대 들어서 트로트 곡을 발표했다. '통기타 가수에서 트로트 가수'로의 전향이 아닌 포크와 트로트를 병행하는 가수라고 생각해 달라는 그의 바람과 달리 우리는 그의 이름조차 멀어졌다. 이진관의 음악 인생은 아직도 미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