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arth >(2010)부터 이들을 접해왔다면, 지난 2년 7개월간의 세카이 노 오와리는 마치 다른 팀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眠り姬(잠자는 공주)' 이후 완전한 팝 노선으로의 등 돌림을 첫 번째 이유, 과도한 프로모션을 통한 상업적 행보의 못마땅함을 두 번째 이유로 들 만하다. 투 기타와 피아노, 디제이 부스를 통해 구현된 그들만의 '판타지 록'이 'RPG'의 대히트 이후 그와 유사한 스타일의 곡들로 대체되는 광경은 그야말로 결정타였다. 소박함 속의 진정성을 응원했던 초창기의 팬들은, 깃발을 들고 군용 야상을 걸친 채 무전기를 들고 노래하는 모습을 부정하며 꽤나 오랜 시간을 실망으로 채워왔을 공산이 크다.
과거의 팬이 이탈한 자리는 이미 '지금의 그들'에게 매료된 이들로 가득하다. 어쨌든 이젠 대세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그들이다. 싱글들은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고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즐길 거리가 되었다. 화제성과 구매력의 위력으로 미루어 보아 이 작품의 히트는 분명 예견된 수순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주일 만에 기록한 25만장에 가까운 판매량은 다시금 눈을 비비게 만든다. 이와 같은 폭발력은 결국, 'RPG' 이후의 지지층 외에, 돌아선 이들의 시선을 다시 붙들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자신들의 변심을 결국 '진화'라 인정하게 만들었다는 것. 과거와 현재의 지지자들을 결국 하나로 잇는,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라는 결론이 여기에서 도출된다.
< Tree >의 재킷은 작년에 발매된 DVD < 炎と森のカ-ニバル in 2013 >의 재탕이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심리를 배반한 것은, 말 그대로 이것이 '새로운 무언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 Entertainment >(2012)를 거쳐 어느 정도 입지를 구축한 후, 작정하고 긴 시간을 공들여 자신들만의 서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밴드의 유래, 보컬 후카세(Fukase)를 비롯한 멤버들의 과거사, 멤버들 간의 관계성, 이들의 음악이 처음 태어났던 클럽 어스(club EARTH),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카오와 하우스까지. 모든 것이 그물망처럼 촘촘히 교차하며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았고, 이에 흥미가 생긴 대중들은 '그들이 사는 세상'에 조금씩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렇게 파생된 관심을 기반으로, 밴드는 그 세계관이 그대로 서려있는 곡들을 선보이며 자신들의 이야기와 음악을 일치시켜갔다. 즉, 2년 7개월 동안 사람들이 보고 들어온 익숙한 모든 것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매개체가 바로 < Tree >라는 작품인 것이다. 재킷이 공개된 후 혹자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이 한 번의 정리 없이 다른 새로운 것을 개입시키는 것은 밴드로서도, 팬으로서도 어떻게 보면 전혀 필요 없는 과정이었다.
서사는 곧 이야기다. 이 이야기라는 요소가 이들 음악의 팔할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기에 4인의 창작력은, 바로 '어떤 음악을 하느냐'가 아닌 '메시지를 의도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느냐'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사랑에 빠진 환희를 그려내는 '炎と森のカ-ニバル(불꽃과 숲의 카니발)'은 불꽃놀이 소리를 베이스드럼으로 사용하고 오케스트라를 야외에서 녹음하며 좀 더 생생히 그 행복을 표현하려 했다. 'スノ-マジックファンタジ-(Snow magic fantasy)'에서는 일반적인 스튜디오에서 벗어나 마치 '얼음성'에 있는 듯한 울림을 재현하기 위해 클래식 홀을 찾아 공간감을 살렸으며, 'ピエロ(Pierrot)'에서는 키보드의 저음부로 만든 인트로와 후카세의 심장 소리를 사용한 비트로 광대가 부리는 묘기의 긴장감을 극대화시켰다. 또한, 비디오 게임의 세계를 빌려 온 'PLAY'에서는 실제 BGM을 이용해 주요 리프를 만드는 등, '가사'에 맞는 요소들을 구현하기 위한 여러 실험들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온다. 그야말로 '무레퍼런스'의 음악들이다.
여기에 팀의 서사가 얹히며 그 드라마틱함이 배가 된다. 자신들의 시작점이었던 클럽 어스에서의 기억으로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는 'ア-スチャイルド(Earth child)', 사오리(Saori)와 후카세가 싸운 뒤 극적인 화해를 거치는 과정에서 쓴 사오리의 편지가 그 시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더욱 반짝반짝 빛나는 'RPG'가 좋은 예시다. 실제 거리를 오가며 녹음한 소음을 통해 일상 속의 절망을 묘사한 '銀河街の惡夢(은하거리의 악몽)'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결코 순탄치 않았던 후카세의 과거와 겹쳐지며 감정을 이입시킨다. 결국 노래 하나하나를 사람들의 마음에 남기기 위해, 그들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끝없이 자신들의 에피소드를 언급하며 차곡차곡 세카오와 월드를 구축해왔다. 그리고 결국 그 방점을 찍는 것이 '음악'이라는 사실을 어필하며, 끝끝내 인디 시절의 팬과 메이저 데뷔 후의 팬들을 하나의 원으로 연결시키고야 만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 볼만한 점은 바로 일본 음악계와 미디어 간의 독특한 관계성이다. 음악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시대에 접어듦과 동시에 뮤지션들은 그 음악을 어떻게 전파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에 골몰하기 시작했으며, 고민 끝에 찾아낸 자신들만의 해법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도록 전폭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는 것이 바로 최근 일본 대중음악 신에서의 도드라지는 '미디어'의 역할인 것이다. 세카이 노 오와리는 이러한 경향의 최대 수혜자다. 각종 매체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수없이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뮤지션과 미디어 간의 디테일한 상호협력 없이는 스타탄생 역시 불가능한 시기로 돌입했다는 증거를 바로 이 소포모어 작품의 히트 과정 속에서 명확히 찾을 수 있다.
후카세는 < Earth >를 통해 자신의 환생을 알렸고, < Entertainment >로는 온전치 못했던 자신이 사오리, 나카진(Nakajin), 디제이 러브라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꿈을 이룰 수 있는 위치에 다다랐음을 선포했다. 그리고, 지난 날 여러 문제들로 인해 세상과 소통하지 못했던 그는 < Tree >까지의 과정을 통해 그간 담고만 있었던 것들을 한꺼번에 공유하기 위한 하나의 우주를 창조해냈다. 언뜻 보면 거창해 보이는 것들이지만, 러닝타임을 곱씹을수록 그들의 언어가 결국 '평범함'으로 향하고 있다는 반전이 심장에 칼자욱을 남긴다.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이지만, 그 속엔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고,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내면의 갈등이 존재한다. 결핍으로부터 생겨나는 평범함이라는 이름의 판타지. 그것은 밴드가 가진 의미를 재구축하고, 밴드가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재정립하고서야 비로소 온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이제야 '세카이 노 오와리'의 세계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평범함을 갈구한들 절대로 평범할 수 없는 그 세계가.
- 수록곡 -
1. the bell
2. 炎と森のカニバ-ル(불꽃과 숲의 카니발)

3. スノ-マジックファンタジ-(Snow magic fantasy)
4. ムン-ライトステ-ション(Moonlight station)
5. ア-スチャイルド(Earth child)

6. マ-メイドラプソディ(Mermaid rhapsody)
7. ピエロ(Pierrot)

8. 銀河街の惡夢(은하거리의 악몽)

9. Death Disco
10. broken bone
11. PLAY

12. RPG

13. Dragon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