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적 자극은 가장 손쉽게 사람의 이목을 끌 수 있다. 청순발랄, 앙증맞음 다 좋지만 원초적 욕구에 미치지 못한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이후 2세대, 3세대, 4세대, 이젠 세대를 나눌 수도 없을 정도로 포화된 시장의 걸 그룹들에겐 일말의 관심이라도 절실하다. 가끔 가다 한번 정도, 혹은 특정 그룹만의 전유물이었던 과감한 유혹은 이제 팬들의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과감한 여성상이라는 미명 하에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부정적 여론과 날 선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실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다. 기자들은 걸 그룹의 노출 소식을 누구보다도 자극적인 사진으로 담아내며 관심을 끌고, 수위가 세다 싶으면 싹 닦고 점잖은 척 '지나친 노출, 이대로 좋은가'라 훈수를 둔다. '낯 뜨겁고 민망하다'는 댓글을 다는 대중은 매일 밤 자극적인 화면 속의 그녀들을 동경하며 홀로 자신을 위안한다. 수요가 있으니 상품은 봇물 터지듯 공급된다.
대한민국 가요계의 섹시 콘셉트는 이렇듯 출발부터 그 과정까지 모두 잘못되었다.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는 가요 시장은 익숙함을 무기로 인기를 얻기 위한 당연한 수단으로 인정받고, 이제는 하다못해 그들이 스스로 당당한 여성상을 주장하며 어설픈 페미니즘까지 연결 짓는 판국이다. 결과는 그것을 어느 정도 감추어줄 수 있겠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과감한 유혹들에 다들 난리를 쳐도 정작 성적은 빛 좋은 개살구다.
예술적 성과가 아닌 실적만 볼 때 상반기 걸 그룹 데뷔의 서막을 알린 에이오에이, 여름 시즌을 노린 콘셉트로 무장한 걸스데이와 시스타, 독보적인 솔로 캐릭터를 구축한 현아를 제외하고는 낯 뜨거운 비주얼이 아까울 정도다. 선정적 가사로 철퇴를 맞았던 피에스타, 어정쩡한 콘셉트 돌려막기 끝에 다시 섹시를 택한 시크릿, '제 2의 스텔라'를 꿈꿨던 포엘, 경악의 솔로 활동을 펼친 효민 등 열거하자면 끝도 없지만 그 누구도 그들만의 리그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선정성 논란은 일어날수록 좋은 편이다. 입에 오르내린다는 사실만으로 공짜 홍보가 되며 잠시라도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모든 그룹이 비슷한 복장과 비슷한 콘셉트로 무장한 현 상황은 또다시 과포화상태를 만들었다. 심지어 이제는 노래까지도 비슷하다. 이른바 '스타 작곡가'라 불리는 사단에게 요청이 쏠리고, 그들의 곡은 그룹마다 특성을 구현한다고는 하나 비슷비슷하다.
폭넓은 장르 수용성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이단옆차기의 결과물이 대표적으로, 걸스데이, 씨스타, 카라, 시크릿 등 다양한 팀에게 곡을 주었으나 일원화된 구조에서 일원화된 결과물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팬덤의 기반이 확실하고 인기 궤도에 오른 팀 (씨스타, 걸스데이, 카라) 정도만 인기를 얻지만 음악의 퀼리티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성공이다. 적당히 현재 유행하는 팝 사운드에 약간의 일렉트로닉, 혹은 힙합을 얹는 빤한 패턴은 이제 듣지 않아도 예측 가능하다.
여기에 마구잡이식 기획과 콘셉트가 또 발목을 잡는다. 노출한다고 해서 야한 것이 아니고 선정적이라고 하여 유혹이 아닌 터인데 1차원적 접근만을 고수한다. 낯 뜨거운 뮤직비디오와 민망한 패션으로 무장하고도 정작 가사는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신파극이거나 사랑받는 여자의 행복한 나날들이니 공감이 될 수가 없다.
급하게 수식을 동원해 '당당한 여성상의 표출'이라는 말도 나온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철저한 남성 위주의 기획, 철저한 자본 논리에 매장된 이들이 몸으로 외치는 페미니즘엔 아무런 힘도, 목소리도 없다. 오히려 아직도 존재하는 사회 내부 여성에 대한 압력을, 은밀히 고통의 웃음으로 호소하고 있다는 편이 훨씬 정확하다.
성과가 없다 한들 당분간 이 거대한 쾌락의 마차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말 조그마한 관심과 인기라도 얻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을 이용해 사업가는 돈을 벌고, 대중은 은밀한 유혹에 눈이 먼다. 2014년 대한민국 걸 그룹에겐 음악이 없다. 표면적 당당함도 없다. 자아를 잃어버린 이들의 관능적인 몸짓이 허공을 가르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우리는 가요 역사상 가장 화려한 빈껍데기만 바라보고 있는, 진공 상태에 던져졌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