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칸, 거론할 만한 경향, 특징, 화제 등 즐비
첫 번째 칸 통신에서 누리 빌제 세일란의 <윈터 슬립>의 황금종려상 수상 가능성을 전했지만, 사정이 녹녹한 건 아닌 게 칸 현지 분위기다. 총 10인 중 별표를 주지 않았던 마지막 한명이 2개(4개, 4점 만점)을 부여하는 바람에 스크린 인터내셔널 종합 평균 평점이 3.6점에서 3.4점으로 내려가서 하는 말은 아니다. 평점 선두인 <미스터 터너>나 압데라만 시사코의 <팀북투>와의 경쟁이 만만치 않아서 하는 말도 아니다. 그보다는 올해 유난히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영화 평론가들이나 저널리스트들이 호의적 평가를 내리는 영화들이 하도 많아서 하는 말이다. 빈말이 아니라, 그 간의 칸 경험 상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호의적 평들이 수두룩하다. 막강 권한을 자랑한다는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 제인 캠피온이 워낙 극적 갈등·긴장을 앞세운 드라마를 중시―지난해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가 칸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심사위원장 제인 캠피온의 영화적 취향·지향이 결정적 작용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또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가 2004년 심사위원 대상을 안을 수 있었던 것도 심사위원장이 박감독의 열혈 팬인 쿠엔틴 타란티노여서 가능했던 것처럼!―하는 터라, 그 진지한 문제작에 유리하지 않을 공산이 크기에 하는 말이다. 9명의 심사위원들 중 5명이 배우(전도연, 윌렘 데포, 카롤 부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레일라 하타미)인지라, 감독들에 비해 느린 호흡의 긴 영화들을 보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 익숙할 그들에겐 3시간 16분의 긴 영화가 적잖이 부담스러웠을 테고, 심지어는 지루했을 수도 있으리라는 것도 불리 요인이기도 할 테다.
황금종려상 수상이나 개인적 지지 여부 등에 상관없이 그럼에도 <윈터 슬립>은 이른바 영화 작가주의의 어떤 정점이며, 나아가 한 획을 그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논란의 여지 다분하나, 스타일이나 소재, 주제 등에서 드러나는 영화적 일관성, 질적 완성도, 개성 등을 척도로 삼는, 사실상 비평 방법론이건만 '주의'로 통용돼온 그 주의 아닌 주의의 모든 강령들을 전적으로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건대 그 점에서 세일란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적자로 자리 매김 될 자격 충분하다.
영화제 후반에 접어들며, 일찌감치 예상돼 오던 상황이 벌어졌다. 20일(현지 시각)을 기해 <로제타>(1999)와 <더 차일드>(2005)로 이미 두 차례나 칸의 정상에 올랐던 장 피에르 & 뤽 다르넨 형제의 <투 데이즈 원 나잇>이 선보이며, '반전'이 일어난 것. 어느 날 갑자기 동료들의 투표로 해고 위기에 몰린 한 여인 산드라(마리옹 코티아르 분)가 토·일 주말을 이용해, 자신의 해고 대가로 동료 열여섯 명이 받기로 예정돼 있는 특별 보너스 1,000유로를 포기하게 설득,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눈물겨운 과정과 결말을 그린 사회성 휴먼 드라마. 그렇다고 이 영화가 스크린 인터내셔널 10인 평가단으로부터 <미스터 터너>보다 더 높은 평점을 득한 것은 아니다. 3점을 얻어 3위에 마크됐다. 만점 4점을 준 평자는 1명밖에 되지 않는다. 열광이나 탁월(Excellent)보다는 양호(Good)하다는 평가가 대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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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인터내셔널처럼 다양한 국적의 10인 전문 평자로 구성된 갈라 크롸제트의 평가를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무려 8명이 4점 만점을 부여했다. 다른 2명도 3점을 줘, 종합 평균 3.8점이다. 일찍이 목격한 적 없는 기록적 열광이다. 르 필름 프랑세의 경우도 '광분'(a la folie)이 대세다. 15명 중 과반인 8명이 4점 만점을 주며, 열광을 보냈다. 열정적으로 좋아한다는 3점도 4명이다. 반면 '보통'에 해당하는 많이 좋아한다는 2점이 1명, 조금밖에 좋아하지 않는다는 '별로'가 2명이다. 평균 3.2점. 평점이 발표된 16편의 경쟁작 중 최고점이다.
프랑스 평자들이야, 실업이나 해고 문제가 워낙 절박한 사회 문제니 만큼 영화가 한층 더 절절하게 다가섰으려니 치자. <라 비 앙 로즈>의 에디프 피아프 역으로 2008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등을 안았던 마리옹 코티아르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라, 영화의 으뜸 미덕인 그녀의 열연이 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섰으리라 치자. 아니나 다를까, 스크린 인터내셔널 10인 중 프랑스인으로는 유일한 저명 평론가 미셸 시망도 <미스터 터너>에는 2점을 준 데 반해 이 영화에는 4점 만점을 줬다. 재미삼아 들여다보면, 스크린 기자를 포함 네 명이나 참여한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영국 평자들은 흥미롭게도 한 결 같이 <미스터 터너>에는 4점 만점을 <투 데이즈 원 나잇>에는 3점을 부여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구도가 영어권 대 불어권의 대결 양상인 셈.
헌데 다양한 국적의 인터내셔널 평자들로 이뤄진 스크린 인터내셔널과 갈라 크롸제트의 그 큰 차이·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하긴 갈라의 평자들이 대체적으로 후하긴 하다. 더욱이 실업 이슈는 비단 프랑스에서만 심각한 사회 문제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다르넨 형제 감독의 카메라 시선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산드라의 그 힘겨운 사연을, 그들 특유의 거리 띈 시선으로 담담하게 추적, 제시한다. 냉철하다 못해, 지나치게 냉정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의문은 물론 다르넨 형제의 영화들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다. <로제타>, <더 차일드> 등 전작들에 비하면 외려 일말의 따듯함마저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차가움 속에서 감지되는 온기가 위 열광의 주된 이유일까? 아니면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는 뜻밖의 반전성 결말에 강렬한 임팩트를 받은 것일까, 나처럼?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지나치게 무난하기에 던져보는 물음이다.
이쯤에서 황금종려상 유력 후보들인 <팀북투>와 <미스터 터너>에 대해 부연해야 할 듯. <팀북투>는 르 필름 프랑세 평점 3점으로, <투 데이즈 원 나잇>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갈라 크롸제트 평점도 3점. 황금종려상은 아닐지라도, 판단컨대 확실한 수상권에 들 만하다. 팀북투'는 서아프리카 말리 공화국 내 니제르 강가에 위치한 도시. 영화는 2012년 말리에서 두 자녀를 둔 젊은 커플이 정식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부부로 살아간다는 연유로 지하드 이슬람 군에 의해 투석으로 사망한 실화를 극화한 문제적 수작이다. 영화제 메인 카탈로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팀북투에는 침묵이 흐르고, 문들은 닫혀 있으며, 거리들은 텅 비었다. 더 이상 음악도 없고, 차도, 담배도, 밝은 색깔도, 웃음도 없다. 여자들은 그림자가 돼버렸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자 '사막의 진주'로 불렸다는 팀북투는 2012년 이슬람 테러로 파괴되었다는데, 2013년 프랑스군과 말리 정부의 공동 작전으로 탈환되었으나 여전히 위험 지역으로 머물러 있다는데, 감독은 그 실상을 위 가족의 비극사를 통해 고발하고 싶었던 것.
그 정치적·종교적 색채로 인해 더러는 선동적이거나 센세이셔널하게 흐를 법도 하건만―그랬다면 칸 초청은 불발됐을 터―감독은 전혀 그런 노선을 걷지 않는다. 일말의 센티멘털리티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 덤덤한 거리감이 <투 데이즈 원 나잇>을 빼 닮았다. 하지만 기자 회견 에서도 절제할 수는 없었는지, 감독은 한 순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점점 똑같아질 것이다. 모든 존재 안에는 선악의 양면이 있다. 지하디스트는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 영화 촬영을 하며 숱한 난관들을 겪었건만, 그것을 용기라고 여기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진정 용감한 것은 그것을 살아낸 사람들”이라면서. 감독의 이 묵직한 문제 제기에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자못 궁금한 것은 나만은 아닐 듯.
<미스터 터너>는 '빛의 화가'라는, 19세기 영국의 대표 화가 J.M.W 터너에 대한 문제적 전기 드라마다. 경쟁 부문에서만 네 편으로 유난히 많은 전기물 중 가장 높은 완성도와 흡인력을 구비했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최고 평점은 괜히 주어진 게 아닌 것. 물론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도 있다. 다른 영화들엔 후한 편인 갈라 크롸제트의 경우, 영화에 2.9점으로 인색하게 평했다. 르 필름 프랑세도 약 1.9점으로 그렇고. 결국 영화에 대한 평가가 적잖이 갈리고 있는 셈이다. 어느 지면에서도 말했듯, “터너 역 티모시 스펄의 인물해석이 압권.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탈신화적 드라마투르기나, 압도적 색감·조명의 미장센 등이 인상적이다. 때로는 터너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만약 내게 황금종려상 감을 묻는다면, 당위성에서는 <윈터 슬립>을 선호도에서는 <미스터 터너>를 꼽으련다. 물론 보지 못한 영화들이 적잖은 터라, 변동 가능성이 없진 않겠지만 말이다.
위 영화들만 올 제6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유력 후보들인 건 아니다. 가령 테크닉아트 지는 22일 자에서, 21일 오후 4시 프레스 스크리닝을 겸해 단 한 차례 공식 선보인 프랑스 장 뤽 고다의 <언어여 안녕>을 기점으로, “장 뤽 고다르의 <장 뤽 고다르>”를 황금종려상 감으로 내세웠다. 그것만이 아니다. 심사위원대상, 감독상, 심사위원상, 남녀 연기상, 각본상 등 칸영화제 본상 전 부문을 장 뤽 고다에게 수여했다. 심지어는 신인 감독상인 황금 카메라상까지 고다르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60)에 주었다. 다분히 비현실적이나, 그저 치기 어린 장난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상징적 수상 예측이랄까.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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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80대 중반이 된 그 '젊은 노거장'의 신작은 “역시, 고다르!”라는 탄성 내지 탄식이 나올, 전형적 '고다르 표' 영화다. '저항 영화'(Counter-Cinema)의 대명사답게 내러티브적 분석이나 리뷰는 무의미하다. '콜라주'라는 규정이 제 격인 영화는 영화 몽타주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데, 이미지와 사운드, 이야기 등 영화의 모든 층위를 충돌시키는 데서 그치질 않고, 3D와 2D 이미지를 대립, 충돌시키는 데까지 나아간다. 결국 관객의 영화보기 시선마저도 몽타주 시키는 것. 따라서 <언어여 안녕>을 3D 영화로 소개하는 건 절반만 맞는 셈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 <언어여 안녕>을 경쟁 부문에 굳이 초청, 상영한 칸 선정위원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 거장의 프로페셔널한 아마추어적 습작을, 도대체 어떻게 다른 영화들과 비교·평가하라고? 그 영화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심사위원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 거라고? 전작 <필름 소셜리즘>을 2010년 경쟁 아닌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했던 '비례'에 대한 사과 표시? 프랑스만이 아니라 세계 현대 영화의 어떤 산맥이면서도 숱하게 홀대했던 데에 대한 유감의 의미? 그래서 무슨 상이건 안겨주고자 하는 속 깊은 의도? 이래저래 올 경쟁 심사위원들은 이 노거장을 어떻게 예우할지를 놓고 큰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 그에게 과연 상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
21일까지 상기 타블로이드 지는, 17일 선보인 아르헨티나 다미안 스지프론 감독의 <와일드 테일즈>를 황금종려상 감으로 점찍었었다. 칸의 진지한 분위기를 전도시키려고 작심한 듯한, 기상천외의 여섯 개 블랙 코미디 묶음.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제작자로 참여했기에 경쟁작 진입이 가능했을 영화는 상영 내내, 폭소를 유발시키며 칸에서 좀처럼 체험키 힘든 별난 광경을 빚어냈다. 제 아무리 알모도바르의 후원이 뒷받침됐다고는 하나, 뭐 이런 영화까지 비경쟁도 아닌 경쟁에 초대하나, 싶은 게 솔직한 개인적 판단이다. 넓디넓은 칸의 외연을 새삼 환기시켜주고, 퍽 재미있긴 하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사회의 이면을 통렬하게 조롱, 비판한다고는 하지만 그런 유의 흥미로운 단편 6편을 묶어내는 게 뭐 대수겠는가, 싶어서다. 영화는 스크린 인터내셔널 2.2점, 르 필름 프랑세 1.9점, 갈라 크롸제트 2.5점의 평균 전후의 평점을 받았다.
미국, 캐나나 등 영미권 영화들에 대한 평가도 호의적이라 그들 역시 황금종려상 후보로 거론되기 손색없다. 특히 캐나다의 거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블랙 코미디 <맵스 투 더 스타즈>에 대해, 텔레그라프 지 수석평론가 로비 콜린스는 “깨고 싶지 않은 악몽”이라며 황금종려상 강력 후보로 점치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스크린 인터내셔널 평균 평점은 2.7점. 영화는 윤리의식이 파괴된 셀러브리티 가족과 스타 지망생을 중심으로 할리우드를 풍자한다. 감독 특유의 통렬함으로. 할리우드 연기파 스타 토미 리 존스가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장례식>(2005)에 이어 두 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개성적 서부극 <더 홈즈맨>―이 영화가 이 스타의 첫 번째 연출작이라는 국내의 일부 보도는 명백한 오보다―이나, 1984년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 분)에게 일어났던 실제 비극을 극화한 베넷 밀러 감독(<카포티> <머니볼>)의 <폭스캐처>에도 2.6점과 2.8점의 호평이 주어졌다.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칸 경쟁 부문에 첫 진출한 캐나다의 신성 자비에 돌란의 <마미>도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22일 선보였는데, 르 필름 프랑세 종합 평점 2.9점을 받았다. 15명 중 평점을 준 13명 가운데 4명이 4점 만점을, 6명이 3점을 줬다. 이러니 어찌 황금종려상 유력 후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심사위원들 중 다섯 명이나 엄마 등 여성이거늘! 그러고 보니 경쟁 초청작만 놓고 보면, “캐나다 만세!”라 할 만하다. 위 두 영화와, 캐나다의 대표적 중견 감독 아톰 에고얀의 <더 캡티브>까지 무려 세 편이다. 40대의 드니 빌뇌브(<그을린 사랑> <프리즈너스> <에너미>) 정도만 빼면, 목하 캐나다 영화를 대변하는 국가 대표급 감독들이 70대부터 50대, 20대까지 총 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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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에 돌란의 선전에 비하면, 아톰 에고얀의 부진은 안타깝다 못해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스크린 인터내셔널 평점이 나온 12편 중 최하점인 1.6점이다. 1.7점을 받은 베르트랑 보넬로의 파격적이면서도 통속적인 전기물 <생 로랑>과 함께 2점미만을 받은 것이다. <생 로랑>의 경우 르 필름 프랑세로부터 2.3점, 갈라 크롸제트로부터는 2.2점의 평균 이상의 평점을 받은데 반해, <더 캡티브>는 후한 편인 갈라 크롸제트로부터도 1.2점을, 르 필름 프랑세로부터는 1.5점을 받아 최악의 영화로 낙인찍히게 됐다. 여느 해 같으면 그 평점으론 최악일리 만무하지만, 올해는 그렇게 됐다. 아마도 감독의 명성에 비해 지나치게 도식적 심리 스릴러로 흘렀기 때문인 듯. 내가 보기에도 영화는,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된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는 말할 것 없고 감독 주간에 초청된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 등 한국 영화와 비교해도 그 수준이 현격히 떨어진다. 대체 <어져스터> <엑조티카> <달콤한 후세> 등의 명장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대체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호의적 평가를 받은 2014 칸 경쟁 라인업의 최대 오점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한편 <윈터 슬립>과 함께 경쟁 부문에 진출한 유일한 아시아 영화―터키 영화를 과연 아시아 영화로 분류할 것이냐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아직 가입은 못했지만 터키는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적잖은 유럽연합 나라 수장들이 그 가입을 반대하고 있는데다 관례 상 그 동안 아시아 국가로 간주해온 만큼 편의 상 그렇게 규정하기로 하자―인, 일본 가와세 나오미의 성장 영화 <스틸 더 워터>는 평균 전후의 평가를 받는데 그쳤다. 스크린 인터내셔널로부터 2.3점을, 르 필름 프랑세로부터는 1.8점가량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를 수상 후보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 그녀는 일찍이 1997년 장편 극영화 데뷔작 <수자쿠>로 신인 감독상인 황금 카메라상을, 2007년엔 별 다른 화제를 불러 모으지 못한 <너를 보내는 숲>으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바 있는, 아시아 영화는 물론 세계 여성 영화를 대표하는 '칸의 총아' 아닌가. 더욱이 아시아 영화 세계 최고 권위자라 할 수 있을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나 <아름다운 시절>의 이광모 감독 등이 “영화 좋다!”며 두 엄지를 치켜세우지 않는가. 이탈리아 알리스 로어바하 감독의 <더 원더즈>―르 필름 프랑세로부터는 1.1점을 받았으나 스크린 인터내셔널로부터는 2.6점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간 보아온 여느 이탈리아 영화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색깔, 다른 개성의 영화는 민족지적 색채가 짙은 주목할 만한 성장 영화다―와 더불어 <스틸 더 워터>가 여성 심사위원들의 과반인 올 칸에서 어떤 성취를 일궈낼지도 큰 관심사 중 하나다.
이래저래 2014 칸은 그 어느 해보다 거론할 만한 경향 내지 특징, 화제 등을 두루 갖춘 아주 흥미로운 한 해로 기록될 성싶다. 그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음 기회에 상술해야겠다(계속).
전찬일(영화 평론가=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