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에게 설교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 안에 있는 아이가 가장 바라는 대로 내 안에 있는 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 그 뿐이었다.” - <말괄량이 삐삐>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정형화된 가수들을 대중들도 원하지 않습니다.” < K팝스타 >에서 양현석은 악동뮤지션의 노래를 빌어 이렇게 표현했다. 가요계가 인디신이나 오디션 가수 같은 새로운 뮤지션에 눈을 돌리는 이유는 이른바 잘 나간다는 중심이 점점 정형화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귀에 달게 들리는 음악도 비슷비슷한 패턴으로 무한 반복된다면 질력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연습생 기간을 두고 부족한 기량을 연습을 통해 채워 넣으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득이 아닌 독이 될 가능성도 높다. 그것은 어쩌면 각기 갖고 있는 고유의 개성을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리 꼬지 마'라는 도발적인 곡을 시작으로 < K팝스타 >라는 오디션 무대를 자작곡 발표의 무대로 만들어버린 악동뮤지션에 대해 양현석이 한 평가는 적확했다 여겨진다. 그는 악동뮤지션을 캐스팅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악동뮤지션은 아무것도 가르칠 게 없다. 우리는 연습실과 밥만 제공하겠다. 자작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만 달라.” 이 말은 만들기보다는 이미 본인들이 갖고 있는 개성과 끼와 음악성을 그저 극대화할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겠다는 얘기다. 만들어내기 보다는 갖고 있는 것을 잘 끄집어내주겠다는 것. 악동뮤지션의 정규 1집 'PLAY'는 이 양현석의 선언이 제대로 현실화한 느낌을 준다.
'정말 잔디'가 되고 싶은 '인공 잔디'의 이야기 속에는 또래 아이들과 아이돌에 대한 쓸쓸한 정서가 묻어난다. '작은 별'은 동요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시적인 아름다운 가사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작은 별의 잠꼬대'라는 표현이나 '작은 별의 뒤척임' 같은 표현은 이 순수한 아이들의 눈이 아니라면 도무지 나오기 어려운 가사들이다. '길이나' 같은 곡은 남녀 간의 만남을 무수히 많은 길에 빗대 얘기하는 놀라운 표현력을 보여준다. '길이나'로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며 변주되는 가사의 반복은 듣는 이들이 마치 그 길을 찾아 걷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가 주는 충격 때문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악동뮤지션의 '얼음들'이란 곡은 그 아픔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어른들'을 표징하는 '얼음들'은 어른들 세상의 차가움을 아이의 눈으로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더 먹먹한 느낌을 준다. '붉은 해가 세수하던 파란 바다 그 깊이 묻힌 옛 온기를 바라본다' 같은 가사나 '얼음들이 녹아지면 조금 더 따뜻한 노래가 나올텐데' 같은 표현은 현 세태를 에둘러 말해주는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즉 악동뮤지션이 가진 그 특유의 순수한 개성들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마추어리즘에 머물지 않는다는 게 이번 앨범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라는 점이다. 손이 타지 않은 끼와 개성의 소유자들. 오디션 무대가 점점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주목하고 또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이 아니라, 본래 갖고 있던 준비된 자질들을 마치 데뷔하는 듯 보여주기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제 음악은 지향해야할 완성도나 성숙도가 아니라 그 자체가 즐길 수 있는 대상이 되는 다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악동뮤지션 같은 독특한 친구들은 과거라면 훨씬 더 기성화되어 프로 무대에 올랐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오히려 때 묻지 않은 그 본래의 개성이 더 대중들을 어필하는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이른바 '육아예능'이라는 트렌드가 생겨났다. 그것은 물론 관찰카메라라는 새로운 예능 형식에 맞춰 우연히 생겨난 것이겠지만 여기에도 저 악동뮤지션과 비슷한 기제가 들어가 있다. 그것은 너무 많은 유사한 예능 형식들이 등장한 것과, 너도 나도 진정성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진짜인지 늘 의심되는 현 상황에서 그 모두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대상으로서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의 순수지대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빠 어디가>의 윤후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추사랑에 빠져든다. 그 어떤 성숙이 만들어내는 인위성이 없는 순수 100%의 세계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악동뮤지션은 이미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성장이 자신이 본래 갖고 있던 뾰족한 개성들을 깎아버리는 성장이 아니라 개성을 보듬고 더 풍부해지는 성장으로 이어지게 하는 길. 이것이 앞으로 악동뮤지션에게 남은 숙제이고 기획사들이 해야 되는 역할이 될 것이다. 이미 진짜 꽃을 봐버린 대중들은 다시 조화를 찾지 않는다. 무언가 만들어진 듯한 인위성은 그래서 당장 맛은 있을지 몰라도 쉽게 질리게 만드는 조미료처럼 대중들을 외면하게 만든다.
그래서 악동뮤지션이라는 B피플은 어떻게 동심이 중심으로 들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중심이 이미 식상해져 가고 있다는 징후이며, 성숙과 성장이 만들어내는 막연한 가창과 노래의 지향점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대체 음악에 높은 수준과 낮은 수준이 어디 있고 중심과 변방이 어디 있으랴. 그저 좀 더 많은 대중들이 듣는 음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음악이 있을 뿐이다. 물론 여기에는 시스템적인 착시현상이 한 몫을 차지하지만 궁극적으로 말하면 성장은 이제 성숙을 의미하기보다는 노화를 의미할 수도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