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대중가요가 명료한 의미전달을 위해 정제된 가사와 멜로디를 사용하는데 반해 오리지널스코어 위주의 영화음악은 가사의 존재 자체를 배제한 채 오직 작곡된 연주로만 해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연주만으로 영화의 완급을 조율해 나가는데 이 무모하리만큼 우직한 정공법(正攻法)은 사실 무성영화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반복과 실험을 거친 것이며 영화음악만이 수혜 받은 특권이다.
연주로 풀어가는 영화음악은 감정의 동일시, 상황의 객관화, 몰입의 집중을 훌륭하게 유도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곡가의 해석의지에 따라 수없이 변모될 가능성이 다분한, 잠재된 파괴력을 지닌 청각적 장치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장르 - 클래식, 재즈, 팝, 현대음악, 전위와 전통음악 등 모든 것을 포용하고 해체한다 - 의 옷을 빌어 표현하거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기존의 음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혁신적인 시도를 행한다. 사실상 영화음악속의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표현양식은 영상과의 조우를 위해 기꺼이 허용되는 부분인 것이다.
한국의 경우 단시간 내에 가장 혁신적인 발전과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킨 분야도 바로 오리지널스코어인데, 전성기라고 평가받고 있는 90년대, 선구적인 마인드로 시대를 앞서갔던 많은 음악감독들의 시도들이 현재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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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작방식에 따른 분류
영화음악을 거론할 때 어김없이 언급되는 기능성은 음악과 영화라는 양자의 입장이 전제되는 한 숙명적인 역할이다. 이것은 대립이 아닌 서로를 보완하고 지원하는 입장임을 의미하며, 특히 영화속의 음악이 맡은 역할과 훗날 독립적인 위상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영화역사의 초기, '느낌이나 이미지'로서의 존재가 음악의 전부였던 과정을 지나 '미키마우징(Mickey Mousing)'이라고 지칭되는 시기에 접어들게 되는데 이는 영화의 사건이나 특별한 부분, 인물의 동작등을 음악과 완전히 일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흔히 '테마(Theme)'라고 말하는 대중적인 의미의 영화음악들이 명료한 멜로디를 무기로 상징성과 부각에 주력하는, 이른바 '들려지는 음악'이라면 위와 같은 동시성음악은 정확한 묘사에 중점을 두는 '잘 들리지 않는 음악'이다. 그러나 이런 의도적인 기능적 치중은 현대 영화음악이 반드시 취하고 있는 입장이며, 영화음악을 보다 극적으로(더욱 영화음악 답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정체성으로 인식되게 하였다.
좋은 예로 세계 영화음악사의 언급에서 위대한 황금기의 창조자로 반드시 거론되는 제리 골드스미스(Jerry Goldsmith)의 장기 중 하나는 전쟁, 액션 장르의 음악을 너무나도 잘 구사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작법은 전통의 계승이라는 기조를 바탕으로 사건과 인물의 내면적/외면적 동선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에서 동시대의 작곡과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시도되었는데 이것은 가장 중요한 사명인 '영화를 위한 음악'이라는 명제를 중시한 좋은 사례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최소단위와 맥락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 작업방식은 자칫 분석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감정마저 부재한 '맞춤형 작곡(한때 이런 창작을 기술행위로 언급한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일리있는 지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작곡된 오리지널스코어가 불멸의 생명을 가지게 되는 지점은 늘 영화와 함께 들려지고 호흡하는 바로 그 종국의 순간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