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그저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라는 사실은 그래서 놀랍다. 그 삶이 영화와 비견된다는 이야기니 말이다. 또 한 편에서는 영화적으로도 충분히 보편성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법정드라마 혹은 휴먼드라마로서의 완성도가 충분했기 때문에 그만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모든 성공의 요인들도 송강호라는 배우 한 명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변호인>은 민감한 영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는 여전하며 따라서 그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다는 팩션의 틀은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즉 영화가 아무리 좋아도 실제 사실에 대한 호감도에 따라 극장 문턱을 넘는 일은 때로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 송강호가 있었다. 그는 늘 그렇듯 서글서글한 얼굴로 전혀 젠 체 하지 않는 태도로 성큼성큼 관객들의 마음속으로 들어와서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으로 '국가'와 '인권'을 생각하게 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이것은 송강호가 가진 드러내지 않고 스며들게 만드는 흡인력의 힘이다. 그는 주변에 머물면서도 중심을 빛나게 해주는 'secret sunshine' 같은 배우다. 영화 <밀양>에서 비극에 빠진 여주인공을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비춰주던 밀양 같은 존재, 종찬 같은.
<설국열차(관객 934만명)>와 <관상(913만명)>에 이어 <변호인>까지 단 6개월 동안 무려 3천만 관객을 동원했고, 한국 영화 최고 관객 기록인 <괴물(1301만명)>의 주인공. 말 그대로 괴물 같은 배우지만 송강호는 영화 속에서 폼을 잡거나 대중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뽐낸 적이 거의 없다. 그는 처음 대중들에게 인지되었던 <넘버3>의 정서가 뿜어내는 그 모습과 위치에 여전히 서 있다는 점이다. 중심이나 꼭대기에 서 있으면서도 변방과 저 아래쪽을 향해 늘 성큼성큼 내려오는 모습이 바로 송강호다. 조금은 빈 듯 툭툭 대사를 던지고 엉뚱하게도 진지한 순간에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쿡쿡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이런 사실을 가장 잘 캐릭터화해 보여준 영화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그는 이 영화가 보여주듯이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아닌 이상한 놈이다. 어딘지 악당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이 가고, 그렇다고 대단한 소명의식이나 목적의식을 갖기보다는 지극히 소박한 인간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정우성과 이병헌을 뒤에 두고 그가 포스터 전면에 서 있는 건 그래서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송강호가 갖고 있는 서민적인 이미지의 힘이다. <우아한 세계>에서 조폭의 상스러움과 함께 가장의 성스러움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이미지. <괴물>의 바보스러움에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한참 쳐다보면 왠지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는 그런 인물. <박쥐>의 기괴함과 함께 기상천외함까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그런 캐릭터. 서민적이고 때로는 속물적인 속내를 슬쩍 드러냄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런 배우.
송강호의 힘은 그래서 신비함이나 심지어 신격화되는 배우의 이미지를 배반하고 대중들 위에 서기보다는 오히려 대중들 옆자리에 서는 그 모습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여타의 스타배우들과는 다르다. 이것은 신의 죽음을 알리고 친구가 되고 싶어 했던 초인 '짜라투스트라'의 태도다. 물론 그가 친구가 되길 원했던 이들이 그를 숭배함으로써 실패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기꺼이 그들을 위해 높은 산에서 저 아래로 '몰락'하려 했던 그 태도. 태양을 숭배하기보다는 그 태양이 비추는 존재들의 소중함을 설파하려 했던 그 건강한 마음. 숭배되는 존재가 아닌 인간적인 것의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배우. 그게 송강호의 정체가 아닐지.
이것은 <변호인>의 송우석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소시민적이고 속물적인 변호인 송우석이 인권변호사라는 변신을 하면서도 거기에 대단한 소명의식 같은 거창한 거품을 걷어내는 역할로서 송강호 만한 배우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지극히 정치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아무런 정치적 저항감 없이 영화를 바라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송강호가 늘 보여주는 '인간적인'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송강호는 늘 그렇게 서민적인 얼굴로 자신을 한껏 낮추며 때론 속물적으로 느껴질 만큼 폼 잡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보통 연기자들이 자신의 주변에 어떤 타인과의 선을 그어놓고 적당한 거리에서 폼을 잡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송강호에게서 어떤 정 같은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쩌면 송강호가 갖고 있는 다른 연기자들에게서는 발견하기 힘든 장점일 것이다. 한없이 긴장을 뺀 상태. 타석에 들어가기 전 어깨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상태.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아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도 마음의 무장해제를 편안하게 시켜주는 그런 배우. 그 무장해제를 통해 온전히 그가 하는 배역에 보는 이들까지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요즘처럼 그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시기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송강호는 여전히 변방과 저 아래에 서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 올수록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그 높은 곳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저 낮은 곳에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 이것은 어쩌면 배우가 가질 가장 큰 덕목이 아닐까. 최고의 탑배우지만 그에게서 사라지지 않는 B피플의 향기가 여전한 것은 아마도 배우라는 존재의 본령이 거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의 최고 지향점은 결국 관객의 친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