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욱 감독의 새 시트콤 <감자별 2013QR3(이하 감자별)>에서 장기하는 장율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극중에서 장율은 자칭 싱어 송 라이터라며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하고 노래를 불러대지만 사실 그는 도무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인물이다. 흥미로운 건 이 캐릭터의 특징이 '반응이 느리다'는 점이다. 누가 뭘 물어보면 바로 답하는 게 아니라 한참 있다가 반응을 보인다. 우리가 흔히 생산성이라고 얘기하면 떠올리게 되는 '빠릿빠릿함'이나 '속도'와는 정반대의 인물인 셈이다.
흔히들 말하는 '잉여'의 삶을 살고 있는 장율의 자취방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싸구려 커피'의 배경 그대로다.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질 눅눅한 비닐장판'에 '바퀴벌레 한 마리쯤 쓱- 지나가도' 아무렇지도 않을 그런 공간. 거기서 장율은 '싸구려 커피'를 부른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잉여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이 장율이라는 캐릭터는 전혀 타인에게 꿀리거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여자 친구 노수영(서예지)은 완구회사 대표의 딸이지만 장율은 자신의 처지와 그녀를 비교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녀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첫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는 이런 삶을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고 여기는 장률의 일면을 발견 할 수 있다. 봉투 밖으로 국물이 줄줄 흐르는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다가와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는 이런 장율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거품키스니 사탕키스니 다들 너무 작위적이고, 드라마에서 억지로 만들어내는 유행상품 같잖아요. 비인간적이고.(중략) 그냥 일상적이고 인간미 있는 키스가 좋지 않나.” 그리고 이어지는 노수영의 목소리. “그날 우리는 장율씨가 말한 대로 가장 인간미 있는 키스를 나눴다. 쓰레기 국물 키스를.”
그렇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얘기하면서 장황하게 <감자별>의 장율 에피소드를 시시콜콜 꺼내놓은 이유는 그것이 바로 장기하라는 인물과 그 음악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싸구려 커피>를 통해 잉여들의 일상을 기막힌 시적 서사 속에 녹여낸 적이 있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본다/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숨쉬기가 쉽지를 않다-' '이불을 갠다'와 '덜 갠 하늘'이 조응하는 이런 가사를 척척 써낼 수 있는 가수는 흔치 않다. 게다가 무언가 질러대고 뱉어내야 랩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냥 읊조리고 얘기하듯 툭툭 던져 넣는 장기하의 랩은 우리말에 대한 예민한 감각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심지어는 연극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이 시적 서사는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가 단박에 대중들에게 캐릭터로 각인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끝단에서 잉여적 삶은 청춘들만이 겪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젊은 시절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온 중년들에게도 갑작스럽게 다가온 구조조정의 칼날은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같은 잉여적 삶을 만들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정규 1집이 한 마디로 대박을 터뜨린 데는 그 소비층이 청춘들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잉여가 된 청춘들과 똑같이 시스템 바깥으로 내던져진 중년들도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에 공감했다. 게다가 이들의 음악은 심지어 산울림과 송골매의 재림이라고 부를 정도로 중년들에게도 친숙했다. 음악적 뿌리를 포크 록의 계보에 두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은 포크가 가진 특유의 메시지성에 B급 감성을 더함으로써 장기 불황과 취업 전쟁에서 밀려난 잉여들의 암담함을 거꾸로 뒤집었다.
제레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예견한 것처럼 기술혁신으로 인해 인간의 노동은 필연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네 삶은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구나 더 많은 잉여의 시간들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듯 이 잉여의 시간이 잘 분배된다면(거꾸로 말해 적은 노동이 잘 분배된다면) 이 노동의 종말은 유토피아적 삶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잉여의 시간이 실업으로 여겨지는 불균형이 만들어지는 순간 이 삶은 디스토피아로 전락한다. 결국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잉여를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여유로 받아들이는 가치관의 변화다.
그런 점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작업들은 잉여의 삶이 가진 가치를 드러내는 일과 맞닿아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시종일관 노래하고 있는 '조금 힘을 빼고, 조금 느리게 반응하고, 조금 주변을 둘러보며, 조금 작은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은 이 노동의 종말이 초래할 잉여의 시간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며 함께 향유해가야 하는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잉여의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의 노래는 '너랑 나랑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연대의식을 문득 문득 경험하게 해준다.
잉여는 어쩌면 다가올 미래일 것이다. 그러니 이 잉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실로 중요하다. 좁아진 경쟁의 의미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경쟁 바깥으로 탈주하는 새로운 대안적 삶으로서 잉여를 받아들일 것인지 우리는 지금 결정해야 할 시기에 도달했다. 과거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통하던 '노동과 생산의 시대'는 점점 저물어가고 있다. 이제는 베짱이의 삶을 적극적으로 배워야 하는 시기다. B피플이 A에 대항하는 B이면서 수동적인 피플에 대항하는 非피플을 정의한다고 할 때,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 B의 삶이 얼마나 미래를 위한 대안적 삶이라는 걸 잘 보여주는 뮤지션이다. 잉여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고 긍정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