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말하는 놀이란 우리가 흔히 가위바위보나 홀짝 게임 같은 아이들의 놀이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놀이가 자발적 행위라는 정의는 똑같은 행위라고 해도 어떤 것은 놀이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예를 들어 노래를 작곡하는 것도 그저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놀이가 되지만, 의뢰를 받아 곡을 써내야 하는 프로 작곡가에게는 일이 된다. 또 회사에서 단합대회로 산행을 한다고 해도 오너 입장에서는 놀이일지 모르겠지만 직원들 입장에서 일이 된다.
요한 하위징아가 놀이를 강조한 것은 이 놀이가 갖고 있는 독특한 성격 때문이다. 놀이는 실제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 이상의 몰입을 가져오기 때문에 때로는 문화와 문명을 바꾸기도 하는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생존을 위한 일 때문이 아니라 생존 바깥에서 진행된 이 놀이라는 몰입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요한 하위징아가 1938년도에 쓴 <호모 루덴스>라는 책이 2013년 현재 우리네 대중문화를 얘기하며 갑자기 거론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때 문화가 의미에만 지나치게 가치를 두곤 했던 과거에서 이제는 재미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무 많아진 정보들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 정보들이 어떤 집중도를 갖기 위해서는 재미가 부가될 수밖에 없었다. 인포테인먼트가 쏟아져 나오고 신뢰를 최고로 치던 아나운서 같은 직종에 재미가 부가된 아나테이너 같은 신종 용어가 덧붙여지는 건 그런 이유다.
최근 대중문화의 장르 중 예능 프로그램이 전면에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 변화의 한 양상이다. 과거에 방송 프로그램은 누가 정해놓지 않아도 뉴스나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물을 가장 높은 가치로 세웠고 그 다음이 드라마, 맨 마지막이 오락물로서의 예능이었다. 하지만 지금을 보라. 예능과 뒤섞이지 않은 다른 장르가 없을 정도다. 뉴스는 마치 토크쇼처럼 연성화된 형식을 찾고 있고, 다큐멘터리는 예능과 합쳐져 이른바 리얼리티 쇼의 시대를 열었다. 드라마는 마치 시트콤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가벼움을 의도적으로 추구하기도 한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이우정 작가, <대장금>,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작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박지은 작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혜련 작가, <주군의 태양>의 홍정은, 홍미란 작가, <파스타>의 서숙향 작가 등등 예능 작가 출신 드라마 작가는 지금 현재 드라마계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예능이 가진 작업의 특징들이 드라마 협업에서 독특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품에 캐릭터 집중도가 높고 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번뜩이는 건 그래서다.
이 최근의 예능 경향과 놀이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은 도전이라는 어찌 보면 과거적 해석으로는 일에 해당되는 것들을 예능으로서의 놀이로 풀어낸 것이 대중들의 지지를 얻게 된 가장 큰 힘의 원천이 되었다. '도전'이라는 단어를 잘 생각해보라. 과거 이 단어는 어딘지 훨씬 무거운 의미를 갖고 있었다. 히말라야를 등정한다거나 아니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거나 하는 등에 사용되는.
일이 아닌 놀이로 접근하는 음악은 기성 가수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을 게다. <무한도전> 가요제가 내놓은 곡들이 때로는 유치하게 여겨지면서도 작업자들이나 대중들 모두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됐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곡의 결과물 그 자체보다는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더 천착함으로써 '놀이로서의 음악'이 가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노래가 나오면 기성 가요들로 빼곡한 음원 차트를 싹쓸이하는 효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대중들은 때로는 엄밀하게 만들어지고 기획된 노래가 아니라 그저 즐거움이 담겨진 놀이로서의 음악을 원한다는 것.
<무한도전> 가요제를 만들어낸 멤버들은 그런 의미에서 기성 가요계 바깥에 위치하는 B피플들이다. 이들은 기성 가요의 '일로서 만들어내는 음악'이 가진 때로는 숨 막히는 완벽함과 짜인 틀을 벗어나 '놀이로서의 음악'을 복원해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예능 프로그램이 갖는 놀이적 성격과, 성공과는 상관없이 그저 즐겁기 위해 만들어지는 노래가 주는 경제적 압박감에서의 탈피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놀이는 때로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번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에 쏟아진 무수한 논란들은 놀이가 규모가 커지면서 변질되고 결국은 일로서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프라이머리의 표절 논란은 이 과정에서 생겨난 부수적인 사건이다. 장미여관이 본래 자신들의 노래 스타일이 아닌 <무한도전>에 맞는 스타일의 노래를 부른 것은 놀이가 아닌 일로서의 음악으로의 회귀를 보여준다.
하지만 어쨌든 이 B피플이 만들어내는 '놀이로서의 음악'은 향후에 기성 가요계와 끊임없는 부딪침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이다. <무한도전> 가요제의 음원들이 차트를 장악하는 것에 대해 기성 가요계들은 끊임없이 불편함을 토로해 왔다. 그것은 방송의 힘과 가요계의 힘이 부딪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방송은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특징을 살려 '놀이로서의 음악'을 끄집어내고, 그것은 기성 가요계의 '일로서의 음악'과 마찰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건 이번 자유로 가요제에 SM의 보아와 YG의 지드래곤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일로서의 음악' 즉 프로들이 하는 음악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대형기획사들은 이 방송이 만들어내는 '놀이로서의 음악'이 가진 파괴력을 인정하면서도 불편해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새로운 음악을 '저들의 놀이'로 치부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껴안고 뛰어 들고 있다는 얘기다. SM이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YG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