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뭐 단순해도 너무 단순하잖아. 작년 버스커버스커가 '벚꽃엔딩'을 내놨을 때 번뜩 들었던 생각이다. 그 첫 앨범의 '여수밤바다'는 특히 그랬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아 아 아 아 아 아 아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버스커버스커가 나왔을 때 방송에서는 <나는 가수다>가 한창 피 튀기는 가창력의 제전을 벌이고 있었다. 누구 목청이 더 좋은가에서부터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가 이 오디션에서 생존하는 조건이 되었다. 노래는 칼과 창이 되었고 그 화려한 기교와 현란한 악기들의 향연에 대중들은 충격을 먹었다. 하지만 충격이 어느 정도 지나가자 대중들은 다시 본래의 음악을 찾게 되었다. 무기가 아닌 음악. 그저 감성을 전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이것은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버스커버스커처럼 가창력이 뛰어난 밴드도 아니고 심지어 어떤 패턴화된 사운드의 느낌마저 주는 밴드가 생방송 무대까지 진출한다는 것은 실로 요원한 일이었다. 결국 톱10에 들지 못했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다. 예리밴드가 무단 탈퇴를 선언하면서 버스커버스커는 톱10으로 들어갔고 놀랍게도 마지막 생방송 무대까지 질주하는 힘을 발휘했다. 오디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어눌하기까지 한 밴드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허점의 매력'이라고 할까. 미야자키 하야오식으로 표현하면 '과잉을 빼버림으로써 드러나는 매력'.
이것은 프로이트에 의해 제시되었던 '언캐니(uncanny)'라는 개념에서 발전시켜 하나의 이론으로 정착된 모리 마사히로의 '언캐니밸리(uncanny valley)' 현상 때문이었다. 인간과 흡사한 로봇의 경우, 처음에는 그 비슷함 때문에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어느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강한 거부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상 더 나아가 로봇이 인간과 거의 구별되기 어려울 정도가 되면 다시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바로 그 단계까지 나가기 이전까지 생기는 거부감을 나타낸 그래프를 그 모양에 빗대어 언캐니밸리라 부르는 것. 이 거부감은 마치 좀비처럼 인간은 아니나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에 어떤 '섬뜩함'을 느끼는데서 생기는 현상이다.
물론 로봇과는 사뭇 다른 분야지만 음악에 있어서도 심리적인 '언캐니밸리'의 영역은 존재한다. 즉 완벽에 가까운 노래와 사운드가 주는 즐거움이 너무 매끈해져서 거의 기계음에 가깝게 느껴질 때 음악 특유의 따뜻한 감성은 사라지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경우가 그렇다. 이것은 과거 비틀즈나 도어스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나 비틀즈의 존 레논의 라이브는 녹음된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즉 라이브의 경우 음정도 박자도 마구 틀리기 마련인데, 이것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국내의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라이브로 노래하지 않고 MR을 틀거나 심지어 립싱크를 하면서 자로 잰 듯한 춤동작만을 똑같이 반복할 때 가끔씩 느껴지는 마치 인형 같은 섬뜩함은 음악에서도 느껴지는 심리적인 언캐니밸리의 영역일 것이다. 음악이 결국은 소통의 하나일 때 인간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 소통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대중들이 립싱크와 MR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단지 그것이 가수의 자질부족을 증명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그런 음악이 주는 차가움, 혹은 감흥 없음에 대한 비호감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확실히 버스커버스커의 변칙적인(?) 성공사례는 이례적이다. 기존 가요계의 성공방정식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완벽함이 아니라 어딘지 빈 구석이 있는 듯한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는 바로 그 단점으로만 지적되었던 빈 구석이 오히려 장점으로 발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한 바로 그 기존 가요계의 '과잉'을 뺌으로써 버스커버스커는 오히려 편안함과 인간적인 감성을 노래에 제대로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것은 기존 가요계의 마치 찍어낸 듯한 음악들의 홍수 속에 지쳐있던 대중들의 귀를 편안하게 파고들었다. 단점은 오히려 개성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개성은 도드라진 장점이 만드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정반대다. 오히려 개성을 만드는 것은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다. 완벽하게 모든 걸 구사하는 이들에게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반면, 어느 한 구석 비어있는 이들이 그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개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버스커버스커가 기존 가요계의 완벽주의가 가진 숨막힘에 하나의 숨통을 터준 부분이다. 버스커버스커의 1집 성공 이후, <슈퍼스타K>의 정준영이나
버스커버스커의 2집을 들어보면 그 멜로디나 음 구성이 1집보다도 더 단순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단조롭다고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무수한 MSG 가득한 음악들을 듣다보면 장범준의 조금은 어눌하고 촌스럽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들릴 수가 없다. 사운드나 멜로디를 차치하고라도 그 목소리만을 자꾸만 듣고 싶게 만드는 그런 이상한 매력이 장범준에게는 분명히 있다. 더 많은 화려한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면 나올수록 더더욱 그리워지는 그런 목소리. 마치 도시의 불빛이 환할수록 그 빛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달빛과 별빛이 그리워지는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