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익, 손진태, 함춘호, 그리고 김현철. 80-90년대 언더그라운드 뮤직의 메카 동아기획을 중심으로 모인 이 싱어송라이터들의 또 다른 직함은 바로 '전문 세션맨'이었다. 동료 가수들의 음반에서 반주를 도맡은 이 4인방은 사실 퓨전 재즈의 신동이란 입소문의 진원지가 되며 90년대 대중음악 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평가되는 < 김현철 1집 > (1989) 의 주역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표방했던 음악성인즉, 평소 이들이 동경하며 연주의 롤모델로 삼았던 GRP 올스타즈(all-stars)와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Pat Metheny)와 그의 친구들이 제시했던 퓨전 재즈란 문법이었다.

단 한곡의 노래도 수록되지 않은, 본격적인 연주음반을 표방했던 이들의 프로젝트 명은 다름 아닌 “야샤(Yasha)”. 베이시스트 조동익이 키우던 고양이를 밴드 이름으로 삼은 4인방은 가요반주라는 제한된 영역에 머물러있던 세션의 한계를 벗어나 좀 더 다채로운 연주의 욕구를 실현하려 했다.

주체 못할 펑키 리듬에 얹은 현란한 키보드 솔로로 포문을 연 김현철의 '눈싸움 하는 아이들', 팻 메스니의 아련한 감성이 연상되는 '영동선'과 어떤날의 노스탤지어가 연상되는 아늑한 포크선율 '다시 만날때까지'는 조동익의 솜씨로 빚어졌다.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번갈아가며 드라마틱한 절대연주를 그려놓은 함춘호의 'Chess'와 그루비한 리듬 웍이 일품인 손진태의 기타 연주 '여름날'과 '소풍'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트랙이다.

멤버 당 2곡씩 작곡을 맡으며, 총 8곡으로 구성된 앨범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정확하고 손색없는 연주가 특징인 퓨전재즈엔 충실하나, 뭔가 허전한 기운이 감도는 아쉬움 또한 떨칠 수 없는 준작의 수준에 머물었다. 야샤의 멤버였던 조동익은 한 인터뷰에서 “시도는 좋았으나 각자 개인적인 일들로 바빠서 멤버들 간의 응집된 시너지가 부재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라 회고했다. 이런 배경에서인지 수록된 연주들이 4인방의 긴밀한 공력이 전해지기보단 각자의 솔로작품을 한 데 모아놓은 것 같은 산만함 또는 무성의함마저 느껴지는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전례가 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90년대 초, 국내에서 연주만으로 구성된 앨범을 낸다는 시도자체가 무모했었고, 앨범의 제작을 맡았던 김 영 사장 역시 한 인터뷰에서 “내면 망할 게 분명하니 안하려고 했는데, 김현철이 자꾸 조르는 바람에 내 줬다”고 회고할 만큼 당시 대중들에게 연주음악이란 시도는 여전히 생소한 영역이었다. 가수와 스타중심으로 재편되고 마케팅되는 국내 대중음악 씬의 천편일률성 저변을 방증하는 아쉬운 대목이다.

단 한번의 프로젝트로 머문 야사의 시도는, 그럼에도 신중현과 엽전들 연주앨범 (1975) , 사랑과 평화의 연주앨범 < Disco > (1979) , 봄여름가을겨울의 연주앨범 < 봄여름가을 featuring 최태완 > (1991) 의 흐름을 이어가며 척박한 국내 연주음악 저변을 감안한다면 분명 의미 있는 시도였다.

수록곡
1.눈싸움하던 아이들 -김현철
2.여름날-손진태
3.영동선-조동익
4.Chess-함춘호
5.다시 만날 때 까지-조동익
6.시드니의 겨울 -김현철
7.새벽-함춘호
8.소풍-손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