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 속 소년은 위험해 보이는 날개로 하늘을 날아가려 하고 있다. 불안하기 짝이 없어보여도, 그 표정만큼은 당차며 또한 확고하다. 위기상황에서 발현되는 긍정적인 마인드야말로 새로운 세계의 정착에 필요한 날갯짓을 만든다는 듯이. 많은 뮤지션들이 길을 잃었던 동일본 대지진, 그 아수라장은 프론트맨 쿠사노 마사무네(草野 マサムネ)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역시 급성 스트레스성 장해로 인해 예정된 공연을 취소하기까지 했지만, 떨어뜨린 손은 겨우내 다시 기타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렇게 햇수로 3년, 그들이 찾은 해답은 바로 이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언제나 현실과 약간의 거리를 두었던 밴드의 신보는 어느 때보다도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한다. 옆에서 이야기를 소소히 읊어주거나, 정 필요할 때는 가벼운 권유의 어미로 메시지를 전달하던 그들이 이번엔 체온이 느껴지는 따뜻한 손을 나에게 내밀어 주는 듯하다. 멜로디와 곡의 얼개는 의심할 바 없는 스피츠지만, 언제까지나 사춘기 한복판에 있을 것만 같던 그들의 언어가 어느새 부쩍 자랐다는 사실을 열세번째 작품에서야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負けないよ 僕は生き物で 守りたい生き物を 抱きしめて
(지지 않아 나는 작은 생명체로서 지키고 싶어 생명체를 끌어안고서)
- '小さな生き物(작은 생명체)' 中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곡인 '小さな生き物(작은 생명체)'의 노랫말은 자신의 연약함을 표출하는 동시에 이에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겹쳐지며 탄생한다. 이러한 인정과 극복의 정서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현실의 고통과 불안이 미래에 대한 기대와 맞닿아 있다는 메시지다. 지금의 상흔이 빛나는 증표가 될 훗날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未来コオロギ(미래 귀뚜라미)', 무언가를 향해 홀로 나아가는 나를 내버려두라는 '潮騒ちゃん(파도쨩)' 역시 같은 흐름으로 읽을 수 있는 결의에 찬 마니페스토다. 언제나 연필로 가볍게 사각사각 그려냈던 그림이 이번만큼은 뒷장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힘 있게 스케치되어 있다는 것이 이전과의 확연한 대비점이다.
음악적으로도 다채로움이 가득하다. '말'에만 치중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스피츠식 발라드의 정석을 보여주는 'ランプ(Lamp)은 20년이 넘은 커리어가 쌓아온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주며, 인스트루멘탈인 'Scat'에서는 '宇宙虫(우주벌레)', 'リコシェ号(Ricochet호)' 등 연주곡을 전담했던 미와 테츠야(三輪 テツヤ) 대신 쿠사노 마사무네가 마저 두팔을 걷어붙이며 리프의 강약이 살아있는 로킹함을 살려냈다.
아이리시 스타일을 차용한 '野生のポルカ(야생의 폴카)'에서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이국적인 모습의 목격이 가능하며, 하드록의 3연음으로 복고적인 색채를 살린 '遠吠えシャッフル(멀리서 짖는 셔플)'로 1970~80년대 록음악에 대한 애정을 재확인시킨다. 이 와중에 베스트로 꼽고 싶은 것은 바로 'エンドロールには早すぎる(End Roll은 아직 일러)'다. 디스코 리듬의 기타와 리얼 세션을 배제한 비트, 몽환적인 신시사이저의 결합을 공간감 있는 사운드 프로듀싱으로 조율하여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세련된 킬러튠을 탄생시켰다.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타이밍에 신경을 재차 붙잡아두는 거부감 없는 알람이다.
스피츠에게서 이토록 동시대적인 정서가 느껴지다니, 한편으론 새롭다. 데뷔한 이래 이들은 줄곧 환상과 공상의 경계에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들로 잠시 현실 밖 이상에 있는 여유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정반대다. 이번만큼은 '지금'에 정면으로 눈을 맞대고 있다. 많은 것들이 무너져갔고 그 안에서 절망을 보았지만, 그간 쌓아온 동화 속 희망으로 사람들을 다독이며 좀 더 걸어가 보자 격려한다. 한편으로는 오해사기 쉬운 친절과 배려, 이를 더도 덜도 아닌 품 속 따뜻함만큼의 온도를 지닌 음악으로 환원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긴 시간 한 길에만 매진해온 이들이 진정성 덕분이다. 차곡차곡 적립되어 온 마일리지는 삶의 의지로 교환될 준비를 마쳤다. 이제 이어폰을 꽂을 차례다.
- 수록곡 -
1. 未来コオロギ(미래 귀뚜라미)
2. 小さな生き物(작은 생명체)

3. りありてぃ(Reality)
4. ランプ(Lamp)

5. オパビニア(Opabinia)
6. さらさら(사락사락)
7. 野生のポルカ(야생의 폴카)

8. scat
9. エンドロールには早すぎる(End Roll은 아직 일러)

10. 遠吠えシャッフル(멀리서 짖는 셔플)

11. スワン(Swan)
12. 潮騒ちゃん(파도쨩)

13. 僕はきっと旅に出る(난 반드시 여행을 떠날거야)

14. エスペランサ(Esperanza) (Bonus Tr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