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에릭 클랩튼보다 존 메이어가 나은 점이 있다면, 새로운 작품을 발매할수록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를 견고히 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1977년생, 미국나이로 35세. 비슷한 나이 때의 에릭 클랩튼은 개인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암흑기를 여러 차례경험하기도 했다. 음악가는 음악에 집중해야 한다는 기본자세는 팬들과 평단 모두에게서 그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다.
현재는 미국인으로 나고 자라며 들어온 '음악 뿌리'에 대한 고찰이 한창이다. 데뷔에서부터 주목받는 블루스맨으로 이름을 떨쳤던, 시대의 '젊은 거장'은 본원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를 가속하고 있다. 여섯 번째 스튜디오 레코드 < Paradise Valley >는 전작 < Born And Raised >의 훌륭한 속편이자 연장선이다. 구성은 단출해졌고, 진행은 긴박해졌다.
뮤지션으로서 수많은 얼굴을 가진 그에게 가장 걸맞은 명명은 '새천년 최고의 송라이터'다. 'Dear Marie'와 'Waiting on the day', 'Badge and gun'에서 들려주는 잔잔하고 영롱한 멜로디의 물결은 영락없는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의 모습이다. 음악 전문지 < 롤링 스톤 > 기사의 언급과 같이 많은 지점에서 '네오-제임스 테일러'의 페르소나를 확인할 수 있다.
'Paper doll'은 과거 연인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를 향한 메시지다. 'Half of my heart'에서 시작된 그녀와의 인연은 '나쁜 남자 존'에 의해 금세 막을 내렸다. 테일러는 이에 대한 분노를 'Dear John'이라는 디스곡으로 노래했다. 이에 대해 성숙하지 못한 방식이라 비판했지만, 앙금이 채가시지 않았는지 반박성 가사를 담아 이곡을 첫 싱글로 공개했다. 사정이 어찌되었건 감미로운 기타 톤의 조율과 편안하게 들리는 부드러운 보컬 하모니가 매력적이다. 장기 중 하나인 아기자기한 팝적 감각이 돋보인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비웃음도 노래했지만, 재미있게도 진행형의 사랑과 함께 노래하기도 한다. 현재 연인인 케이티 페리(Katy Perry)와 작업한 'Who you love'는 싱그러운 러브송이다. 케이티의 파트에서 의외성을 엿볼 수 있는데, 늘 의문부호를 남겼던 가창력에 대한 지점이다. 그녀의 싱어로서의 성장은 연인과의 듀엣으로 빛났고, 매력적인 음색과 보컬 운용 능력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공개한 'Wildfire'에서는 영락없이 팝과 블루스를 결합한 < Heavier Things >(2003)의 작법을 떠올리게 했다. 날렵하게 빠진 기타 인트로와 수려한 멜로디는 전형적인 '존 메이어표' 팝-블루스 넘버들을 떠오르게 한다. 수록곡 리스트에는 동명의 트랙이 있는데 이는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의 목소리로 녹음되었다. 2012년의 문제작으로 꼽히는 < Channel Orange >에서 존의 블루지한 연주가 가미되었던 'White'의 인연은 여기까지 이어졌다. 간주곡(Interlude)의 개념으로 앨범의 색다른 맛을 더한다.
7월 26일 심장마비로 별세한 제이 제이 케일(J.J. Cale)의 블루스 클래식 'Call me the breeze'에서는 또 다른 장점을 확인할 수 있다. 명인들에 대한 경외와 탐미를 담은 지미 핸드릭스의 'Bold as love'와 로버트 존슨의 'Crossroads'를 잇는 절정의 '해체 복원'이다. 'You're no one 'til someone lets you down'와 'On the way home'는 최근작의 주를 이루는 방향인 전형적인 컨트리 트랙이다. 루츠 록에 대한 헌사와 헌정은 선인들에 대한 감사의 또 다른 표현이다.
컨트리와 블루스에 대한 감각은 미국인답게 표현에 남달랐다. 독자적인 블루스 플레이는 탄탄한 음악적 이론과 뛰어난 테크닉을 기본으로 했기에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거기에다 탁월한 작곡과 편곡 능력까지 갖췄다. 더욱이 이런 비범함은 온연히 음악으로 이어졌으니 말다했다. 음악팬으로서 행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주는 존재다.
기본은 역시 천재적인 창작력에 있다. 다재다능함을 통해 일궈낸 그의 작품들은 꾸준히 듣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변함없이 좋은 레코드를 발표해왔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두의 인정을 받는다. 우리 세대가 낳은 훌륭한 노래이자 목소리로써 믿음직스러운 존재로 성장했다. 이제 그 행선지가 어디더라도 그를 따른다면 우려는 없다. 존 메이어는 “시대를 대표한다”는 언어의 참의미를 스스로 획득하고 있다.
-수록곡-
01. Wildfire

02. Dear Marie
03. Waiting on the day
04. Paper doll

05. Call me the breeze

06. Who you love (Feat. Katy Perry)

07. I will be found (Lost at sea)
08. Wildfire (Feat. Frank Ocean)
09. You're no one 'til someone lets you down
10. Badge and gun

11. On the way home
Producer: John Mayer & Don W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