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또한 물 만난 고기처럼 제대로 난리부르쓰를 춰댔다. 허리에선 금색 BoyToy 버클이 반짝이고, 제 흥에 못 이겨 히스테리에 가까운 제스처를 할 때엔 흡사 재니스 조플린의 강림 같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관중 속에 Boy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간혹 보이는 Boy는 여느 워너비 언니들보다 요사스럽게 마돈나를 흉내 내고 있었다. 그 Boy의 정체는 남성동성애자들이었고 이제 더 이상 비밀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모습을 드러낸 그들에게 세상은 퇴폐와 저질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마돈나는 장사를 할 줄 알았다
융단폭격처럼 퍼붓는 언론과 안티들의 공격에 '쏴봐!'라는 태도로 맞섰다. 가뜩이나 사사건건 바티칸의 심기에 불을 지피더니 아예 기름까지 붓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친(親)게이정책을 펼친 것이다. 또 다른 게이 아이콘 머라이어 캐리가 '난 그런 거 몰라'라는 표정으로 야옹이와 나비를 쓰다듬으며 우아를 떨 때, 이름마저 성스러운 이 여두목은 달랐다.
의상에서도 남달랐다. 쟝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가 헌정한 그 무서운 콘브라와 가죽부츠는 타의 모범이 되었다(이 의상은 “Blonde ambition world tour”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그녀는 이 투어를 에이즈로 요절한 팝아티스트 키쓰 해링(Keith Haring)에게 바쳤다. 해링은 마돈나의 연인이기도 했던 '검은 피카소' 쟝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의 동성애인이기도 했다). 역력한 립싱크임에도 전설이 된 1990년 MTV뮤직비디오 어워드 'Vogue' 공연에선 로코코풍 드레스를 입고 마담 듀바리처럼 간계를 부리더니(이 퍼포먼스는 각 인종 게이들의 '만남의 광장'이었다. 백업댄서들을 눈여겨보시라) 'Frozen'에선 한때 그토록 벗어재끼던 몸을 블랙으로 꽁꽁 싸매고 아예 마녀로 나섰다. 파파라치 카메라엔 '오이란'이나 입을 법한 기모노와 말보로맨 같은 카우보이 복장을 입고 활보하는 게 찍히기도 했다. 놀라지 마라. 이 모두가 '게이로망 코스튬'이었다.
영화는 한 술 더 떴다. 배우 병으로 유명한 그녀는 영화 '더 넥스트 베스트 씽(The Next Best Thing)'에서 동거하던 게이 동창의 아이를 낳기도 했다. 영화주제곡이자 돈 맥크린(Don McLean)의 곡을 리메이크한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 뮤직비디오는 게이, 레즈비언은 물론이고 하얀 사람, 검은 사람, 아픈 사람, 안 아픈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그냥사람 등이 뒤섞여 곤죽이 된 소수자들의 향연이었다.
금발로 염색하고 만세눈썹을 붙인 '풀메이크-업 마리아', 게이소셜의 '천한 성녀, 거룩한 창녀'는 지금도 투어중이다. 몇몇은 이렇게 반론할 지도 모른다. “아직도 마돈나냐...” 맞다. 이제 세상에는 레이디 가가도 있고 리한나도 있다. 15년 전 그 까페에서 마릴린 먼로와 마돈나를 구분할 줄 모르던 선배처럼, 나도 이젠 케이티 페리와 주이 디샤넬을 헷갈린다. 최근까지 저스틴 비버가 원 디렉션의 유닛인 줄 알았다. 그 가수가 그 가수 같고, 그 술이 그 술 같다. 요란한 클럽 대신 집에서 동치미에 소주 마시는 게 편한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마돈나를 보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다들 아이폰 5를 사는 마당에 혼자서 VTR 플레이어를 샀다. 고딩 때 청계천에서 공수한 그 테이프들을 다시 보려고. 유튜브에는 아직도 없는 게 너무 많다.
20년 이상 그녀의 팬으로서 바라는 것은 한가지이다. 이 요지경인 여자가 앞으로도 옹박처럼 쌈박질하며 브리짓 바르도같이 불온하게 늙길 바랄 뿐이다. 부디, '당신을 위해 울지 않을 테니', 계속 뻔뻔하고 용감해 달라. 세상의 암묵적인 마녀사냥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 마돈나와 게이소셜 1편은 올해 1월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