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의 굴곡은 이전 음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웨딩송'같은 곡들은 'Not gonna fall in love again'같은 형태로 옮겨 왔고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나 '화'같은 곡들은 '고작'이나 'Curse song'으로 변했다. '차가운 여름밤'같은 독백 어조는 '물고기'와 동형이다. 읊조리는 곡과 폭발하는 곡들이 뒤섞여 배치되는 특유의 완급조절도 여전하다.
가사는 사랑에 대한 심리 묘사에 집중했다. 그 사랑은 때로는 안도감에서 외로움으로 풋풋함에서 저주로 탈태를 반복한다. 애정에 대한 서사는 오지은의 주된 소재지만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천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랑에 대해서는 온갖 다양한 감정을 고르게 발산할 줄 안다. '오지은'에서 '늑대들'을 거치며 장인처럼 닦아두었던 길이다.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지도 않았고 기존의 영역을 확장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해오던 것을 잘하는 방식으로 한 번 더 해냈다. 옷은 갖추어 입었지만 음악이 따뜻하지만도 않고 세션이나 피처링의 참여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오지은의 현재일 뿐이다.
신기한 것은 지난한 반복 속에서도 가슴을 움켜쥐게 만드는 찰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작'의 솔직함에 울컥하다가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게 만들었을까'의 아르페지오에서 애처로움을 느낀다. 항상 하는 대화에서 간혹 깊은 공감을 느끼듯 예상치 못한 연민은 익숙함에서 비롯되곤 한다. 그 익숙함에 한 번 더 속고 말았다.
-수록곡-
1. 네가 없었다면
2. 어긋남을 깨닫다
3. 고작

4. 사랑한다고 거짓을 말해줘
5. 그렇게 정해진 길 위에서
6. 서울살이는
7. 테이블보만 바라봐
8. Not gonna fall in love again

9. I know
10.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
11. Curse song
12. 물고기

13. 겨울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