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90년대 후반, 비주얼 계의 화려함이 떠나간 록 신은 점점 도쿄의 홍대라 불리는 시모키타자와를 본거지로 두기 시작했다. 서로 어떠한 공통점도 없는 이들이 기타나 베이스 매고, 혹은 드럼 스틱을 가방에 넣고 라이브 하우스로 모여 무작정 듣고 치고 부르던 시절. 하늘에 떠있는 미스터 칠드런(Mr.Children)과 스피츠(Spitz) 아래로, 피쉬만즈(Fishmans)를 숨쉬고 유라유라테이코쿠(ゆらゆら帝国)를 마시며 넘버 걸(Number Girl)을 꿈꾸던 많은 청춘들이 점점 저물어가는 록 신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라이브하우스에서 기약 없는 땀을 흘리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시모키타자와계가 록킹온계라는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로 바뀌어 가는 동안, 그 시간만큼의 자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팀 중에 하나가 바로 결성 12년 만에 첫 베스트 앨범을 발매한 베이스 볼 베어다. 고등학교 시절의 인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밴드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의 음악은 독특한 코드감과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사운드로 하여금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본 모음집은 주위 뮤지션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몸부림과 그로 인한 창작의 괴로움, 그 기반에 깔려 있는 음악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러닝타임으로 환원되어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다.
끈질기리만큼 록과 팝의 밸런스를 놓지 않았던 리더 코이데 유스케(小出 祐介)의 집착은 그대로 밴드사의 굴곡이 되어 미숙과 완숙, 하락과 상승의 포물선을 뚜렷하게 그려내고 있다. 성장드라마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한계를 뛰어 넘는 순간순간이 각 트랙들을 통해 잡힐 듯 눈앞에 그려지는 덕분이다. 그렇게 구체화 되는 장면들은 필름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듣는 재미뿐 아니라 여운 또한 배가시키는 하나의 거대한 연대기로 대중의 감성을 파고든다.
미숙이라는 이름의 메이저 데뷔곡 'Girl friend'와 자만이라는 이름의 첫 싱글 'Electric summer'를 시작으로, 명쾌하고 단순한 구성에 넘버 걸과 슈퍼카(SUPERCAR)의 싸이키델릭함을 십분 머금은 디스토션으로 팀 이름의 철자를 서투르게 써나가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CD1의 전반부는 무모한 패기가 충만했던 시절의 추억 그 자체다. 그에 반해 '抱きしめたい(껴안고 싶어)'로 시작하는 후반부는 프로듀서로 타마이 켄지(玉井 健二)를 맞아들여 선율의 맥을 가다듬고 악기 간의 시소게임을 중재함으로서 프로로서의 책임감을 자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후크를 십분 활용하며 애니메이션 < 크게 휘두르며 >의 주제가로 타이업되기도 했던 'ドラマチック(Dramatic)', 쉬운 단어가 때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크게 흔들기도 한다는 조언에 따라 좀 더 직설적인 표현으로 후렴구를 장식한 '愛してる (사랑해)' 등에서 좀 더 대중과의 접점을 마련하려 한 의도가 엿보인다. 더불어 'Changes'는 처음으로 오리콘 차트 10위에 랭크되며 메인스트림으로의 활로를 마련하기도 했다.
2번째 시디의 서두를 관통하는 것은 한 줄기 빛을 머금은 청량한 멜로디. 명징하다 못해 눈부신 후렴과 코러스의 맞물림을 보여주는 '神神 Looks you (신들 Looks you)'와 스피디함속에서 부유감을 강조한 'Stairway generation'은 대중과 호흡하는 방법의 완전체득을 알리는 곡이다. 이어 사카낙션(サカナクション)의 야마구치 이치로(山口 一郎)가 함께 한 'Kimino-me'의 생경함, 자신들의 룰을 깨고 신시사이저를 사용함으로서 더 큰 그림을 그려낸 'Yoakemae', 에둘러 가지 않은 경파한 베이직 록 사운드를 들려주며 초심과 마주하는 'Short hair' 등이 이어지며 작품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통해 얻어낸 정체성의 안착, 그 여정의 파노라마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시점이다
자극적인 콘셉트나 남들에게는 없는 재능을 빌어 순식간에 비상하는 여타 밴드들과는 다른 '인간적인 매력'이 담겨있는 베스트 앨범이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그 그대로를 끌어안으며 괴로워하고,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주위 사람들의 조력을 받으며 한걸음한걸음 내딛으며, 그 와중에 얻게 되는 경험과 그로 인한 노하우를 진정한 보상으로 여기며 소중히 할 줄 안다는 것. 이처럼 이들이 간직해 온 '이유 없는 꾸준함'이 일구어 낸 성공은 과정에 앞서 결과만을 중시하는 시대의 오류와 정확히 맞대면하며 잃어버렸던 청춘의 꿈을 노크한다. 4개의 감성이 겹쳐 만들어낸 '밴드 B의 족적', 그것은 아마 우리들이 진정으로 원하던 '젊음의 족적'의 이음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
- 수록곡 -
(CD1)
1. Crazy for youの季節 (Crazy for you의 계절)
2. Girl friend
3. Electric summer

4. Stand by me
5. 祭りのあと (축제가 끝난 뒤)
6. 抱きしめたい (껴안고 싶어)
7. ドラマチック (Dramatic)

8. 眞夏の条件 (한여름의 조건)

9. 愛してる (사랑해)
10. 17才 (17살)
11. Changes

(CD2)
1. Love mathematics
2. 神神 Looks you (신들 Looks you)

3. Breeeeze Girl
4. Stairway Generation

5. Kimino-me

6. クチビル·ディテクティヴ (입술 Detective)
7. Yoakemae (Hontou_No_Yoakemae Ver.)

8. Short Hair
9. Tabibito in the dark (여행 in the dark)
10. 初戀 (첫사랑)

11. 若者のゆくえ (젊은이의 행방)
* 본 앨범은 각 음원사이트에서 정식 서비스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