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주년 기념작을 멘데스가 연출한다는 소식과 함께 영화음악을 누가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추측도 즉각적으로 무성했다. 토마스 뉴먼을 대동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물론 안 그럴 거라는 설도 분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토마스 뉴먼은 <아메리칸 뷰티>를 공작한 것을 위시해 가장 세련된 고전주의적 작곡가인데다 오스카가 선호하는 드라마에 적합한 음악들을 변함없이 써왔기에 극히 이례적인 선정이 될 공산이 컸다.
2탄 <007 위기일발>부터 7탄 <007 다이몬드는 영원히>까지 내리 여섯 편의 시리즈의 음악을 작곡한 존 베리가 그랬듯 전통적으로 제작자의 권한으로 여겨졌던 음악선정에 있어, 전편까지 새로운 본드음악의 대세로 군림한 데이비드 아놀드에게 다시 지휘권이 인계될 게 거의 확실시 되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멘데스가 연출을 맡으면서 작곡가도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함께 위임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스카이폴>의 음악은 작곡가 토마스 뉴먼의 영감에서 비롯되게 되었다. 뉴먼은 세대를 대표하는 선두적인 작곡가 중 한명이긴 하지만 <스카이폴>에서 어떤 결과물을 나타낼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액션스릴러물들은 그의 작품목록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2010년의 <언피니시드>(The Debt) 정도가 근래 가장 근사치인 것으로 보이지만 미묘한 음악 반주가 본드영화에는 적절하지 않을 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가 해낼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기도 했다. 답례의 차원에서 여기저기에 산재한 이전 음악의 팁들을 제외하고 뉴먼의 스코어는 데이비드 아놀드와 다르고, 존 베리와도 다르다. 그의 이전 작품들과도 또한 다르다. 그 다름 속에서도 명확히 감지되는 건 누가 뭐래도 토마스 뉴먼의 사운드이며 제임스 본드로 들리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는 거다.
누구든 작곡가의 액션스코어에 대한 신임장을 제시하는 오프닝 큐서부터 즉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게 될 것이다. 상징적인 금관악기 반주가 현저한 오프닝 트랙 'Grand Bazaar, Istanbul'은 명징한 브라스 섹션으로 도입해 영화의 촬영배경무대를 연상시키는 이국적 반주의 사운드성분들과 결합해 강렬한 인상을 주고 들어간다. 뉴먼이 민속음악의 질감을 나타내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사운드편성이지만 데렉 왓킨스(Derek Watkins)의 트럼펫 독주가 나오는 즉시 007 제임스 본드를 즉각 연상케 한다.
사실 여기서 나타나는 상당량의 순수액션음악들은 대단히 놀랍다. <언피니시드>와는 또 다른 차원이다. 뉴먼은 그야말로 액션음악에 매진했다. 특히 지난 두 편의 본드 스코어에서 데이비드 아놀드가 쓴 월-오브-사운드 적 접근방식을 기막히게 잘 활용한데 덧붙여 액션장면에 필요한 역동적 에너지와 신나는 기운을 한층 더 강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실제 연주와 샘플링 된 타악적 사운드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해 스코어에 박진감을 가한 것을 핵심적 특징으로 나부끼는 목관악기 연주음을 가미해 이국적인 감촉을 성공적으로 묘사해냈다. 전면적인 극의 묘사를 책임지는 현악과 전율을 일으키는 폭발적인 브라스는 필수요소다.
여기서 또 다른 놀라운 점은 뉴먼이 고전 제임스 본드 테마를 매우 폭넓게 인용했다는 것이다. 어디나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은밀히, 작곡가 뉴먼은 전통적인 고전 제임스본드 테마를 그 자신의 명백한 스타일로 아주 매끄럽게 소화해냈다. 클래식 스타일 일렉트릭 기타 반주를 특히 강조하여 사운드전경에 포괄적으로 사용했다. 'Komodo dragon'에서 완연히 나타나는 주제가의 곡조는 그 범례.
'Quartermaster'와 같은 지시악곡은 실로 확실한 황홀감을 준다. 거듭되는 퍼커션 연주에 의해 조성되는 긴박감과 이국적인 정취는 그 자체로 매우 성공적인 묘사다. 이국적 풍미가 가득한 색다른 독주가 가미되고 줄어들면서 스코어에 대한 관심을 끊이지 않게 이어간다. 5분여의 환상적인 곡 'The bloody shot'은 액션음악의 하이라이트중 하나로 엄청난 배짱으로 다가오는 금관악기사운드를 포함해 대단한 역동성과 두려움을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온전히 전한다.
질주하는 열차의 지붕에서 본드와 악인 간의 일대 격전이 벌어지기까지, 영화의 오프닝 추격 장면을 위해 쓰인 이 음악은 강력하고 역동적이며 흥분된 감정을 격발시키는 브라스와 활주하는 현악의 협주가 실로 경이롭고 환상적인 절정의 쾌감을 준다. <그린 마일>이나 <니모를 찾아서> 등 지난 뉴먼의 작품들에서 익히 찾아보기 어려운 그 이상의 초월적 차원의 분위기가 본드의 테마와 함께 짜임새 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Health and safety'는 기막히게 좋은 장면을 위한 전주의 역할로 현악을 흥미진진하게 이용해 사운드를 고조시키는 뉴먼의 독자적 방식을 엿볼 수 있고 역시 긴장감 넘치게 이어지는 'Granborough road'와 전면적으로 극적인 분위기를 강조한 'Tennyson', 그리고 데이비드 아놀드의 곡과 가장 유사한 패턴의 'Enquiry'까지 제임스 본드 사운드의 전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Breadcrumbs'에서 뉴먼은 자신의 장기인 특유의 타악 사운드를 가미한 본드 테마를 완벽히 재확인시킨다. 'She's mine'에서도 테마를 아주 멋지고 신나게 이용해 경이로운 분위기를 제공한 작곡가는 활력 넘치는 'The moors'로 또 하나의 대단한 장면에 전율을 선사하면서 'Deep water'에서 액션과 서스펜스가 결합된 스코어의 결정적 장관을 투영한다.
로맨틱한 악절들은 대니얼 크레이그의 본드에게서 찾기 힘든 낭만적 포스만큼이나 드물다. 본드 걸 'Severine'을 위한 곡조는 매우 아름답고 정교한 멜로디가 강렬하게 나타나지만 매우 빨리 시들기 시작하고 주제가를 품은 'Komodo dragon'은 감미로운 현악선율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임스 본드 스코어의 지존이라 할 존 베리를 향한 헌사라 할 만하다.
'Close shave'는 뉴먼의 트레이드마크인 피치카토 스트링이 매혹적인 플루트 멜로디 상에서 연주되면서 나지막이 밝은 분위기를 주입한다. 각 장면들의 지시악절인 큐로 쓰인 곡들로 구성된 앨범은 여러 가지 면에서 순환구조로 되어 있다. 최종곡인 'Adrenaline'에서 두드러지는 민속조의 특징이 바로 그 증거다.
뉴먼의 스코어는 말 그대로 웰메이드, 완벽한 다이너마이트라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샘 멘더스 감독의 스타일에 정확히 부응하면서 명화로 특별대우 받는 007 제임스 본드 독점 시리즈의 50주년 기념작에 맞게 신구의 조화를 절묘하게 이뤄냈다. 반세기를 이어온 최장수 시리즈가 반환점을 도는 것과 같이 고전의 장점을 고스란히 경배하고 살리면서도 근래의 세련된 사운드요소들을 수렴해 자기만의 독자적인 스타일 안에서 경이롭게 결합해냈다. 거침 없이 내달리는 액션장면에 조응해 최상의 청취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절제된 악절들로 구두점을 찍어 숨 쉴 공간을 주는 한편 최고조에서 청취자를 전율하게 만든다.
멘데스가 돌아오지 않는 한 뉴먼도 다시 시리즈에 합승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 한편에 제공한 액션스릴러음악으로 확실한 인상을 주는데 성공했다. 강렬할 뿐만 아니라 매우 현대적인 액션스릴러스코어를 써냈기 때문. 터닝 포인트를 찍은 시리즈에 완전히 부합하는 뉴먼의 음악은 올해 가장 신선하고 오락적 재미가 출중한 영화음악 중 하나로 추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수록곡-
1. Grand Bazaar, Istanbul 이스탄불에 그랜드 바자르
2. Voluntary Retirement 자진(희망)퇴직
3. New Digs 새 발굴
4. Severine 세버린
5. Brave New World 멋진 신세계
6. Shanghai Drive 상해 드라이브
7. Jellyfish 해파리
8. Silhouette 검은윤곽, 실루엣
9. Modigliani 모딜리아니
10. Day Wasted 헛되이 보낸 날들
11. Quartermaster 보급관
12. Someone Usually Dies 누군가는 보통 죽지
13. Komodo Dragon 코모도왕도마뱀
14. The Bloody Shot 쏴
15. Enjoying Death 죽음을 즐겼죠
16. The Chimera 키메라
17. Close Shave 위기일발, 구사일생
18. Health & Safety 건강과 안전
19. Granborough Road 그랜보로우 길
20. Tennyson 테니슨
21. Enquiry 수사
22. Breadcrumbs 빵부스러기
23. Skyfall 스카이폴
24. Kill Them First 먼저 죽일 거요.
25. Welcome to Scotland 스코틀랜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26. She's Mine 그녀는 내거야.
27. The Moors 황무지
28. Deep Water 심해
29. Mother 엄마
30. Adrenaline 아드레날린
※ 이야기의 끝부분 실바가 헬기를 타고 스카이폴 저택에 야간 침투할 때 쩌렁쩌렁 울리게 틀어놓은 노래: Animals의 'Boom boom(out goes the light)'
※ 본드 걸 세버린을 두고 실바와 본드가 사격대결을 벌이는 장면에 깔린 음악: Charles Trent의 'Bo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