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진요' 사건으로 인생 최고의 나락까지 추락했던 타블로의 눈물을 목격한 대중에게 드라마틱한 반전을 쉽게 내치기엔 (방관자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 터다. 그래서인지 군입대와 '타진요' 사건 등으로 공백기가 길었던 것에 비하면 3년 만의 컴백 성적표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이들의 재등장은 큰 무리 없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까지는 권선징악의 개념이 개입된 착한 해석이다. < 99 >는 이전의 모습과는 상이한 불편요소들이 매복하고 있다. 변신이라는 측면에서 '상이'한 느낌을 주는데 성공했다지만 '불편'의 반작용까지 유발시켰다면 반쪽 결과물이라 칭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편요소의 비중이 혹자에게 크게 느껴진다면 그러한 평가도 후하게 여겨질 수 있을 노릇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YG 사단에 입성하면서 내놓은 첫 앨범에 YG표 작곡가들을 대거 제작에 개입시켰다는 것이다. 빅뱅의 'Monster'와 'Still alive'를 각각 작곡한 최필강과 디피(Dee.P) 등이 앨범 크레디트에 어깨를 나란히 겨루며 이름을 올렸다. 단순히 숟가락만 얹은 것이 아니라 곡 스타일이 '에픽하이'의 것이라기보다는 '빅뱅'의 앨범에 수록되어도 어색하지 않은 색채로 변모했다. 모던 록이든, 드림 팝이든, 오케스트레이션이든 세련된 전자음으로 집어삼키는 YG 사단 특유의 괴물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Up', 'New beautiful' 등에서 작렬한다.
< Dookie >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앨범에서는 이들을 힙합 그룹이라 칭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컬과 래핑의 비중을 구조 조정했다. 타블로와 미쓰라 진의 보컬 실력은 논외로 치다 하더라도 두 래퍼의 필치가 느껴지는 가사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아쉬운 마음이 크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연쇄반응으로 에픽 하이 음악의 매력 중에 하나였던 극적인 모티브를 즐기는 재미도 절하됐다. 'Fan', '유서', '피해망상 pt.3'처럼 암울한 내면의 의식을 다룬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흡인력이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희미한 흔적을 '악당'에서 더듬을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두 가지 아쉬운 변화, 즉 'YG 사운드의 개입'과 '랩 비중의 축소'를 단순히 평가절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시야를 넓혀본다면 두 노선의 선회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대중에게 훨씬 소구하는 효과가 크다. 하지만 이러한 재정비가 반갑지 않은 이유는 기존에 명확하게 인지되던 에픽 하이의 '주체성'이 희미해졌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제시한 '그들만의 것' 또한 신선한 대안이라기보다는 익숙한 물결에 휩쓸리는 구도로 관찰되기 때문이다. 결국 < 99 >는 커리어의 변곡점에 위치하면서 아티스트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이다.
-수록곡-
1. Up (feat. 박봄 of 2NE1)
2. Don't hate me
3. 사랑한다면 해선 안 될 말

4. 춥다 (feat. 이하이)
5. 아까워 (feat. 개코 of Dynamic Duo)
6. 비켜 (CD Only)
7. 악당
8. Ghost (Interlude)
9. Kill this love

10. New beauti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