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태생적 문화유산을 감안해 볼 때 호수와 전설의 신화적인 땅으로 휩쓸려 내려갈 거라고 예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스코어는 모든 부분에서 의외의 섬세함을 자랑한다. 딱히 뭐라 단정하기 어려울 만큼 미묘한 감성적 전이가 혼재한다. 은근히 매력적인 메인테마를 소개하고 절정의 순간에 완전히 강력한 감정적 반응을 촉발시킨다.
픽사 애니메이션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또한 픽사가 늘 하던 기존방식을 탈피했다는 데서 확연히 차이를 나타낸다. 10세기 스코틀랜드를 무대로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관례적인 동화를 따르긴 했지만 그래도 영화는 스튜디오의 평상적인 찬사를 끌어냈다. 메리다 공주의 목소리를 연기한 켈리 맥도널드(Kelly McDonal)는 그녀의 엄격한 생활을 지겨워하고 그녀의 어머니 엘리노어와 잦은 갈등을 빚는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는 희망에 찬 메리다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관습을 거역하고 따라서 왕국은 혼돈에 빠지게 된다. 가족이 마녀의 저주를 받은 후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수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하기에 이른다. 이 동화적 최첨단 애니메이션에는 엠마 톰슨과 빌리 코널리를 포함해 다수의 영국출신명배우들이 등장인물의 목소리로 대거 출연해 극적 사실성을 한층 더 강화했다.
도일의 스코어는 필연적으로 제임스 호너(James Horner)의 명작 <브레이브하트>(Braveheart)와 비교되지만 여러모로 다르다. 우선적으로 도일의 스코어는 주제적인 내용면에서 제임스 호너의 명작만큼 명백하지 않다. 다음으로 기악편성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춤곡 리듬을 유효 적절히 활용해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2, 4명이 함께 추는 빠른 춤곡 릴(reel)과 지그템포 춤곡(jig) 그리고 느린 춤곡(strathspey)이 스코틀랜드 춤곡리듬으로 쓰였다.
반면 <브레이브하트>는 할리우드의 거대한 유풍에 근거해 열렬하고 장려한 스코어였다. 도일의 < Brave >는 친밀감과 몸동작에 천착해 있다. 줄리 파울리스(Julie Fowlis)가 부른 'Touch the sky'와 'Into the open air', 그리고 버디와 함께 멈포드 앤 선스가 노래하고 연주한 'Learn me right'와 어우러진 도일의 스코어는 'Fate and destiny', 아름다운 곡조로 막을 연다. 즐겁고 신나는 백파이프와 장난감호루라기로 흥겨운 기분을 도입부에 불러내는 곡은 활발한 지그테마로 스코틀랜드의 광야와 들녘을 가로지르는 소리의 풍경을 들려준다.
지그 멜로디는 즐거운 'Song of mor'du'의 후반부에서 실제 흘러나온다. 빌리 코널리와 다른 목소리출연진들의 유쾌한 합창이 스코틀랜드 전통곡조와 융화돼 재미를 더한다. 영화의 주변부에서 끈질기게 괴롭히는 악명 높은 흑곰에 직면해 저항하는 캐릭터무리들의 게일어 가창곡은 처음으로 등장하는 애가조의 메인테마, 통속적인 피들 그리고 운명의 정수를 되새기는 장중한 스트링에 의해 생각에 잠기게 하는 곡조로 매듭짓는다.
백파이프는 'The games'의 매혹적인 오프닝연주에서 재등장한다. 아일랜드의 작은 북 보드란과 활기 넘치는 스트링이 통쾌하게 조화돼 'Mor'du'테마를 또 하나의 아주 멋진 연주로 들려준다. 백파이프의 합류로 환희의 감동은 배가된다. 'I am Merida'는 다소 놀랍게도 어둡고 황량한 음악이다. 팀파니의 타악과 트레몰로 스트링와 대조적으로 목관악기가 삭막한 분위기를 이끈다.
'Remember to smile'은 백파이프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퍼커션을 폭넓게 배치해 더욱 활달한 분위기를 제공, 거의 의례적인 아악연주효과를 준다. 스코틀랜드의 화려한 행사에 당도한 것 같은 동질감을 채워주는 음악이다. 도일은 백파이프연주를 통해 스코어에 기쁨을 표출해내도록 했다. 이는 환대받는 록그룹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연주했는데, 4인조 그룹이 거대한 홀에서 녹음하는 동안 도일은 '이거 마치 44인조 같은데'라고 했다고 한다.
'Mdrida rides away'는 매우 담차고 공격적인 액션음악, 통상적인 도일의 음악과 유격이 있는 곡이다. 대조적으로 'The witch's cottage'와 'Through the castle'은 뜯어내는 현과 목판을 사용해 그악하고 기발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으며 메리다가 아직 통제하지 않은 증오를 이채롭게 제시한다.
“Legends are lessons'는 영화의 분위기에 조응하는 배경음악으로 더욱 감성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아름다우면서도 비통한 심정을 전하는 첼로연주가 인상적이다. 매우 숭고한 분위기의 트럼펫 독주로 전해지는 메인테마가 특히 매력적으로 곡을 끝맺는다. 주제적인 악상도 공존하지만 아주 잠시 두각을 나타낼 뿐이다.
'Show us the way'는 제목에서 기대할 수 있는 만큼의 웅장함을 발현하지는 않지만 어둡고 잔인한 분위기를 주입하는 서스펜스뮤직, 장면에 맞게 거대한 액션악절을 결국 분출한다. 이는 'Mum goes wild'와 'In her heart'에서 온화한 아일랜드 일리언(uillean) 파이프 연주로 상쇄된다.
마지막 주요 테마는 'Noble maiden fair'에서 나타난다. 도일의 아들이 공동작곡한 매혹적인 자장가로 엠마 톰슨과 페기 바커가 공연했다. 엘리노어와 메리다 간에 강한 유대감을 반영한 이 곡은 영화의 내러티브를 구동하는 원동력이다. 도일의 특유의 세심한 감성이 녹아있어 신기하면서도 기묘한 감흥을 불러내는 곡이다.
'Not now!', 'Get the key', 그리고 'We've both changed', 세곡은 아주 역동적인 액션음악을 제공한다. 백파이프는 극적이고 절정에 달하는 스트링 그리고 우레 같은 심벌이 격돌하는 메인테마에 맞서 연주되고 이는 역동성을 강화하면서 음악에 위기의식을 강하게 주입한다. 두 곡 모두 신나고 감성적인 그리고 도일의 전형적인 곡이다. 도일은 이 곡에 잔손을 많이 들인 것으로 보인다. 'We've both changed'의 중반에 애달픈 피들 연주를 일례로 다정한 보컬이 간단한 전래동요를 부르는 부분으로 이어진다.
스코어는 최후의 순간에 최상의 음악을 들려준다. 'Merida's home'은 아름다운 메인테마를 효율적으로 전개해 극적인 장관을 이루는 결말을 장식한다. 오케스트라의 전면가동, 휘슬, 그리고 탬버린을 통해 이동하는 악장의 장엄한 기분은 가장 풍부한 효과를 낸다. 영화의 결말에 상응하는 완벽한 배웅과 같은 대미다. 마지막 순간까지 테마들을 응축해 뒀다가 일시에 촉발시키는 효과는 감정의 해방과 함께 긍정과 낙관의 감정을 불러내는 데 절묘하게 작용한다. 카터 버웰의 <롭 로이>와 하워드 쇼어의 <반지의 제왕>의 호빗테마를 연상케 할 만큼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하다.
영화의 내용과 스타일에 완벽하게 조응하는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스코어는 그만큼 독특한 매력 때문에 무작위 대중성은 다소 결여될 수밖에 없는 약점도 갖고 있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Sense and Sensibility)와 <소공녀>(A Little Princess)와 달리 <메리다와 마법의 숲>을 위해 쓴 도일의 음악은 더욱 절제되고 묵중하며 일련의 테마를 연쇄적으로 둘러싸는 방식에 토대를 뒀다. 자신이 타고난 음악적 유산을 탐구함과 동시에 호감 가는 음악적 보이스를 결합해낸 도일의 탁월한 역량발휘 속에서 그가 이 업계에서 과소평가 받고 있는 작곡가란 점을 다시금 절감하게 될 수작.
-수록곡-
1. Touch the Sky - performed by Julie Fowlis
2. Into the Open Air - performed by Julie Fowlis
3. Learn Me Right - performed by Birdy and Mumford & Sons
4. Fate and Destiny
5. The Games
6. I Am Merida
7. Remember to Smile
8. Merida Rides Away
9. The Witch's Cottage
10. Song of Mor'du (cast song)
11. Through the Castle
12. Legends Are Lessons
13. Show Us the Way
14. Mum Goes Wild
15. In Her Heart
16. Noble Maiden Fair (A Mhaighdean Bhan Uasal) (cast song)
17. Not Now
18. Get the Key
19. We've Both Changed
20. Merida's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