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환이 먼저 홀로서기에 나섰다. '애프터눈'이라 이름 바꾼 그의 첫 독집은 6곡이 수록된 단출한 EP앨범이다. 평소 사용하는 온라인 아이디를 가져다 쓴 거라지만, 호명을 달리 하려는 건 옛적과 구분을 두려는 최소한의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달라진 건 아직 이름뿐이다. 음악은 여전히 소년 시절의 언저리를 맴돈다. 앨범명처럼 노래들이 < 남쪽섬으로부터 > 왔기 때문일 테다. 남쪽 섬은 단연 제주다. 또한 그곳에서 꿈을 키웠던 소년기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즉 이번 앨범은 '재주소년으로부터 온 음악'의 모음집인 것이다.
박경환의 독립은 이렇듯 자신의 어제를 되새기고 정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기 명칭을 변경하고 제 유년을 상징하는 제주와 'from'이라는 물리적·시간적·심리적 거리를 놓으면서 과거를 구분은 하되, 억지스레 단절하려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체성의 뿌리를 상기하면서 자신의 역사성이 강조되는 편을 택했다.
때문에 이 앨범은 박경환의 재주소년 단독 재현이라 봐도 무방하다. 유상봉의 부재가 이전 음악과의 차이라면 차이다. 박경환만의 재주소년은 한결 더 차분하고 나지막하다. 노래에 스민 고요와 적막을 흔드는 건 역시나 부드럽게 찰랑거리는 기타와 힘들이지 않은 목소리다. 이 투박하면서도 곰살궂은 터치가 어쿠스틱한 촉감으로 피어나 전 수록곡들을 담요처럼 따뜻하게 감싼다. 20분 남짓의 짧은 구성이지만, 간결한 내러티브와 일관된 톤으로 그만의 느리고 순연한 감성의 흐름을 온전히 전달한다. 앨범의 시작과 끝에서 페이드 인-아웃 역할을 하는 연주곡들이 주는 몰입감도 상당하다. 끝 곡 '비오는 오후의 환상'은 묘한 공명을 빚어내며 제목만큼 오후를 환상으로, 꿈결로 이끈다.
'희미>해졌지 우리가 울고 웃던 시간/ 그 여행이 네겐 어떤 의미가 됐나/ 남쪽섬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면/ 내 가슴 가득한 네가 일렁이네'(해변의 아침)
앨범은 현재 이전의 박경환만을 보여 줄 뿐 이후를 제시하진 않는다. 그저 지난 여행의 의미를 곱씹으며 남쪽 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듣는 이도 가슴 일렁이기를 소박하게 바란다. 그리고서 재주소년 이후의 음악은 이후의 몫으로 남겼다. 끝난 것만 같았던 재주소년의 음악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 준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반갑다. 아련한 유년으로부터 배달된, 나른한 오후의 평온한 낮잠 같은 앨범이다.
-수록곡-
1. 선택(intro.)

2. 해변의 아침
3. coffee
4. 서귀포의 환상
5. 어제와 다른 비가 내리는 창 밖을 보며

6. 비오는 오후의 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