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잘 만나야 한다.' 맞습니다. 모든 일에는 자신의 실력과 운도 중요하지만 또 그에 못지않게 시기를 잘 만나야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이 팝계에도 노래도 좋고, 가창력도 훌륭하고, 외모도 뛰어나고, 뮤직비디오도 괜찮았음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의 문턱에서 좌절한 곡들이 아주 많죠. 2위에서 1, 2주 정도 있다가 하락한다면 덜 억울한데, 6주 이상 2위 자리만 맴돌다가 하락한다면 그 가수와 음반사는 정말 돌아버리겠죠? 그래서 이번 하나씩 하나씩에서는 때를 잘못 만나, 아니면 운이 나빠서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2위에 머물러야 했던 그 억울한 노래들의 한을 두 편에 걸쳐서 풀어주고자 합니다.
이 부문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가수는 바로 컨트리 록 밴드 C.C.R.입니다. 1970년대 국내 고고장을 완벽하게 다림질했던 이들의 노래 중에서 무려 5곡이 바로 앞에서 1위를 놓쳤죠. 그런데 이 노래들은 모두 1969년부터 1970년까지, 2년 동안 2위를 차지했던 곡들입니다. 당시 C.C.R.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단박에 가늠할 수 있는 증좌가 되겠죠. 삼척동자도 다 아는 기타 리프로 시작하는 'Proud Mary'와 예전에 청바지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Bad moon rising', 그리고 'Green river', 'Travellin' band', 'Lookin' out my back door'가 C.C.R.에게 쓰린 추억을 안긴 곡들인데요. 더 안쓰러운 건 C.C.R.은 넘버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나마 C.C.R. 보다 덜 억울한 팀은 블러드 스웻 & 티어스입니다. 시카고와 함께 재즈 록 밴드의 대표 주자였던 이들은 1969년, 한 해에 'You've made me so very happy', 'Spinning wheel', 'And when I die'를 2위에 랭크시켰는데요. 이들 역시 C.C.R.처럼 1위곡은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들의 대표곡인 'I love you more than you'll ever know'는 싱글로 발표되지도 않은 곡이죠.
1957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결성된 킹스멘이 발표한 'Louie Louie'는 팝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곡입니다. 2000년대 각광받은 개러지 록의 효시가 되는 밴드이며 곡이기 때문이죠. 개러지와 펑크의 효시 격인 'Louie Louie'는 바비 빈튼의 'There I've said it again' 때문에 1964년에 6주 동안 2위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1년 1월 4일에 세상을 떠난 스코틀랜드 출신의 싱어 송라이터 제리 라퍼티가 1978년에 공개한 'Baker street' 역시 불운한 노래입니다.
멋진 색소폰 연주가 인상적인 이 곡은 1997년에 개봉한 영화 < 굿 윌 헌팅 >에 삽입돼서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Baker street'는 앤디 깁의 'Shadow dancing' 때문에 1978년 6월 24일부터 7월 29일까지 6주 동안 1위 자리만 바라보다가 하락하고 맙니다.
이번 하나씩 하나씩 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는 바로 포리너의 'Waiting for a girl like you'입니다. 이 노래는 1981년 11월 28일부터 이듬해인 1982년 1월 30일까지 무려 10주간이나 2위에 머물러야 했는데요. 이때 포리너의 1위 등극을 방해한 노래가 바로 10주 동안 차트 정상을 호령한 올리비아 뉴튼 존의 'Physical'이었죠. 포리너는 정말 운이 없었지만 1985년에 'I want to know what love is'로 한풀이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Waiting for a girl like you'가 2위에서 하락하고 4주 후인 1982년 2월 27일에는 또 다른 비운의 노래가 1위의 문턱에서 무릎을 꿇고 맙니다. 바로 머라이어 캐리와 웨스트라이프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던 저니의 'Open arms'죠. 2월 27일부터 4월 3일까지 6주 동안 2위에서 발버둥 친 'Open arms'를 좌절하게 만든 노래는 제이 가일스 밴드의 'Centerfold'와 조안 제트 & 더 블랙하츠의 'I love rock'n roll'입니다.
이젠 1990년대로 가볼까요?
디제이 디오씨의 '수퍼맨의 비애'가 나왔을 때 표절 시비가 붙었던 노래 기억하세요? 바로미국 조지아 주에서 결성된 흑인 랩 듀오 태그 팀의 'Whoomp! (There it is)'입니다. 1993년 7월 31일부터 8월 28일까지 5주 동안은 UB40의 'Can't help falling in love' 그리고 2주 쉬었다가 9월 18일부터 9월 25일까지 2주 동안은 머라이어 캐리의 'Dreamlover'에 밀려 모두 7주간 넘버 투가 되는 안타까운 곡입니다.
1994년 10월 8일부터 11월 12일까지 여섯 주를 버텼지만 1위에 오르지 못한 노래는 셰릴 크로우의 데뷔 싱글 'All I wanna do'인데요. 당시에 'All I wanna do'가 도전한 노래는 14주 동안 1위를 장기집권 한 보이즈 투 멘의 'I'll make love to you'였답니다. 'All I wanna do'가 처음 나왔을 때 마이클 잭슨의 공연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경력을 강조해서 그 실력을 부각시킨 셰릴 크로우의 음악은 역시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곡으로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신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부문을 수상해 2위에 대한 보상을 받습니다. 그것도 아주 넉넉히.
앞에 언급한 보이즈 투 멘은 참 여러 가수들을 좌절시킨 장본인인데요. 그 폭압적인(?) 역사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2년 8월 15일부터 9월 19일까지 6주 동안 보이즈 투 멘의 'End of the road' 바로 밑에서 기다렸던 노래는 TLC의 'Baby Baby Baby'죠. 그리고 TLC에 이어서 두 번째로 'End of the road'의 아성에 도전했던 곡은 여성 록 싱어 패티 스마이스와 이글스의 드러머였던 돈 헨리가 듀엣으로 부른 'Sometimes love just ain't enough'입니다.
이 노래는 9월 26일부터 10월 31일까지 6주 동안 자기 차례를 기다렸지만 보이즈 투 멘은 13주간 1위의 열매를 독식하며 이 두 팀에게 좌절감을 안겨줬습니다.
1998년에는 컨트리 계의 섹시 스타 샤니아 트웨인의 'You're still the one'은 브랜디와 모니카가 함께 부른 'The boy is mine'의 기세에 눌려 6월 20일부터 8월 8일까지 무려 9주 동안 넘버 2를 기록해야 했습니다. 현재까지 1,900만장이 팔려 컨트리 앨범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가지고 있는 샤니아 트웨인의 세 번째 앨범 < Come On Over >에 수록된 'You're still the one'은 비록 정상에 오르진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대형 히트곡으로 남아있죠.
샤니아 트웨인처럼 캐나다에서 태어난 흑인 여가수 데보라 콕스의 알앤비 발라드 노래 'Nobody's supposed to be here'는 1998년 10월 5일부터 1999년 1월 23일까지 8주를 버텼지만 셀린 디온과 알 켈리의 듀엣 곡 'I'm your angel'과 브랜디의 'Have you ever'의 기세에 눌려서 결국 정상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 오랫동안 2인자에 머물러야 했던 노래들은 다음 회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