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폐쇄야말로 진짜 종말을 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미 알려진 '세상의 끝'보다 '세상의 종말'이란 해석이 어울리는 이 4인조는 이렇게 실마리를 풀어간다. 베이스와 드럼을 배제한 채 피아노와 턴테이블을 끌어들여 장르의 한계를 타파함과 동시에 어두운 소재로 눈부실 만큼의 빛을 쏟아 내며 음절과 선율 사이의 새로운 결합공식을 제시한다. 그렇게 생겨난 낯선 대중성은 이들을 2012년 최대 유망주로 주목 받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분이 있었던 후카세 사토시(深瀬 慧)와 나카지마 신이치(中島 真一)가 2006년에 직접 라이브 하우스 < Earth >를 설립하며 그룹의 양피지에 서문을 써내려갔다. 이 후 밴드로서는 흔치 않은 합숙생활을 이어 오며 다져진 팀워크는 2009년부터 전파의 가속도를 타기 시작했다. 인디즈 활동 당시 일찌감치 그 떡잎을 알아본 관계자들에 의해 미스터 칠드런(Mr.Children), 범프 오브 치킨(Bump of Chicken)과 같은 동시대의 영웅들이 재적중인 토이즈 팩토리(TOY'S FACTORY)에 자리를 잡았고, 메이저 데뷔 불과 3개월만인 2011년 11월 22일 무도관 단독공연을 성황리에 마치며 최대의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이어진 싱글 'スターライトパレード(Starlight Parade)'는 '올해의 노래'에 준하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니, 일본 록 신에서 보기 힘든 '조기 승진'의 케이스로 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스스로 만든 피난처의 이름을 딴 첫 번째 앨범은 다듬어지기 전 원석의 투박한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다. 제목만 보더라도 '종말', '멸망', '전쟁', '생명' 등과 같은 키워드가 스트레이트하게 재킷 위를 수놓고 있고, 가사 또한 별도의 정제 없이 있는 그대로를 노출시킨다. 이와는 대조적인 빠른 비피엠의 비트와 애절하지만 밝디 밝은 멜로디, 중성적인 후카세 사토시의 보이스컬러가 겹쳐지며 예상치 못한 반발력을 만들어 내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요즘 현지에서 흔히 언급되는 '세카오와 월드(Sekaowa - 세카이노오와리의 약칭)'의 반석이다.
生物達の虹色の戦争 (생물들의 무지갯빛 전쟁) /
貴方が殺した自由の歌は貴方の心に響いてますか?
(당신이 죽인 자유의 노래는 당신의 마음속에 울리고 있나요?) /
- '虹色の戦争(무지갯빛 전쟁)' 中
'虹色の戦争(무지갯빛 전쟁)'에서 들려오는 이들의 외침은 그룹의 성격을 정확히 단정 짓는다. 여기에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수용의 기준이 명확히 드러난다. 과도하게 자의식에 빠져 있는 듯한 노랫말은 확실히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판타지, 그 속에서도 꽤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소재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의견과 '낯 뜨거워 도저히 들을 수가 없다'라는 의견이 상충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공감대 형성 보다 자신만의 언어를 설파하려는 아티스트가 대다수인 일본의 상황과 맞물리고 있는 탓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생각의 엇갈림은 있어도 결과물 자체는 절대 흘려보낼 수 없을 만큼 충실한 면면을 보인다. 리얼 세션에 좀 더 큰 비중을 둔 'インスタントラジオ(Instant Radio)'의 온화함, 뮤지션 입장에서 무모하게도 '신이시여, 인류를 멸망시켜 주세요'라 말하는 '世界平和(세계평화)'의 처절함 속에서도 한결같이 느껴지는 것은 이들의 음악이 모두가 공감할 만한 '팝'이라는 점이다. 화법을 제외한다면 이키모노가카리(いきものがかり) 이후에 이정도로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결과물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 영향력이 고루 퍼지지 못하고 몇 곡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쉽지만, 가뭄에 콩 날 듯한 제이 록 음반의 라이센스 현황을 살펴보면 2년 전 선보인 작품이(그것도 인디즈 앨범이!) 소개된다는 것 자체가 이들의 매력을 반증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단절의 냉기가 퍼져 가는 세상에 어떻게 얼굴을 빼꼼이 내밀 수 있을 만한 따스함을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조금이나마 해답을 얻을 수 있을 만한 데뷔작이다. 불투명한 미래의 불안감을 없애려 시도했던 소리의 충돌은 간절했던 서로의 모습을 비추어냈고, 그 만남은 이 자유로운 음악 세계의 밑그림이 되었다. 절망 속 커뮤니케이션으로 빚어 낸 '아워 뮤직(Our Music)'의 탄생. 그 자그마한 태동의 흔적이 < Earth >에 깊이 새겨져 있다.
- 수록곡 -
1. 幻の命(환상의 생명)
2. 虹色の戦争(무지갯빛 전쟁)
3. インスタントラジオ(Instant Radio)
4. 青い太陽(푸른 태양)
5. 死の魔法(죽음의 마법)
6. 世界平和(세계평화)
7. 白昼の夢(백일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