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의 노래들과 함께 우리는 참 달게도 또 쓰게도 살았다. 양희은 스스로가 말한다. “제 노래가 우리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무언지 모를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쓰라린 마음을 해소해주었다고 봅니다. 제 노래로만 말하자면 팬들은 틀에서 벗어나는 싱그러움을 느꼈던 것 같구요. 한마디로 타성에 젖지 않는 모습이었던 거겠지요!”
틀에서 벗어나는 싱그러움은 '서정성'이요,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이 뜻하는 의미는 '시대성'이다. 양희은은 서정성과 시대성이라는, 대중가요를 한때의 유행가에서 때로 오랜 세월 면면히 흐르는 전설로 탈바꿈해주는 이 두 가지 축과 함께 40년의 활동기록을 써왔다. 하지만 가수 데뷔 40년을 수놓은 그 어떤 노래들도 양희은 자신의 삶(아니 우리 삶)의 실제 이모저모와 동떨어진 것들은 없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내 나이 마흔 살에는', 그리고 가장 최신작인 '당신만 있어준다면', 영화 <선생 김봉두>에 나왔던 '내 어린 날의 학교'는 음악이란 무엇보다 먼저 남의 이야기 아닌 아티스트 자신의 독백이라는 기본을 말해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긴 세월 동안 양희은은 그렇게 자신의 나이 듦과 그사이 본 세상을 고백하듯, 다만 한편으로는 달게 다른 한편으로는 쓰게 노래로 삶을 그려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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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9일부터 8월14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작품 <어디까지 왔니?>는 양희은 음악이 품은 서정성, 시대성 그리고 그의 인생을 압축한 '휴먼 뮤지컬'이다. 낭랑한 음악들이 있고 1960년대와 1970년대가 있고, 그 시절을 껴안고 살아온 한 여자의 스토리가 있다. (제목 '어디까지 왔니?'는 양희은이 1981년 발표한 앨범의 제목이다)
우리 국민이 기꺼이 양희은과 그의 노래에 긴 생명력을 수여한 것도 서정이든 시대정신이든 인간미든 변치 않은 진실함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아침이슬'이 우리 국민의 삶과 생각에 가장 영향을 끼친 노래가 되고 노래방의 엔딩 레퍼토리가 되어 그날의 마침표가 될 수 있겠는가. 스스로의 말처럼 양희은이 타성에 젖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그 투명하고도 시린 노래들이 우리 가슴속에 고이 저장되어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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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악에 대한 천착은 음악을 통해 일군의 우리 시대 음악작가를 굴착해내는 부가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 하나를 봐도 명백하다. 먼저 '아침 이슬'과 '금관의 예수', '상록수', '늙은 군인의 노래'의 김민기는 역사 그 자체이고 고 이주원('한사람', '내님의 사랑은', '네 꿈을 펼쳐라')은 양희은이 활동하지 않았어도 언제나 가요수요자의 가슴에 저장된 감동의 노래를 잇달아 써내며 '포스트 김민기' 시대의 최강 콤비플레이를 축조했다.
이어서 하덕규('한계령', '찔레꽃 피면'), 이병우('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그리고 김의철('저 하늘에 구름따라', '망향가') 등이 양희은의 목소리를 통해 음악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풀어낼 줄 아는 빼어난 역량의 소유자다. 그리하여 음악 대중들은 창조자들 이상으로 그 음악을 명쾌하게 해석한 '위대한 전달자' 양희은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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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순'과 '순수'가 사람들이 양희은 노래에 결코 질리지 않는 비결일 것이다. 남자들 판이었던 1970년대 초중반 포크 음악 무대에서 통기타를 맨 거의 유일한 여가수로, 당대의 여학생들을 또 나중의 아줌마들을 움켜쥐는 '여성시대'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가창의 기본인 무가공 자연창법에 기인한다.
1952년생으로 1971년에 음악계에 등장했으니 딱 40년 캐리어에다가 나이도 환갑을 목전에 두고 있다. 처자식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살아온 어린 시절, 난소암으로 3개월 시한부 인생 선고받은 것 등 파노라마 같은 그간의 인생을 다 나열하기는 힘들다. 막연하게 셈해서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애청곡 숫자와 기구한 역정을 가지고 그는 여기까지 왔다. 그처럼 달고도 쓰디쓴 인생이 없기에 더욱 그 음악에 우리는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