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 파이터스의 히트싱글에는 항상 군더더기 없는 명료한 코드진행과, 그 이상을 끄집어내는 밴드의 감각이 공존했다. 그런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에 기초한 작곡 능력을 보여준 것이 'Best of you'와 'The pretender' 같은 트랙들이다. 밴드가 중견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 시점인 지금, 리더 데이브 그롤(Dave Grohl)은 다른 길을 모색할 때가 왔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 결정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좀 더 거친 소리를 위해 데이브 그롤의 차고에서 아날로그 장비로만 녹음했다는 사실과, 너바나,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소닉 유스(Sonic Youth)의 걸작들을 주조했던 부치 빅(Butch Vig)이 프로듀싱을 맡았다는 소식은 음원의 발표 전부터 전 세계의 하드 록 팬들을 설레게 만들며 또 하나의 걸작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포스트 그런지와 하드록의 문법을 따르는 큰 줄기는 전과 다름없지만, 신보가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다. '한정짓지 마. 우리 그렇게 녹록한 밴드 아니야!'
첫 트랙 'Bridge burning'만 들어도 작정을 하고 만들었음이 읽혀진다. 텐션감 넘치는 기타플레이와 헤비하면서도 그루브를 놓치지 않는 드러밍의 조화는 옷감 속 얽힌 실들처럼 촘촘하다. 'Rope'는 더욱 정교하다.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Taylor Hawkins)는 종일 심벌을 감각적으로 두들기며 전환부마다 묘하게 엇박을 찍어내고, 기타는 그 사이사이를 스릴 있게 내달린다. 명료함을 버림으로서 얻어낸 화려함이다. 데이브 그롤의 '빗장을 완전히 열어 제친' 목청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두 차례의 파도와 함께 간결한 'Dear Rosemary'가 지나가면, 앨범에서 가장 원초적인 'White limo'가 다시 세차게 도전한다. 'I should have known'은 반가운 얼굴 크리스 노보셀릭(Chris Novoselic)이 깜짝 출연해 베이스를 연주해준 트랙이며, 'Walk'는 점차 아드레날린을 상승시키는 기존의 히트 싱글 작법에 팝 감각을 얹은 곡이다.
완급조절 없이 지속적으로 폭주하는 음악을 선보이면서도, 피로감이나 지루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탄탄하게 속을 채웠다. 그동안 푸 파이터스 디스코그래피의 치명적 단점이던 '앞에서 흥을 돋우다가 뒤에서 맥이 빠지게 하는' 의례적인 구성의 개선이다. 덕분에 처음은 물론이고 시디가 멈출 때까지 듣는 이의 집중력을 꽉 붙잡는다.
동시에 철저히 계산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의 심플하고 후련한 면만을 온전히 지지하던 일부 팬들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공산도 있다. 이를테면 메탈리카(Metallica)가 < ...And Justice For All >을 발표하고 대중의 호불호가 갈렸던 것처럼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평가는 대중의 몫이지만, 차트의 성적으로 판단하건데 긍정적으로 보는 세력이 그렇지 않은 세력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신보는 발매와 동시에 무려 (빌보드)일곱 개의 차트에서 1위로 진입하며, 다분히 여성 취향으로 변해버린 남근 상실의 시대에 통렬한 반격을 가하고 있다.
단언컨대, 싱글 단위가 아닌 앨범 단위의 짜임새만 본다면 이들이 발표한 일곱 장의 정규작품 중 단연 최고의 음반이다. 하드 록 최후의 보루가 쌓아올린 2011년 상반기의 수작이며, 헤비니스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후련히 해갈해줄 청량수와도 같은 앨범이다.
-수록곡-
1. Bridge burning

2. Rope

3. Dear Rosemary
4. White limo

5. Arlandria

6. These days

7. Back & forth

8. A matter of time
9. Miss the misery
10. I should have known (bass: Chris Novoselic)
11. Wal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