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에 걸맞게 동생은 형을 향해 또 한 번 회심의 펀치를 날렸다. 밴드의 구성원을 모두 전(前) 오아시스의 멤버들로 구성한 것이다. 이쯤 되면 형의 존재 정도는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밴드가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본 노엘 입장에선 분노에 치를 떨 만큼 약 오르는 상황이겠지만 말이다.
앨범 타이틀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노골적 헤드라인이다. '기어는 다르지만, 내달리는 건 매한가지'란 뜻의 제목이 '노엘은 없지만, 오아시스라고 봐도 돼'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서 기어란 노엘 갤러거의 머리에서 나온 곡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오아시스 시절의 곡은 대부분 노엘이 담당했지만, 이번 데뷔작에 담긴 곡은 모두 리암을 비롯해 기타리스트 겜 아처(Gem Archer), 베이시스트 앤디 벨(Andy Bell)이 공동 작곡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간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첫 싱글인 로큰롤 넘버 'The roller'부터 그냥 오아시스의 음악이다. 급박하게 내달리는 얼터너티브 트랙 'Four letter word'나 복고풍의 분위기가 전신을 흔드는 'Bring the light'도 역시 마찬가지. 그동안 오아시스의 새로운 음악에 목말라했던 이들에게 축복의 해갈을 선사할 만큼 충실한 구성이다. 무엇보다 노엘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곡을 쓰고 매만져낸 노력은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앨범은 잘 정비되어있지만, 끝 맛이 안 좋다. 이들의 데뷔작엔 비디 아이의 음악적 정체성 보단 오아시스의 스타일을 답습한 느낌이 더 강하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노엘을 제외한 전(全) 멤버들로 꾸려졌음을 감안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는 너무 쉬운 길이요, 노골적인 행보다.
전과 같은 습관으로 음악을 성실히 재현했을 뿐 그룹을 조직한 어떤 명분이나 새로운 방향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는 곡의 퀄리티와는 별도로 따져봐야 할 문제다. 결성의 이유엔 음악을 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겠지만, 형에 대한 복수가 더 큰 듯한 의혹이 든다.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한들, 타이틀이나 앨범의 내용물은 그것을 강하게 입증하고 있다. “어때, 너 없어도 우리 참 잘 달리지?”
-수록곡-
1. Four letter word

2. Millionaire
3. The roller

4. Beatles and stones
5. Wind up dream
6. Bring the light

7. For anyone
8. Kill for a dream
9. Standing on the edge of the noise
10. Wigwam
11. Three ring circus
12. The beat goes on
13. The morning son

All songs written by Liam Gallagher, Gem Archer, Andy Bell
All songs produced by Steve Lillywh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