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클랩튼은 현존하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중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동시에 '기타의 신'이라는 칭호가 말해주듯 최고의 찬사를 받는 기타리스트이다.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는 무대 위 그의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라는 느낌을 받는다. '닮아간다, 그의 음악과 그의 기타와 그의 모습이....'라는 생각. 이게 에릭 클랩튼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블루스 음악이라는 게 우리나라에선 참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음악이다. 흔히들 가장 시장성이 없고 배고픈 음악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그렇다. (어떻게 보면 신중현선생님 이후에 밴드 음악의 연결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에릭 클랩튼은 팝적인 성향의 히트곡들로 일반사람들까지도 그의 음악에 빠져들게 하는 놀라운 장점을 지닌 뮤지션이다. 내한공연을 가진 해외 기타리스트 중에 최초로 전석 매진을 기록한 걸 보라. 사실 그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할머니의 손에 의해 자랐다. 그래서 늘 고독하고 외로움이 많았다. 마약. 술, 여자관계 등으로 늘 고통 속에 빠져있던 그를 지금도 건재하게 만든 것은 그가 사랑하고 의지하는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역경과 시련 때문에 그의 기타소리에 '깊이'가 배어나는 게 아닐까. 보컬로 보자면 특별한 테크닉은 없고 성량도 결코 풍부하지 않다. 그저 본인이 본인의 스타일에 가장 잘 맞는 곡을 직접 만들어 소화하기에 그 목소리가 감성적 조화를 선사하는 것이다. 송라이터이기에 갖는 혜택이다.
그는 정통 블루스 연주자이지만 음악의 창작에 있어서는 다른 장르의 느낌들도 많이 사용했다. 솔직히 '원더풀 투나잇'도 팝적인 성향이 섞여있는 블루스로 생각되고, '티어스 인 헤븐'의 경우는 완전 팝이라 생각된다. 물론 그의 끈적끈적한 기타가 노래 사이사이에 적셔주면 에릭 클랩튼만의 선율이 예쁜 블루스 곡으로 재현되지만...
대가들이 그렇듯 그 또한 실험적인 걸 즐긴다. 블루스에 기본을 두되 레게 비트적인 리듬도, 조금은 재즈적인 요소도, 팝적인 요소도 그때그때 곡의 느낌을 살리는 스타일에서 그의 오픈 마인드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주법에는 슬로우 핸드(slowhand)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그냥 느린 손이 아니라 기타 네크에 붙어 다니면서 빠른 진행을 연주해도 손의 움직임이 느리게 느껴지는데서 생긴 그만의 닉네임이다.
밴드 크림(Cream) 등을 거치던 초창기 시절에는 그 또한 록적인 느낌이 강했고 테크닉 또한 거침없었지만 지금은 블루스 뮤지션으로서 완전 이미지가 굳혀졌다. 나이가 들면서 '블루스 레전드' 비 비 킹(B. B. King)과 공연하고 오늘의 그를 만든 '델타 블루스의 영웅'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곡을 재해석한 앨범을 내는 등의 활동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정통 흑인 블루스 뮤지션이 인정하는 백인 블루스 뮤지션이 에릭 클랩튼이다.
1992년에 발표, 그래미상 6개 부문을 휩쓴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은 다섯 살짜리 아들 코너의 아파트 실족사의 슬픔을 가슴에 묻어 곡 전체에 애절함이 흐른다. 첫 기타라인부터 어쿠스틱기타의 울림을 전방에 내세운 편곡도 그렇고 편안한 팝적인 코드진행과 리듬악기 편성을 극대화해서 슬픈 가사 내용과 선율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다.
에릭 클랩튼은 쓸데없이 화성적으로나 테크닉적으로 복잡하거나 화려하거나 하는 스타일을 추구하진 않는다. 대가들이 그렇듯 가장 중요한 멜로디를 뒷받침해주면서 편안하게 들리는 연주와 편곡을 중시하는 타입이다. 초창기 때부터 그는 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를 쓰고 있다. (지금은 에릭 클랩튼 본인의 시그니처 또한 많이 사용하긴 하지만)
우리가 즐겨듣는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의 애절한 기타소리도 바로 펜더 기타소리이다. 그의 연주는 블루스 연주자 대부분이 그렇듯 거의 펜타토닉 스케일이 기반이다. 자주 언급한 것처럼 펜타토닉 스케일이란 건 블루스의 기본이자 끝이기도 하다. 기타 이펙터의 최첨단 장비도 많이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의 끈적거리면서 정확한 울림의 소리는 그의 정확한 양손 타이밍과 오른손 피킹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기타소리 써스테인(sustain)은 철저하게 그의 손 밸런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미세한 피킹 각도와 터치에 의해서 울려 퍼진다. 그는 어느 음 하나라도 대충 치는 게 없다. 정확하고 모든 음 하나하나가 꼭 의미가 들어있다.
모르면 간첩이라고 해도 될 '원더풀 투나잇'이란 곡은 듣고 연주하기란, 오만하게 들리겠지만 정말 식은 죽 먹기다. 근데 막상 연주해보면 뭔가 찝찝한 게 '원더풀 투나잇'이다. 그만큼 에릭 클랩튼의 음악이란 게 듣기엔 감미롭고 편안하지만 직접 기타를 잡고 연주해보면 참으로 어설프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솔로 연주 시 조금 늦게 밀려나오는 백 그루브 감이 그의 기타연주의 특징 중의 하나고 철저하게 노래와 주고받는 앙상블의 능력 또한 그의 탁월한 곡 해석력이라고 할 수 있다. '코케인(Cocaine)'이나 '레이 다운 샐리(Lay down Sally)' 같은 곡에서의 리듬을 끌고 가는 능력 또한 그의 그루브 감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테크닉들이 하모니를 이뤄야지만 그 같은 느낌 좋고 감칠 맛 나는 선율이 나오는 법이다. 그가 '기타의 신'인 것은 '조화의 신'이라는 말과도 같다.
최고의 테크닉은 빨리치는 것보다, 이펙터를 이용한 최첨단 소리를 잘 만들어내는 것보다, 하나의 자연적인 소리가 연주자의 마음에서 얼마나 소리로 전달되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면에서 에릭 클랩튼이 최고의 연주자라는 칭송을 받는 것일 게다. 위대한 뮤지션인 동시에 한명의 인간이란 생각이 드는 게 그 아닌가. 에릭 클랩튼의 연주는 손동작, 기술, 장비가 아니라 실로 사람 그 자체다.
말하자면 연주와 자신이 동격을 이룬다고 할까. 앞서 한 말을 다시 한 번 한다. '닮아간다, 그의 음악과 그의 기타와 그의 모습이....' 그가 곧 내한공연을 갖는다. 이번이 세 번째지만 또 봐야할 것 같다. 1945년생으로 이젠 할아버지의 나이가 됐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가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을 보기를 희망한다. 나도 그렇게 나이 먹어도 무대에서 기타치고 싶으니까. 그는 모든 기타리스트의 롤 모델이자 로망이다.
기타리스트 유병열 : 前 윤도현 밴드의 기타리스트, 현재 그룹 비갠 후의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
대표작 : 1999년 윤도현 밴드 < 한국 록 다시 부르기 >
최근작 : 2009년 비갠 후 < City Lif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