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물며 나이어린 학생이었을 때는 얼마나 더 그 물건들에 대해 애착을 보였겠는가. 상상만 해도 피식 웃음보가 샌다. 특히 '안녕 고양이', '얼룩말', '탄 빵' 등의 일본 학용품에 얼마나 열광했던가. 문구류의 품질은 물론이고 예쁜 디자인에 손에 넣지 않고서는 뒤돌아서기 쉽지 않았더랬다.
가수들도 그랬다. TV나 실황공연을 통해 펼쳐지는 그들만의 장식무대. 요시키와 히데가 있던 X-Japan(엑스-제팬)을 위시해 초난강과 원조 꽃미남 기무라 타쿠야가 있던 그룹 Smap(스맵), 안전지대 등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린 일본가수들을 대하는 심정도 매한가지였다. 현란한 무대의상과 공연에 임하는 태도,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준수(俊秀)한 외모의 남자가수들이 다방면에서 보여준 연예활동은 국내음악계와는 차원이 다른 생경한 것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정적인 발라드와 성인가요가 만연하고 사랑받았던 1980년대에 어투부터 동작하나까지 훈련받아 세련미를 뽐내던 일본 가수들은 그야말로 명품을 보는 듯 했다. 그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옆 자리의 다른 친구들보다 내가 좀 더 낫다는 우월감마저 들었을 정도니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근 20∼30년 전의 일이다. 일본과 미국의 선진가수들에 열광하면서 가요와 다른 외국노래들에 귀 기울이던 때가 지금도 마치 바로 어제처럼 느껴지는데, 지금은 우리음악이 역전현상을 만들고 있다. 현 단계에서 아직 “Korean Invasion"(한국의 침공)을 논하기엔 심히 조심스럽지만 ”걸 그룹“이라는 미명(美名)하에 ”소녀시대“가 일본의 오리콘 차트 정상을 밟았고 한국계 재미교포가 포함된 ”파 이스트 무브먼트“가 미국 빌보드싱글차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은 실로 놀라운 개가(凱歌)다.
엄밀히 말하자면 “파 이스트 무브먼트”는 미국에서 제작한 철저히 미국적인 음악으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을 무너뜨린 셈이다. 그렇더라도 한국계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그룹이 그것도 한국적인 요소가 담뿍 담긴 뮤직비디오를 써가면서까지 음악 시장의 가장 큰 파이인 빌보드정상을 공략했다는 것만으로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한편 내로라하는 아이돌그룹 중 하나인 “소녀시대”는 국내를 넘어 일본에서도 당당히 외모와 실력을 인정받으며 맹활약하고 있는 모습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1980년대 초중반 “소년대”와 “소녀대” 등의 소년, 소녀 그룹들을 배출한 종주국의 자존심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정서가 다른 외국인이 쉽게 듣고 그들의 마음에 들 음악이라면 분명히 특별한 감동을 주는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뛰어난 작곡능력에 있든 가사나 편곡에서 비롯된 거든 그 무엇이 됐든 간에. 그러나 그 특별함이 색다른 새로움에 대한 한시적 관심이나 비주얼적인 요소에서 작용한 것이라면 그것만큼 우려스러운 것도 없다. 정말 아이러니다.
예컨대 소녀시대가 국내에서 인기순위 1위를 달리는 모습을 보며 아이돌이 판치는 음악계라며 탄식을 금치 못할 때가 있었는데, 오리콘 1위라는 소식을 접하며 '아! 소녀시대'하고 격려의 말이 튀어나오니 말이다. 다만 “소녀시대”를 향한 일본소녀들의 화끈한 반응이 “후크 송”에 의한 일시적 마취나 일본소녀그룹과 다른 섹시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를 소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