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0월 23일 조지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벌리 윌셔 호텔에서 《다크호스 투어》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의 주인공 조지는 다크호스 로고가 새겨져있는 티셔츠를 입고 회견장에 나타났다. 영국의 음악 주간지 『멜로디 메이커』는 당시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조지 해리슨이 비벌리 윌셔 호텔의 화려한 회의실 안으로 껑충 뛰어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요란한 소리로 포즈를 요청하는 수십 명의 사진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마치 질 나쁜 할리우드 영화의 패러디를 연상시키는 그러한 장면이 거의 10분 가까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다른 일반기자들로부터 야유와 비난이 터져 나오자 사진기자들은 그제야 회의실 한 구석으로 물러났고, 곧 공식적인 질문이 시작됐다. 해리슨은 느긋하게 보였으며 뛰어난 유머감각을 발휘했다.” (『멜로디 메이커』, 1974년 11월 2일자)
《다크호스 투어》는 1974년 11월 2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로세움에서 출발하여, 12월 20일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이르기까지, 7주 동안 27개 도시를 돌며 총 50회 콘서트를 치르는 대장정이었다. 조지로서는 비틀스 시절인 1966년 8월 29일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 파크 공연 이후 처음 갖는 북미 투어다. 이 거대한 무대를 주관한 사람은 바로 '록 콘서트 프로모터의 전설' 빌 그레이엄(Bill Graham)이었다. 1966년부터 제퍼슨 에어플레인, 그레이트풀 데드, 제니스 조플린 등 주요 사이키델릭 음악가 공연과 1970년대부터는 밥 딜런, 롤링 스톤스 같은 거물의 미국 순회공연을 독점 개최해온 빌 그레이엄은 이 대형 쇼를 조직하고 흥행을 책임졌다.
기자회견장에서 조지는 우선 연초에 약속했던 라비 샹카르 패밀리와의 합동 순회공연 사실부터 확인시켜주었다.
“공연은 개별적인 두 파트로 나뉩니다. 인도 음악축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음악이 그 가운데 하나가 될 겁니다. 이것은 지난 1967년부터 수년간 제가 계획해온 꿈입니다. 그동안은 18-20명이나 되는 음악가를 모시기가 어려워서 못했지만 이번에 마침내 그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공연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라비는 심각한 라가(raga) 대신 가벼운 곡들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한 곡이 한 시간 반씩 이어지는 그런 긴 라가 말고,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하는 소품들 위주로 말이지요. 아주 환상적일 겁니다. 콘서트가 하이라이트에 다다르면 기타, 색소폰, 베이스, 그리고 모든 인도 음악가가 함께 연주하는 장관이 펼쳐질 겁니다.” (조지)
또 조지는 한 달 전 다크호스 레이블에서 나온 라비 음반 < Shankar Family ॐ Friends >와 곧 작업이 마무리되는 본인 음반 < Dark Horse >를 홍보하는 것 외에, 공연을 치르는 다른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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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조지는 'My sweet lord' 표절시비와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 세금징수 문제로 한참동안 골머리를 썩혀왔다. 그래서 《다크호스 투어》를 통해 음악가로서 기분을 되살리길 희망했다.
조지는 비벌리 윌셔 호텔 기자회견을 마치자마자 뉴욕으로 날아가서 다음날인 1974년 10월 24일 《다크호스 투어》 기자회견을 한 차례 더 열었다. 그리고는 11월 2일 토요일, 샹카르 패밀리와 함께 밴쿠버에서 7주 순회공연의 첫 막을 올렸다. 조지가 열광하던 몬티 파이튼(Monty Python)의 노래 'Lumberjack song'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운데, 17,500석 규모의 퍼시픽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팬들은 성냥과 라이터로 불을 밝히고 조지를 기다렸다. 마침내 조지와 그의 밴드가 무대에 등장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던진 조지는 신보 < Dark Horse >의 오프닝 트랙 'Hari's on tour (Express)'로 경쾌하게 공연을 시작했다.
이날 조지와 같이 콘서트를 빛낸 투어 멤버는 톰 스코트(색소폰), 척 핀들리(트럼펫/트럼본), 로벤 포드(기타), 앤디 뉴마크(드럼), 에밀 리처즈(퍼커션), 윌리 위크스(베이스), 그리고 '단짝' 빌리 프레스턴(키보드)이었다. 첫 곡을 마친 조지는 솔로 2집 < Living In The Material World >에 수록된 'The Lord loves the one (That loves the Lord)'를 불렀다. 이어서 “세계 어느 엘리베이터에서나 나오는 노래입니다.”라고 운을 뗀 뒤, 'Something'의 익숙한 선율을 슬라이드 기타로 연주했다. 그 후 조지는 'Who can see it'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Will it go round in circles'(빌리 프레스턴 곡) 'Sue me sue you blues' 같은 음악을 차례로 선보인 다음, 라비 샹카르에게 순서를 넘겼다.
바통을 이어받은 라비는 시브 쿠마르 샤르마, 하리프라사드 차우라시아, 술탄 칸, 락슈미 샹카르, T.V. 고팔크리슈난을 포함, 열일곱 명의 악단과 함께 인도음악 섹션을 시작했다. 연주목록은 'Naderani' 'Vachaspati' 등 총 세 곡. 최근 녹음한 LP < Music Festival From India >에 실린 음악 중에서 비교적 곡 길이가 짧은 음악들이었다. 그런데 서구 관객들은 낯선 인도음악에 따분함을 견디지 못했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몰라 서로 웅성대다가 잠시 뒤부터는 야유와 함께 “로큰롤!”을 외쳤다. 조지는 인도음악을 팬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으나 그 바람은 안타깝게도 《다크호스 투어》 첫날부터 어긋나고 있었다.
애초에 무리였다. 사실 청중은 조지를 보러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라비 샹카르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라비와 함께 등장한 사람들이 인도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라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다가 인도 전통음악은 참을성이 없으면 듣기 어려운 음악이다. 단선율 음악인 동시에 단조롭고 느릿하게 시작하는 까닭에 화끈한 록 음악에 길들여 있는 서양인이라면 금세 지겨워질 수밖에 없다. 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언제 끝날지도 몰라서 제대로 즐기기 쉽지 않은 음악이다. 록 스타의 무대만을 기대하고 왔던 조지 팬들은 그런 인도음악에 분명히 당황했을 것이다. 다들 샹카르 패밀리의 음악이 어찌나 참기 힘들었는지 이날 취재했던 『NME』지는 “라비 샹카르가 무대를 떠나자 객석에서는 의례적인 박수와 함께 안도의 한숨이 크게 터져 나왔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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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와 친구들의 무대가 모두 마무리되고 이어 샹카르 패밀리가 다시 나왔다. 인도 음악가과 조지의 투어 밴드가 하나 되어 동서양 합동무대를 펼칠 순간이다. 모두가 가장 의욕적으로 공들여 준비한 시간. 인도악단이 악기를 조율하는 틈을 타서, 조지가 앞으로 나와 다음 차례를 소개했다.
“자, 공연을 조금 더 이어가겠습니다. 이번에 들려드릴 곡은 다크호스 레이블을 통해 나온 새 음반 < Shankar Family ॐ Friends >에 담긴 곡입니다. 이 곡은 크리슈나를 향한 러브송이며, 락슈미 샹카르가 노래를 불러드릴 것입니다. 제목은 'I am missing You'입니다. 모쪼록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지, 1974)
라비의 지휘 아래 가장 먼저 대나무 피리의 맑은 선율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곧이어 여성 성악가 락슈미 샹카르가 특유의 고음으로 'I am missing You'를 부르기 시작했고, 여러 인도 음악가와 서구 뮤지션이 가세해 합주를 펼쳐 나갔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인도 악단 곁에 앉아있던 조지가 약간 쉰 듯한 목소리로 “I am missing you. Oh, Krishna where are you." 하는 코러스 부분을 따라 불렀다. 그리고는 앙코르로 ”할렐루야, 하레 크리슈나, 옴(ॐ) 크라이스트, 붓다, 알라, 자이 스리 크리슈나, 자이 라데“를 외쳤던 'My sweet lord' 펑키 버전을 끝으로 첫날 쇼를 모두 마감했다.
비록 큰 탈 없이 마쳤지만 조지는 《다크호스 투어》 첫날부터 상당한 결점을 노출했다. 우선 전술한 바대로 인도음악 앙상블은 청중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인도음악이 별로였다 라기보다는, 팬들은 하드 록 콘서트를 원했고 무엇보다 비틀스 노래를 듣고 싶어 했다. 그러나 조지는 자신이 사랑하는 인도음악 파트를 끝까지 고수했다. 반면에 별로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옛 비틀스 레퍼토리는 잘 부르지 않았다. 관객의 기대를 염려한 라비 샹카르가 조지를 설득한 덕 'Something'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In my life', 'For you blue' 같은 비틀스 넘버가 두서너 곡 세트리스트에 올랐지만, 고집이 있던 조지는 그럴 때마다 원곡대로 부르지 않고 가사를 슬쩍슬쩍 바꿨다. 가령 “Something in the way she moves it”, “While my guitar gently smiles”, “In my life I love God more” 같은 식이었다.
《다크호스 투어》를 주관했던 베테랑 흥행사, 빌 그레이엄은 애초에 비틀스 연주목록을 최소화했던 조지의 결정이 관객과 미디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봐 걱정했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러나 뭐니 해도 이날 가장 큰 문제는 조지 본인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는 공연 첫날부터 갈라지기 시작했다. 실은 < Dark Horse > 세션 막판에 무리한 탓에 이미 한참 전부터 목이 쉬어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공연을 제대로 치르려면 일정을 뒤로 미뤄놓고 목이 낫기를 기다려야했다. 하지만 조지는 투어를 강행했고 손상된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결코 회복되지 않아서 순회공연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그런데 그럴 법도 했던 것이 《다크호스 투어》는 49일간 드넓은 북미대륙 27개 도시를 돌며 총 50회 콘서트를 치르는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보통 하루에 두 번씩 공연을 치러야했다. 조지는 목소리가 정상일 때에도 이런 강행군 경험이 없었다. 물론 그 전에 비틀스 멤버로서 몇 달씩 월드투어를 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보통 한번 공연에 30분 정도로 짧게 무대를 마쳤다. 또 그 시기에도 조지는 밴드의 리드 기타리스트로서 주로 백업 보컬만 맡았지 이렇게 노래를 공연 전체에서 부른 일은 없었다. 그랬던 조지가 목까지 상한 상태에서 두 달 동안 빽빽한 일정을 소화해야했으니 목소리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그 시절 조지는 폭풍과도 같은 비판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다. 음악매체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앞 다퉈 혹평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저명한 록 평론가 벤 퐁 토레스가 1974년 12월 19일자 『롤링 스톤』에 쓴 글이었다. 제목부터가 「걱정스러운 미국 순회공연 The Troubled U.S. Tour」이었다. 토레스는 기사의 헤드카피를 “새 밴드, 그러나 팬들은 여전히 비틀스를 원했다”라고 뽑고는 《다크호스 투어》 첫날을 노골적으로 빈정댔다. 조지와 함께 순회공연을 이끌었던 라비 샹카르도 투어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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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조지와 라비는 각종 악재에도 두 달 간의 장기 레이스를 무사히 완주했다. 조지처럼 목이 쉰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라비는 투어 도중이던 1974년 11월 30일, 시카고 콘서트를 마친 뒤 심장마비가 오는 위급상황을 맞이했다. 그 때문에 라비는 공연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고, 5일 동안 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다가 투어 막판에야 겨우 복귀했다. 라비까지 빠진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조지는 그 압박감을 이겨내고 《다크호스 투어》를 끝까지 책임졌다.
조지로서는 최선을 다한 무대였다. 후두염에 걸린 상태에서도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고 관객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또 훌륭한 음악가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을 즐겼다. 그랬기에 스테이지 위에서 그의 표정은 밝았다. 크리슈나 배지를 비롯해 요가난다, 스리 마하바타르 바바지 등 티셔츠에 붙이고 나왔던 여러 인도 성인의 배지도 조지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러나 공연장 밖에서는 평론가들의 지나친 혹평에 심리적으로 흔들렸다.
결국 《다크호스 투어》를 끝낸 뒤, 조지는 완전히 탈진했고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감정기복이 심해져서 우울증에 빠지는가 하면, 그 후로 순회공연을 두려워하는 부작용까지 생겼다. 그 대신 그는 집안에 칩거하면서 예쁜 꽃과 정원을 돌보며 마음을 안정시켰고 상처를 치유해나갔다. 그리고 1992년 12월, 에릭 클랩튼과 일본 투어에 다시 나서기 전까지 거의 20년 동안 순회공연을 하지 않았다. 지친 건 라비 샹카르도 마찬가지. 《다크호스 투어》를 치르는 도중 심장마비까지 겪었던 라비는 영국에 더 있어 달라는 조지의 권유를 뿌리지고 인도로 돌아갔다.
이처럼 《다크호스 투어》는 조지를 탈진상태와 신경쇠약 직전까지 몰고 갔으나, 그렇다고 조지가 결코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조지의 참뜻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 뜻을 조지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기 때문이다. 또 악평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조지는 그 장기 순회공연을 통해 “East Meet West"라는 캐치프레이즈와 인도음악을 서구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 다름 아닌 《다크호스 투어》가 있었기에 뒤이어 월드퓨전이란 새 장르를 개척한, 존 맥러플린과 자키르 후세인의 인도-재즈 퓨전 밴드 샥티(Shakti, 1975-1977)가 탄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