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차트와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어도 밥 딜런은 언제나 팝 음악계에서 '영향력 있는 음악인 1위'로 꼽힌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든, 이글즈든, 징징거리는 소리의 헤비메탈 그룹이든 모두들 '딜런의 후예들'이다. 근래 2005년의 앨범 '모던 타임스'와 지난해 68세 나이에 발표한 통산 서른 세 번 째 앨범 '투게더 스루 라이프'가 그랬듯이 그가 앨범만 냈다하면 모든 음악전문지는 마치 의무처럼 그해 앨범 중 으뜸으로 선정한다. 그의 경쟁력은 인기가 아니라 음악의 심도 혹은 역사적 중력이 요체인 것이다.
무엇보다 가사가 그를 '우리 시대의 음악지성'으로 견인했다. 그는 낱말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했고 자유롭게 써내려가면서도 깊이 있는 메시지를 쾌척했다. 대중가요에 부재했던 철학이 있었고 그런 만큼 난해했다. 그의 정확한 의중에 대한 굴착의 어려움은 더욱 그를 레전드로 만들었다. 대중음악가들은 그의 경이로운 언어세계를 접하면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 못지않게 가사가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깨달았다. 애들 사랑 얘기밖에 몰랐던 비틀스의 존 레논(John Lennon)도 그의 음악을 듣고 나서 인생, 사회, 종교에 대한 노랫말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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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통기타 포크의 영웅인 동시에 록 음악의 구세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1965년 그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통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섰다가 야유를 당했지만 역사는 그를 포크와 록 사운드를 결합한 '포크록'의 창조자로서 길이길이 환대했다. 록으로부터 젊음의 폭발하는 사운드를 끌어온 대신 록한테는 가사를 가르쳐주는 공적을 남긴 것이다. 노랫말과 록 사운드를 공유한 포크록은 청년의 음악문법으로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풍미했다. 국내에서도 한 대수, 송창식, 이장희 등이 포크록 노선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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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악은 하나의 현대사상 저서나 같다. 마이클 잭슨이 음악을 영상처럼 보게 했다면, 밥 딜런은 음악을 책처럼 읽게 했다고 할까. 어쩌면 1960년대 이후 서구 대중음악은 밥 딜런에 대한 경배를 통해 힘과 품격을 늘렸는지도 모른다. 그가 내한공연을 갖는다. 그것은 단지 한명의 유명한 서구 아티스트를 보는 자리가 아니라 그가 등장하기 전에는 없었던 대중음악의 현실파괴력과 정신사적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