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예정된 7시 정시에 공연이 시작되었고 그가 무대로 나오는 순간, 난 눈물이 핑 돌 뻔했다. 신곡을 포함해 귀에 익은 히트 넘버들이 연주되고 완벽한 멤버들의 리듬 플레이 위로 그의 신들린 기타가 불을 뿜었다. 꿈을 꾸는 듯한 1시간 40분이었다. 1944년생이니 우리로 따지면 예순 일곱 살, 하지만 적어도 연주만은 그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전성기 에너지 그대로였다.
제프 벡은 한마디로 모든 하이 테크닉의 기타주법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피크를 쓰지 않고 손가락 핑거 주법으로 유명한 그의 청명한 기타 톤은 철저하게 그의 손맛에서 나온다. 톤 자체는 퍼즈(fuzz) 계열의 톤이지만 소리가 선명한 이유는 적절한 볼륨을 이용한 톤 감각, 픽업 체인지와 핑거주법의 완벽한 조화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결국 제프 벡만의 차별화된 기타사운드가 여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누구나 제프 벡 같이 연주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제프 벡 같은 맛을 내지는 못한다!',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의 연주 시 오른손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한곡을 연주하는 동안에도 엄청 분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끼손가락에 트레몰로 암(tremolo arms)을 끼고 반음과 한음 사이를 오가는 절묘한 멜로디 라인의 전개는 누구도 맛을 내기 힘든 그만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이걸로 신디사이저 같은 소리도, 거친 하모니카 같은 소리도, 하와이안 기타적인 사운드도 포괄한다.
'Over the rainbow'에서는 서스틴(sustain, 음이 길게 이끌리는 것)을 이용한 하모닉스 주법 테크닉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하모닉스 한음에 절묘한 멜로디 라인을 끌고 가는 주법은 객석의 탄성을 불렀다. 'Angels' 연주 때는 보틀넥(슬라이드 바)를 이용한 테크닉이 불을 뿜었다. 후반부 기타 네크가 끝나는 기타 몸통 쪽 줄에다가 보틀넥으로 때려서 소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와, 정말 명인이구나!!' 옆 자리에 계신 음악선배(신촌블루스) 이정선 교수님도 이 장면에서 '미친 마법!'이라며 정상이 아님을 연발했다.
유명한 'Brush with the blues'를 연주할 때 감칠 맛 나는 끈적거리는 블루스 연주도, 'Big block'나 'Blast' 그리고 인순이가 근래 '열정'으로 번안한 슬라이 앤 더 패밀리스톤 그리고 아이크 앤 티나 터너의 곡인 'I want to take you higher'와 같은 펑키한 곡들도 제프 벡 아니면 그런 맛을 낼 수 없다. 철저하게 끌고 가는 트레몰로 아밍과 핑거주법의 절묘한 조화가 없으면 절대로 제프 벡 연주를 흉내 내는 것은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공연은 멘트도 거의 없이(이것도 맘에 들었다!) 1시간40분 남짓 21곡 정도를 정말 성의 있게 연주했다. 여성 베이스 론다 스미스(Rhonda Smith), 드럼 나라다 마이클 월든(Narada Michael Walden), 키보드 제이슨 레벨로(Jason Rebello)의 연주도 기막힌 것이었다.
잠시 딴생각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가버린 공연은, 근래 내가 본 공연 중에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연주만으로 이루어진 공연으로는! 공연이 끝나고도 관객들은 그대로 자신의 자리를 지킨 채 두 번이나 앙코르를 외쳤다. 제프 벡은 예정에도 없던 앙코르 레퍼토리를 선사하는 성의를 보여주었다. 그 곡은 제프 벡 팬이라면 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거장 로이 부캐년(Roy Buchnan)에 대한 오마쥬, 다름 아닌 'Cause we've ended as lovers'였다. 이 곡은 누가 봐도 미리 세션들과 호흡을 안 맞춘 상태였다.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했다.
연주자 혹은 연주지망생이 아니라도 음악팬이라면 흡족해 했을 무대였다고 생각한다. 격정적 댄스, 틴에이저의 아우성이 없어도 음악의 감동은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별다른 말은 없었어도 성의 그리고 관객의 환호에 답하는 인사에서 우러나는 '겸손'한 자세 또한 장인으로서의 위상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공연장 플래카드에서 '제프 벡의 한국 첫 라이브'라고 했지만 언제 이러한 황금기회를 다시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의 플레이와 이름은 내 가슴 속에서 영원할 것이다. 진정한 기타리스트로서, 뮤지션으로서, 장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영원히...
2010/03 기타리스트 유병열(g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