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해리슨은 우드스톡에서 밥 딜런에 깊은 영향을 받고 연말쯤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이듬해인 1969년 1월 2일부터 곧바로 존, 폴, 링고와 함께 비틀스의 '겟 백 Get Back' 프로젝트와 트위큰햄 세션에 참여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줄곧 무거운 분위기'이자 '지옥'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작업'의 시작이었다. 비틀스 모두에게 어둡고 힘든 시기였다. 환한 웃음은 사라졌고 우울함이 짙게 깔렸다. 말다툼과 신경전, 실랑이가 터져 나오는 고통스런 순간들이었다.
'겟 백' 프로젝트는 폴 매카트니의 구상 속에서 탄생했다. 매카트니는 흩어진 그룹을 단합시키는 방법으로 그간 중단해왔던 비틀스의 라이브 콘서트를 생각해했다. 그래서 멤버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작곡해 연습한 다음 관객들 앞에서 라이브로 발표하자는 의견을 냈다. 또 그 실황 음반 만드는 과정을 모두 필름에 담아 다큐멘터리로 만들자는 계획도 세웠다. 비틀스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팬들에게 모두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팀원 사이에 다소 이견은 있었지만 밴드는 공연 리허설과 다큐멘터리 촬영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우리는 1969년 1월 트위큰햄 스튜디오에서 < 렛잇비 >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 겟 백 >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습니다. 마이클 린지-호그가 감독이었습니다. 비틀스가 연습하고 즉흥연주를 하며 함께 작업하는 작업을 보여준 뒤 그 다음 마지막으로 어느 장소에서 성대한 콘서트로 마무리한다는 의도였습니다.” (폴 매카트니)
“원래 아이디어는 폴이 냈을 겁니다. 신곡들을 연습한 뒤 장소를 골라 콘서트를 열고 그 레코딩으로 신보를 만들자, 라는 것이었죠. 선율을 배운 다음 오버더빙 없이 녹음했습니다. 라이브 앨범을 해보자는 것.” (조지 해리슨)
“아주 훌륭한 생각이었습니다. 2월에 영국에서 야외 콘서트를 연다는 것을 빼고는 말이지요. 비틀스를 보러오는 관객들을 수용할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았고요. 그래서 우리는 캘리포니아 같은 해외에 나가서 공연하는 것이 어떨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런데 망설이다보니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결국 트위큰햄 영화 스튜디오에서 리허설을 시작했습니다. 나도 그들과 함께 했어요. 그러나 작업도중 불화가 너무 많았고 방향성도 상실해갔습니다. 그 시기에 그들은 정말로 헤맸습니다. 서로 사이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자주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조지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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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비틀스도 비교적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했다. 모두들 스튜디오에 나와 'Two of us', 'I've got a feeling', 'Oh, darling', 'One after 909' 같은 곡들을 쓰고 함께 연습해나갔다. 하지만 며칠 가지 않아 모든 게 편하지 않은 상황으로 돌변했다. 잘 알려진 대로 사생활이 전혀 없었다. 카메라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룹을 계속 따라다녔다. 연습하고 녹음하고 다투는 모든 과정을 촬영함에 따라 멤버들은 불편해졌다.
또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말처럼 밴드가 방향성과 확신을 잃고 해매기 시작했다. 폴 매카트니 혼자서 에너지 넘치고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했으며 나머지 멤버들은 수동적으로 그를 따랐다. 존 레논은 옆에 바싹 붙어있는 요코 오노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조지 해리슨은 혼자서 고개 숙이고 묵묵히 기타를 쳤다. 링고 스타는 전혀 활기 없는 표정으로 드럼을 두드렸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긴장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던 중 마침내 일이 터지고 만다. 'Two of us'를 연습하던 동안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 사이에 신경전이 오간다. 폴이 조지의 기타 솔로를 참견했고 이에 조지가 참지 못한 것. 팬들이 보기에도 무척 가슴 아픈 장면이다.
“어느 날 폴과 내가 말다툼을 벌였던 적이 있어요. 그런 것도 영화속에 다 나옵니다. 폴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음, 그렇게 연주하지 마.' 그러면 나는 말합니다. '좋아 네가 연주하라는 대로 뭐든지 다 연주할게. 또 하지 말라면 아예 안 할게. 네 기분에 맞출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할게' 그들은 이렇게 우리가 의견 대립하는 것도 촬영했습니다. 서로 주먹다짐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대체 이게 뭐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 여길 나가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지 해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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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영화를 돌이켜보면 누군가 한사람이 너무 나서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특별히 나는 제작자도 아니고 감독도 아닌 그저 밴드의 멤버 중 하나였는데 말이죠. 나로서는 그저 열정적으로 해보려다 그렇게 된 것뿐입니다. 디렉터와 함께 앉아 말하던 것도 그것이었어요. 그러나 두서너 번 정도 언쟁으로 이어졌고 그중 한번은 조지가 '좋아. 나는 안 하겠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조지가 이런 식으로 연주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던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실은 밴드에서 이러한 문제는 항상 힘든 일이에요.” (폴 매카트니)
“조지는 점점 더 많은 노래를 작곡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가길 원했어요. 처음 우리가 시작했을 때는 기본적으로 존과 폴의 방색대로 갔습니다. 작곡을 그들이 다 했으니까요. 하지만 조지도 본인의 독립성을 찾아나갔어요. 특히나 폴에게만큼은 지배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폴이 조지에게 기타 솔로를 지적했거든요. 그럴 때마다 조지는 짜증난 상태에서 이렇게 말하곤 했죠. '이봐, 기타리스트는 나야. 솔로는 내가 연주해.' 그리고는 정말 그렇게 했어요. 실제로 조지는 항상 멋진 기타 솔로를 연주했습니다.” (링고 스타)
“다들 그런 시기를 겪었어요. 한때 링고도 밴드를 떠났었습니다. 존도 그만두고 싶어 했어요. 정말 너무나도 힘들고 스트레스가 매우 많았던 때였습니다. 말다툼하는 것까지 촬영되는 현실이 진짜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어요. '더 이상 못하겠어. 여길 떠날 거야' 그리곤 기타를 가지고 집으로 가버렸어요. 바로 그날 오후 집에서 'Wah Wah'를 썼습니다.” (조지 해리슨)
비틀스를 뛰쳐나온 조지 해리슨은 리버풀에 가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5일 뒤 그는 리버풀에서 런던으로 돌아왔다. 잠시 조지 대신 에릭 클랩튼을 데려오자는 이야기도 농담처럼 오갔지만 존, 폴, 링고 등 다른 비틀스 멤버들은 조지의 집에 찾아가서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를 달랬다. 조지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 투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사태는 해결되었고 조지는 스튜디오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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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쾌락을 위한 모든 욕구를 버리고 사심 없이 생활하며, 모든 소유욕을 버리고, '나'와 '내 것'에 대한 헛된 생각에서 벗어난 사람, 오직 그가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제2장 71절]
“이는 영적이며 신성한 삶이며, 그 경지에 이른 다음에는 결코 당황하지 않으리라. 이로써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신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제2장 72절]
조지 해리슨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I me mine'은 에고(자아) 문제에 관한 곡입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나'가 있습니다. 작은 '나'는 사람들이 '나는 누구입니다'라고 말할 때의 '나'입니다. 커다란 '나'는 '옴' 같은 완전하고 전부이며 우주적인 의식입니다. 커다란 '나'는 이원성이라든지 '에고' 따위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완전하고 전부인 커다란 '나'에 속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작은 '나'가 커다란 '나'로 합쳐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웃으며 말할 수 있습니다.
“LSD를 복용하고 난 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다 내 에고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내 페이퍼(종이)야', '그건 내 플란넬이야', 또는 '그거 내게 줘', '나입니다' 같이 말이지요. 그러한 것들 때문에 내가 돌아버릴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 자아와 관한 모든 것을 몹시 질색했습니다. 내 에고는 잘못된 모든 것들과 내가 미워하는 영원하지 않은 것들의 순간적인 번쩍임이었습니다.
“어찌됐든 그렇게 해서 나온 노래가 'I me mine'입니다. 우리들 내면에 있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과 하는 것, 만지는 것과 냄새 맡는 것들이 다 가짜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현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도 답할 수 있을 겁니다. (조지 해리슨)
한편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면 조지가 'I me mine'을 열창하는 동안 존 레논과 요코 오노가 그 곡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 있다. 막판에 나오는 옥상 콘서트 실황과 더불어 영화 < 렛잇비 >에서 가장 멋진 명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