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제 다 끝났어. 나는 더 이상 비틀이 아니야.” (조지 해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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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해리슨은 런던 히드로 공항서부터 이미 인도사람이었다. 인도 상하의인 쿠르타와 파자마 차림에 짧게 자른 머리칼과 콧수염은 영락없는 현지인의 것이었다. 장시간 비행 끝에 봄베이에 도착한 조지와 패티는 '미스터 앤 미스 샘 웰스'라는 가명으로 타즈마할 호텔에 투숙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공연장과 호텔 방 사이만 오갔던 해리슨에게 모든 것이 융합되어 있는 인도는 '진짜'였고 살아있는 배움의 현장 그 자체였다.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다. 거리에 나가보면 버스나 택시를 모는 사람들, 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그곳에는 닭과 소도 같이 있으며, 그 옆에는 회사원 복장에 서류가방을 든 사람들과 오렌지색 옷을 입은 출가 수행자들이 한 데 어울려있다. 모두가 다함께 섞여있다. 각종 소리와 색깔과 소음들이 층층이 쌓인 대단한 장소다. 그 모든 것은 내 감각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조지 해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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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타르를 배울 때 초보자들은 바르게 앉는 방법과 시타르를 잡는 방법만 익히려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커다란 시타르를 쥐고 장시간 앉아있다 보면 등과 팔다리 등에 극심한 고통이 따른다. 조지 해리슨 역시 다리와 엉덩이에 지독한 통증을 느꼈다. 그 아픔을 덜어주려고 라비 샹카르는 요가 전문가를 모셔다 조지에게 하타 요가를 강습시키기도 했다.
1965년부터 시타르를 쳐온 조지 해리슨은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시타르를 수련한다. 연주자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점에 매력을 느낀 그는 이후 3년 여 동안 날마다 서너 시간씩 시타르를 연습했다. 이처럼 장기간 지속된 시타르와 인도음악 공부는 향후 조지가 독특한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슬라이드 기타의 달인이 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렇지만 타즈마할 호텔에 묵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결국 일이 터졌다. 엘리베이터 운전사가 조지 해리슨을 알아봤고 곧 수천 명의 10대 팬들이 “조지! 조지!”를 외치며 호텔로 몰려들었다. 더 이상 시타르 수업을 이어나갈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지자 조지는 공식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비틀스로서가 아니라 라비 샹카르의 제자 자격으로 시타르를 배우러 왔음을 설명하고 평화롭게 지내다가 갈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기자회견 다음날 조지와 패티 부부는 라비 샹카르와 그의 연인이었던 카말라, 샴부 다스와 함께 봄베이를 떠났다. 이들은 히말라야 설산이 에워싸고 있는 아름다운 땅 카슈미르로 올라가, 그 유명한 스리나가르의 달호수에서 하우스보트를 빌려 몇 주간 생활했다. 이 천혜의 장소에서 해리슨은 음악적, 영적 스승 라비 샹카르의 가르침을 받으며 인도음악뿐 아니라 베딕 철학과 힌두교에도 깊숙이 빠져들었다.
시타르 레슨과 더불어 조지 해리슨은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자서전 < Autobiography of a Yogi >, 비베카난다의 < 라자 요가 > 같은 책들을 읽으며 요가와 명상에 심취했다. 또 그 밖의 시간에는 마을을 돌아다니고 사원 구경하고 쇼핑했다. 업(業)의 법칙을 설명해준 라비 샹카르의 구루, 타트 바바(Tat Baba)와의 귀한 만남도 있었다. 그럴수록 점점 더 내면의 불꽃이 타올랐다.
조지 해리슨의 두 번째 인도여행은 봄베이와 스리나가르, 리시케시, 타즈마할, 조드뿌르, 자이뿌르, 델리를 거쳐 성스런 갠지스강이 흐르는 인도 최대의 힌두성지 바라나시까지 이어졌다. 조지는 이 순례를 통해 영혼과 정신을 살찌우며 자기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했다. 그리고 인도 및 신(神)과의 영적인 합일을 확인했다.
1966년 10월 말 런던으로 귀국한 조지 해리슨은 다시 비틀스로 돌아가 밴드의 후속 음반 <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 작업을 시작했다. 인도를 향한 조지의 뜨거운 헌신은 앨범 커버에 반영됐다. 피터 블레이크와 잰 하워스가 공동으로 디자인한 이 전설적인 커버에는 카를 구스타프 융, 지그문트 프로이트, 밥 딜런, 말론 브란도, 오스카 와일드,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등 비틀스가 좋아하는 사람들 70여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조지 해리슨의 요청으로 인도의 영적 스승이 네 명이나 들어갔다. 20세기 최고의 요가 명상 수행자인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와 요가난다의 두 스승 라히리 마하사야, 스리 유크테스와르, 또 이들의 영원한 구루인 스리 마하바타르 바바지다. 모두 얼마 전 조지가 인도에서 읽고 깊이 감명 받은 요가난다 자서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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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967년 3월 15일 조지 해리슨은 < 리볼버 >의 'Love you to'에 이은 두 번째 인도음악 작품이자 < 서전트 페퍼스 >에서의 유일한 자작곡 'Within you without you'를 녹음했다. 2006년 리믹스 앨범 < 러브 Love >에서 'Tomorrow never knows'의 리듬 트랙으로 혼합되기도 했던 이 곡은 함부르크 시절부터 절친했던 친구이자 < 리볼버 > 커버를 디자인한 독일 출신 예술가 클라우스 포어만(Klaus Voormann)의 런던 햄스테드 집에서 탄생했다.
어느 날 저녁 조지 해리슨과 패티 해리슨 부부는 그 당시 그룹 만프레드 만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던 클라우스의 집에서 파티를 가졌다. 식사를 마친 뒤 사람들끼리의 환영(幻影, 마야)에 관해 철학적인 토론을 벌이는 도중 조지에게 문득 영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옆에 있던 하모늄을 가지고 즉석해서 이 힌두스타니 성악곡을 만들었다.
사르감(sargam)이라는 인도음계를 기초로 한 'Within you without you'는 조지 해리슨과 클라우스 포어만이 나눴던 대화내용 그대로 시작한다.
“We were talking about the space between us all / And the people who hide themselves behind a wall of illusion / Never glimpse the truth, then it's far too late, when they pass away”
조지는 1966년 23세라는 어린 나이에 'The art of dying'이란 노래를 만들어 성숙한 동양적 죽음관을 선보인 바 있다. 이 곡에서도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없애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라는 본질을 깨닫자는 알쏭달쏭한 고대 인도의 지혜를 전하고 있다.
'Within you without you' 세션은 다른 비틀스 멤버들 없이 오로지 조지 해리슨 혼자서 진행했다. 녹음에 앞서 조지는 스튜디오 안을 철저히 인도 분위기로 조성했다. 짙은 인도 향을 피우고 바닥에는 총천연색의 인도 카펫을 깔고 벽에는 인도산 융단을 걸었다. 그리고 < 아시안 뮤직 서클 >의 인도 뮤지션들을 대거 초빙해 타블라와 스와르만달, 딜루바(diluba, 찰현악기) 같은 인도악기로 기본 트랙을 완성했다.
1967년 3월 15일 인도 음악가들과 함께 첫 녹음을 한 데 이어, 4월 3일 프로듀서 조지 마틴이 바이올린 여덟 대와 첼로 세 대의 소리를 덧입히고 조지 해리슨의 리드 보컬과 시타르, 어쿠스틱 기타 파트를 더빙하면서 최종적으로 레코딩을 마쳤다. 밴드의 어시스턴트였던 닐 아스피널은 조지와 함께 탐부라 연주를 담당했다.
묘하게 흐느적대고 미끄러지고 구부러지는 'Within you without you' 안에는 단순히 시타르뿐 아니라 인도의 화성과 멜로디, 리듬 등 조지 해리슨이 지난 2년 간 습득한 인도 클래식 음악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한마디로 인도음악에 대한 그의 깊은 지식과 이해를 보여준 인도탐구의 결정판이었다.
인도음악 특유의 탐부라 드론음이 깔리는 가운데 활로 켜는 악기 딜루바가 짧은 솔로로 시작을 알린다. 동시에 스와르만달이 몽환적으로 울려 퍼지고 중간 속도의 경쾌한 16비트 틴탈(teental) 타블라 반주가 가세한다. 곧 조지 해리슨이 “We were talking”이라는 첫 가사로 느릿하게 노래를 불러나가고 찰현악기 딜루바는 조지의 목소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전반부가 끝나면 16비트로 4/4박자 리듬의 진수를 보여주던 타블라가 갑자기 10비트 사이클과 5/4박자로 장단을 바꾼다. 이후 딜루바, 시타르, 스와르만달 등 인도악기가 바이올린, 첼로와 조화를 이루며 중반부터는 동서양 현악기의 아름다운 향연이 펼쳐진다. 연주음악이 끝나면 타블라는 다시 16비트로 돌아가고 'Within you without you'는 딜루바의 신비로운 잔향과 웃음소리 효과음 속에서 끝을 맺는다.
'Within you without you'는 명백히 그때까지 조지 해리슨이 만든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다. 기존 대중음악의 경계에서 벗어나 인도음악과 서구 팝 음악의 초월적인 결합을 이끌어냈으며 그간 재즈와 클래식에서만 쓰였던 5/4박자를 팝에 도입하는 등 모든 면에서 진보적인 사운드 운용을 펼쳐보였다. 존 레논은 이 곡에 대해 “조지의 베스트 송 가운데 하나이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의 노래 중 한 곡”이라고 극찬했다.
한편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 역시 인도에 다녀온 뒤 남편만큼이나 큰 영적 자극을 받았다. 특히 만트라(mantra, 진언 또는 주문) 암송과 명상에 관심이 높았다. 그러던 1967년 2월, 패티는 마리 리즈라는 친구와 함께 초월명상(TM)의 창시자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런던 캑스턴 홀 강연에 찾아가 그의 설교를 들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마하리시의 영적부흥운동에 가입하고 그토록 원하던 만트라까지 얻은 패티는 곧 조지에게 그 흥분되는 사실을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