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 Anthology > 앨범과 DVD가 나왔을 때도 대대적인 비틀스 열풍이 불었고, 2000년에는 영미 1위곡을 모은 <원(1)> 앨범이 당대 최고 인기그룹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신보 판매량을 누르면서 또 다시 비틀스를 현재진행형 그룹으로 만들었다. 이 앨범은 국내에서도 78만장이 팔려 새천년 최고 판매고의 팝 앨범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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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꿍꽝거렸던 소리는 부드러워지고, 약한 악기음은 찰진 느낌으로 바뀌는 등 세련돼졌다. 한마디로 엣지하다. 과거에 발매된 앨범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청취훈련이 덜 된 사람들도 디지털로 다림질했다는 것을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리마스터링 작업은 무려 4년이 걸린 것으로 보도되었다.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영국 런던 소재의 EMI 애비 로드(Abbey Road)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가이 메이시, 스티브 룩, 샘 오켈, 폴 힉스, 숀 매기 등의 엔지니어 팀의 고민은 당연했다. 최신의 디지털 레코딩 기술을 동원하되 우리에게 익숙한 아날로그 레코딩 음반의 순수성을 건드리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소리가 다르면서도 한편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할까. 잘못했다가 차이가 확연하면 전설과 추억에 대한 훼손이라는 준엄한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과 원본에 대한 향수는 문화 접근에 저류하는 기본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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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구 팝 음악계는 비틀스에 매달릴까. 왜 또 사람들은 그런 음악계의 기획에 순순히 응하며 끊임없이 비틀마니아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단적으로 비틀스 음악은 시대적 가치, 예술적 가치 그리고 교육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시대적 가치는 “우리는 60년대의 대변자들”이었다는 폴 매카트니의 말이 압축한다. 비틀스의 < Rubber Soul >, < Revolver >,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 < White Album >, < Abbey Road > 등의 명반에는 1960년대를 살아갔던 청춘들의 소외, 미래불안, 시스템에 대한 반발, 사이키델릭 등 반전과 공민권운동 시대의 저항 정서가 숨 쉬고 있다.
예술적 가치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 탁월한 음악은 당대에 클래식 진영도 두 손 들었다. 뉴욕필의 지휘자였던 고 레너드 번스타인은 < Sgt. Pepper's... >의 수록곡 전체를 “슈만의 작품에 견줄만하다.”고 고평했다. 대중음악, 로큰롤음악에 대한 유서 깊은 멸시가 비틀스 음악에 의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앨범 전에 나온 곡 'Yesterday'는 유진 올만디도 연주했다. 중후반기 음악(1966-1970년)과 다르게 3코드에 기반을 둔 초기 로큰롤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I want to hold your hand'나 'A hard day's night' 등을 'Hey Jude'와 'Let it be' 같은 후반기 명작들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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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젊음은 그들의 이상 정열 신념을 배워야 한다. 천재이기 전에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기에 그들은 후대의 부단한 존경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내는 앨범마다 지속적으로 발전했고 하나하나마다 대중음악 역사상 획을 그었다. 이번 리마스터드 CD는 한번에 비틀스 전(全) 앨범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팬들에게는 소중한 기회다. 첫 앨범 < Please Please Me >부터 마지막 < Let It Be >까지 순서대로 청취하면 성공하기 이전 비틀스의 노력, 이후의 실험과 시도에 기초한 성장 그리고 시대와의 상호작용을 읽을 수 있다.
리마스터드 앨범을 사려는 한 20대 젊은이가 말한다. “30만원이 넘는 돈이 들지만 꼭 구입하려구요. 비틀스 앨범을 안사면 레전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낼 것 같아서요. 의무감으로 사는 거죠.” 하긴 우리의 경우는 시대적, 예술적, 교육적 가치보다는 전설적 가치가 압도하는 것 같다. 전설은 우리를 압박한다. 또 '온리 원' 전설이 돌아왔으니 그 압박감도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