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바닐라의 향은 어떤 느낌으로 각인되어 있는가. 많은 이들이 공감하겠지만 혀끝을 부드럽게 휘감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자극적인 색소와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은 우윳빛 그대로의 향취를 바닐라 어쿠스틱(Vanilla Acoustic)의 음악에서 맛볼 수 있다. 아날로그적 감성이 묻어나는 악기 연주와 작법은, 속도 경쟁이라도 하는 듯 숨 가쁘게 전환하는 전자 사운드의 엑스터시 틈 사이에서 잠시나마 피안을 제공한다.

앨범을 전반적으로 지휘하는 바닐라 맨의 음감은 여성적인 손길이 두루 닿아있다. 능숙하게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피아노 멜로디와 곡의 분위기를 한껏 선명하게 밝혀주는 어쿠스틱 기타는 순수한 소녀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묘사한다. 이와 더불어 나래와 성아에 의해서 채색되는 파스텔 톤 보컬이 어쿠스틱 사운드의 은은한 매력을 내실 있게 전달하고 있다. 앨범의 절반인 3곡에 직접 작사자로 참여했기에, 메시지 전달의 진정성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디엄 템포의 산뜻한 팝 넘버인 '굿모닝 레이디'는 두 보컬의 깔끔한 호흡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사랑을 해보았다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부푼 설렘의 순간들이 가벼운 기타 리프에 의해서 펼쳐지고 있으며, 후렴구를 수놓는 화음의 조화가 곡의 분위기를 더욱 달콤하게 이끌어준다. 퍼커션 비트 위에 잔잔하게 유영하는 '꿈에 잠들다'에서도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랑의 기쁨을 조곤조곤히 속삭인다.

바닐라 어쿠스틱은 사랑의 양면성, 달콤함에 이어 뒤따르는 쌉싸름한 이별의 순간에도 목소리를 이어간다. 'Constant No.2'와 'Goodbye June...'에서 애절한 감정은 절제된 보이스로 다듬어져 가슴 한복판에 잔잔한 여운을 남겨놓는다. 먹먹함과 환희를 교차하는 본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한편의 러브 드라마를 편안하게 감상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아기자기한 배경과 순정만화에서 나올 법한 캐릭터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드라마 말이다.

근래 들어 여심을 사로잡는 소프트 팝이 은연중에 강세를 떨치는 시점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확연한 스타일을 겸비하지 못한 점은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멜로디의 흡인력도 아쉬운 부분이다. 허나 여름 더위가 한 풀 꺾이고 나서 스산한 기운이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가을의 문턱에서 소담한 감흥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적절한 선물이다.

-수록곡-
1. Goodbye June...
2. 굿모닝 레이디
3. Constant No.2
4. 내 남자의 자격
5. 니가 없이도
6. 꿈에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