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을 섭외하기 전, IZM의 필자 배순탁은 “이수영 인터뷰는 반드시 내가 하련다.”며 주변에 '노터치'를 통고했다. 일정이 잡히자 마치 오래 전부터 자신의 몸에 이수영 음악이 살아온 듯, 며칠간 오로지 이수영 음반만을 끼고 다니며 맹렬히 인터뷰를 준비했다. 늘 남을 먼저 배려하고 평정을 지키던 그로서는 보기 어려운 이성마비, 광분, 정신적 만취 그리고 러브홀릭이었다.
그 이유. “메탈과 모던 록만을 주로 좋아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이수영 발라드만은 가슴을 때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음악적 연관성을 강변하는 게 되레 수상해서 슬쩍 음악 외의 이유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다 아시면서…”하며 이름처럼 '탁한' 태도로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예기지 않은 돌발 상황으로 인해 인터뷰 자리에 정작 찜의 당사자는 나가질 못했다. 그는 땅이 꺼질 정도의 한숨을 내쉬며 오호애재를 불렀다.
할 수 없이 스스로 '찍사'로 일컬으며 '디카 예술의 일대 진전'을 향해 질주 중인 신예 김소연을 대동했다. 그러나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머리 속에는 내내 배순탁의 '희망과 절망'이 오버랩 되어 맴돌았다. 그를 통해 현재 이수영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고 또한 당장 인터뷰 때 이수영에게 물어볼 게 많아져서 좋았다.
9월3일 서울 강남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수영은 무언가 촬영을 막 끝낸 상태였다. 촬영 때문에 현장은 조금 어수선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인상대로 차분하고 공손했다. “신문에 쓰신 글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이미 여러 차례 실물을 봤지만 이날따라 더욱 깔끔하고 단정해 보였다. (김소연의 탄성. “실제로 보니 더 여자답고 더 예쁘네요!!”)
대화를 마칠 때까지 그는 한점 흐트러짐 없이 정좌의 바른 몸가짐을 유지했다. 하지만 언변은 놀랄 정도로 능했다. 지금까지 인터뷰한 가수 중에 가장 말을 잘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일본진출계획, 친구 이효리, 자신의 음색 그리고 막 발표한 새 앨범 등 전반에 걸쳐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또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지금 무엇을 촬영한 거죠?
“일본 CS TV에서 'K-Pop'을 다룬 신설 프로그램을 제작 중인데 저를 찾아온 거예요.”
참 일본에 진출하죠? 언제 갑니까?
“내년 1월부터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싱글 음반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11월까지 서너 곡의 일본진출용 신곡을 만들 계획이구요, 이미 음반작업은 시작했어요. 곡은 현재 MGR과 일본의 프로듀서가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진출에 꽤 적극적으로 보이는데…
“한번 일본에서 있었던 행사에 참여해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과정부터 틀리더라구요. 너무 추워서 힘들었는데 오히려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일본진출에) 적극적으로 보인 건 '넓은 무대에 가서 많은 것을 경험을 하고 싶다'는 의욕 때문일 거예요. 전 노래를 잘할 수 있는 거라면 모든지 하고 싶어요. 하느님에게 기도하고 응답받는 것 외에 노래를 위해 '넓게 듣고 넓게 부르고자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이수영씨 음악을 일본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특이하고 동양적인 목소리라서 좋아한다고 하데요. 저의 진출을 담당하는 분들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말해줬습니다.” (이 대목에서 “외모도 일본인이 좋아한다던데”라고 하자 빙그레 웃으며 “저도 그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신보 얘기를 하죠. 이번 <This Time> 앨범은 전작 스타일과 조금 달라졌다는 느낌을 줍니다. '덩그러니'는 지난 번 '라라라'보다는 얼핏 2집의 'Never again'으로 돌아간 듯하지만 그 곡과도 차이가 발견됩니다. 변화를 택하는 게 발라드 가수로선 모험일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음반작업 시 주안점은 무엇이었습니까?
“무엇보다 저번 음반과 변함이 없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어요. 새로운 작곡자에다가 저도 일정부분(2곡의 가사) 참여했죠. 제 목소리가 비음도 많이 섞여있고 애절하다고들 하잖아요. '덩그러니'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스트레이트한 창법을 구사한 곡이예요. 곡이 아이리시(Irish) 분위기를 집어넣고 록 비트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죠. 사실 이번 앨범은 록 비트가 실험의 핵심이거든요. 그러니까 '부드럽게 부를 수 있는 록'을 지향한 겁니다. 그러면서 제가 여성스럽고 여린 목소리만은 아니더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건 큰 소득이죠.”
한마디로 '이수영표 발라드'에서 탈피했다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곡이 이전 노래에 비해 따라 부르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안 되는데. 조금은 헷갈려 하는 것 같아요. 애절함이 없어서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는 걸로 압니다. 하지만 저는 앨범마다 쌓아가는 게 있어서, 차츰 변화하는 게 있어서 좋아요. 전 이번 앨범에서 타이틀곡 말고도 블루스적 느낌을 실험한 'Wanna bigman'과 펑키 리듬을 구현한 'Sunshine'이 좋아요. '나를 새롭게 봐줄 수 있는 곡들'이라는 점에서죠. 물론 (목소리가) 덜 영글었지만 발전할 수 있을 때까지 다듬어갈 겁니다.”
제 듣기에는 이수영씨는 목청이 조금 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성 아닌 가성(假聲)을 구사하기 때문에 그렇게 비쳐질 수 있겠지만 그런 점은 어떻게 대처할 건지 궁금합니다.
“제 본래의 소리, 진성이 있지요. 하지만 'I believe' 이후 진성이 아니라 두성에 의한 가성을 구사하게 됐어요. 제 음색의 기초가 된 거지요. 그러다보니 이제는 제 진성이 맘에 들지 않아요. 음색은 선택한 거죠. 목청이 약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제 가성이나 창법이 완성됐다는 말은 아니에요. 아직은 멀었죠.”
현재 앨범이 아주 잘 나가죠?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앨범보다 오히려 앨범 판매 속도가 빠르다고 들었습니다. 조금 걱정했는데 반응이 좋은 것 같아서 기쁩니다. 팬들에게 정말 감사드려요.”
음반시장이 악화된 상황이라서 더 음반의 호응이 돋보입니다.
“전 늘 음반시장이 침체한 게 아니라 음반이 침체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잘 만든 음반은 상황과 무관하게 소비자 호응이 있다는 거죠. 마침 휘성씨 새 음반도 잘나간다고 들었는데, 현실 돌파의 키워드는 '좋은 음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봐요. 또 저는 할 수 있는 게 노래 밖에 없어서 노래 잘해서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외에 딴 방법이 없죠.”
하지만 언젠가 TV 연예프로그램에서 이효리씨와 함께 춤추는 것을 봤는데 솜씨가 만만치 않던데…
“(웃으면서) 그거야 어쩔 수 없었던 거구요. 춤은 관심이 없어요. 전 오로지 노래만 할 거에요.”
이효리씨 솔로 음반과 시기가 맞붙어 본의 아니게 라이벌이 돼버렸습니다. 이효리씨와 많이 친하다고 들었는데, 두 사람은 정반대의 접근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화제를 몰고 있는 이효리씨의 최근 강공(?) 움직임을 어떻게 봅니까?
“같은 79클럽(79년 동갑내기 연예인 친목모임)으로 굉장히 가까운 사이죠. 효리는 비트 있는 흑인음악에 관심이 많고 음악도 많이 들어요. 근성이 있고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에요. 근래 나온 신문기사는 '소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효리를) 다르게 받아들이죠. 가수로는 지적을 받긴 하지만 분명히 효리는 괜찮은 엔터테이너입니다. (웃으며) 저는 그렇게 하려고 해도 안 되잖아요. 길이 다를 수밖에 없죠.”
이수영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나 신봉초-분당 정자중-분당 중앙고를 다녔다. '집안을 떠받들어야 한다'는 이른바 장녀의식은 지금도 강해 '머리 속에 그 생각이 전부'라고 말할 정도이다. 게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20살 때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런 탓에 이수영은 '근래 음반시장의 불황을 반드시 내가 타개하겠다'는 여전사와도 같은 발언이 시사하는 것처럼 평소 성공에 강한 의지와 민감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의 신조는 '바르게 살자'이다. 하느님을 전부라고 여기는 독실한 크리스천답게 자신의 인기를 '하느님이 가족 대신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해주신 것'으로 해석한다.
최근 음악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다는 기사가 나와 적어도 음악 팬들에게는 또 한 차례 호감을 샀다고 봅니다. 좋은 이미지가 더 좋아질 것 같은데요. (참고로 이수영은 경원전문대 보육학과 재학 중이었다)
“그 기사요? 사실 확대해석된 거예요. 기자를 만나 (학교에 못 나간 지) 오래돼서 자연스레 그만둔 상황이라고 말한 건데, 마치 제가 무슨 선언이라도 한 듯 보도가 됐습니다. 사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학과가 현재 노래하는 것과 격차가 있어서 더 이상 대학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맞습니다. 만약 공부를 계속한다면 음악공부를 더하고 싶어요.”
이수영씨 실제 성격이 궁금해요. 단정한 외모지만 앨범에 표현된 음악을 보면 속은 겉과 달리 이것저것 욕심이 많아 보입니다. 맞나요?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맞아요. 실제로는 상당히 이중적 아니 다중(多衆)적이에요. 저도 제 성격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니까요. 하루에 12번도 넘게 변해요. 물 같기도 하고 불같을 때도 있고. 노래하면 할수록 욕심이 과해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듣는 음반이 있습니까? 그리고 좋아하는 우리 여가수는 누군가요?
“앨리시아 키스(Alicia Keys)의 앨범이 좋아요. 신보 작업하면서도 많이 들었죠. 그런 블루스적인 소리가 맘에 들어요. 트렌디하기도 하고. 우리 가수는 이은미 이소라 선배지요. 영향도 받았구요. 두 분 다 대중과 마니아 모두에게 사랑받는 게 부럽습니다. 저도 그렇게 돼야겠죠?”
이수영은 모든 질문에 여유롭게 그리고 미진한 구석이 없도록 충분히 대답해주었다. '덜 영글었다' 등의 겸손한 어휘를 많이 동원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한마디로 그의 '부드러운 강단'에 포박되어버린 시간이었다. “노래를 잘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지 하고 싶다” 그리고 “넓게 듣고 넓게 부르고 싶다”는 말은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는 끝날 때쯤이면 부산하게 돌아가는 딴 가수들과 달리 자리를 일어서면서 마침표도 잘 찍었다. “바쁠 텐데 시간을 내줘 고맙다”는 인사에 대한 마지막 응답은 “제가 더 재미있었어요.”였다. 그 말을 듣자 바로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지금쯤 땅을 치고 있을 배순탁의 얼굴이었다.